[여적] 27번째 선수
이영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의 지난해 10월 인터뷰 중 한 대목.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마치고 유럽 리그에 진출한 초창기 얘기였다.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 들어간 그는 처음 몇 달간 연습 때 동료들이 자신에게 패스를 주지 않아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했다. 알고보니 텃세가 아니었다. 자신이 빠른 패스 템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원인이었다. “나름 경험 많은 한국 국가대표이고 월드컵 4강도 했는데, 유럽에서 축구를 다시 배운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축구의 스피드와 흐름을 따라가려 애썼던 그때 “엄청나게 성장했다”고 돌아봤다.
1975년 국가대표 골키퍼 변호영 등 3명이 홍콩 세미프로팀에 입단한 후 1978년 차범근, 1980년 허정무가 독일과 네덜란드 리그로 나간 것이 한국 축구가 유럽에 진출한 시초였다. 1990년대 황선홍·서정원 등이 뒤를 이었고 2002년 월드컵 직후 4강 신화로 주목받은 선수들이 대거 유럽으로 나갔다. 이영표와 한 팀에서 출발한 박지성과 송종국·이을용·이천수 등이다. 한국이 가까운 일본 J리그를 벗어나 유럽 무대로 시야를 넓힌 시기였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를 앞세워 16강 목표를 달성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후에는 오현규(22)가 첫 유럽 진출 선수가 됐다. 스코틀랜드 셀틱FC와 5년 계약을 맺은 그는 엊그제 입단하자마자 데뷔전에 나섰다. 오현규는 대표팀 최종 엔트리 26명에 들지 못한 ‘27번째 선수’였다. 안와골절을 입은 주장 손흥민의 결장에 대비한 예비 선수로, 등번호 없는 유니폼을 입고 동행해 함께 훈련하는 역할을 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16강행을 함께 이룬 멤버였다. 이에 대표팀 26명이 사비를 모아 그에게 포상금 일부를 나눠주기도 했다.
월드컵 직후 유럽 진출 선수가 나오는 것은 한국 축구의 실력을 평가받는 것과 같다. 2002년 월드컵이 ‘빅뱅’이었다면 이후에는 한국의 월드컵 성적이 신통치 않아 유럽행 선수가 뜸했다. 다시 한국 축구가 주목받은 이 시기에 큰 무대를 찾아 떠난 오현규가 미래의 밑거름으로 성장하기 바란다. 다음 월드컵에선 등번호를 달고 뛰는 선수가 되겠다는 각오부터 출발하면 된다. 27번째 선수 경험도 충분히 값지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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