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 따라, 5000년 전 파라오가, 인간을 닮은 신들이 말을 걸어 왔다

송현숙 기자 2023. 1. 3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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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미라, 투탕카멘, 람세스, 클레오파트라, 오벨리스크와 거대한 신전들…. 이집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서양의 주요 문화를 잉태하고 키운 ‘문명의 요람’으로도 일컬어지는 이집트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영화와 드라마, 예술에 끊임없이 차용되고 변주되며 상상력의 원천으로 역할해 왔다. 한편으론 많은 이들이 인생에 한번은 가고 싶은 버킷리스트로 꼽는 곳이다. 그러나 쉽게 갈 엄두는 나지 않는, 매력적이지만 심리적인 거리가 먼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굳게 닫혔던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의 인문기행 하늘길이 3년 만에 열렸다. 2020년 진행했던 이집트 고대문명 탐방도 3년 만에 재개됐다. 국내 최고의 고대 이집트 전문가인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이 이끄는 10박12일의 일정을 동행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 답사단’ 33명이 지난 5일 험난하기로 유명한 이집트 다슈르의 굴절피라미드 내부 탐방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굴절피라미드는 외부의 경사각 굴절과 내부의 이중구조로, 피라미드 변천사의 과도기를 볼 수 있는 의미있는 피라미드로 평가된다. 이번 답사여행은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가 후원하고 이티원여행이 주관했다. 이티원여행 제공

■답사여행, 피곤하지만, 즐거운!

지난 3일 자정 10분 전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두바이를 경유해 4일 오전 11시20분(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숨 돌릴 새도 없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초대형 관광버스에 방금 찾은 여행가방들을 몽땅 싣고, 33명의 답사단은 카이로 남쪽 30㎞ 지점에 있는 고대 유적지 사카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긴 여행에 고생하셨습니다. 카이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버스에서 짧은 한마디 인사 후, 이집트 역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답사단이 향하고 있는 사카라에 대한 곽 소장의 직구 설명이 이어졌다.

“사카라는 고대 이집트가 탄생하던 초기 왕조 시대부터 마지막 프톨레마이오스 시대까지, 3000여년의 이집트 문명기 동안 한 번도 이집트인들에게 버림받은 적이 없는 지역입니다. 상·하 이집트 통일 후 이집트 문명이 시작되는데, 이 시기 이집트인들은 수도 멤피스가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고원지대에 죽음의 신 ‘소카르’의 이름을 지명으로 붙이고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답사는 피라미드부터 시작했다.

“피라미드를 포함한 이집트의 무덤들은 매장과 제사 공간, 즉 사당 공간으로 나뉘는데요, 이제 여러분들은 이런 구조를 계속해서 보실 겁니다.”

그 말대로였다. 첫날의 우나스·조세르 피라미드부터 기자의 피라미드군에 이르기까지 구조는 자연스럽게 암기할 정도로 반복됐다.

첫날의 일정은 우나스 피라미드와 조세르 계단식 피라미드, 묘역 내 남쪽 무덤, 세라피움(성스러운 황소들의 무덤), 마스타바 티의 무덤, 테티의 피라미드, 카겜니의 마스타바까지 7곳. 이집트 기독교인 콥트 정교회의 성탄절(1월 7일) 직전인 이날, 카이로의 교통체증을 제대로 체험한 끝에 호텔에 여장을 푼 시간은 이륙한 지 만 하루(시차 7시간)를 훌쩍 넘긴 오후 8시30분이었다. 답사 둘째날은 일정 중 가장 난코스로 꼽히는 굴절피라미드 등 피라미드 2곳의 내부 탐방이 포함됐고, 다음날엔 아스완 유적지 5곳 방문, 그다음은 새벽 3시에 기상해 4시에 출발한 아부심벨 신전 관람이 이어졌다. ‘답사단’이란 이름에 걸맞은 빡빡한 일정, 하루 평균 1만5000보에서 2만보 이상을 걷고 또 걸었다.

차 안에서, 유적지에 도착해서도 설명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피라미드 방향이 별신앙에 기초한 남북축에서 태양신앙을 상징하는 동서축으로 변화하는 모습, 피라미드의 구조 변화와 53도의 각도가 어떻게 정착됐는지도 설명을 듣고 직접 보며 확인할 수 있었다. 상·하 이집트의 상징들, 파라오 이름에 자주 등장하는 상형문자들도 끊임없이 듣고 보는 사이 친숙해졌다. 시루 속 물이 빠져나가도 콩나물이 쑥쑥 크듯 어느새 고대 이집트 문화에 자연스럽게 젖어가고 있었다.

“여기선 이걸 찾아보세요.” “이걸 보셔야 합니다.”꼭 봐야 할 것들에 밑줄 그은 알찬 여행. 한 참가자의 말대로 신기하게도 “아는 만큼 보였고, 보이는 만큼 즐거웠다”.

피라미드 7개, 왕묘와 귀족 무덤 등 총 18개의 무덤 내부에 직접 들어갔고, 장례신전 2곳과 의례신전 6곳, 박물관 4곳, 채석장 등 유적지를 발로 밟으며 체험했다. 수천년 전 파라오들, 인간을 닮은 신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일류 셰프의 세련된 ‘시대순 코스 요리’

이집트는 5000여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고대 이집트 문화에 고대 그리스·로마, 비잔틴 제국과 기독교, 이슬람교와 근·현대 유럽과 미국의 문화까지 겹겹이 중첩돼 있다. 어디에서 자르느냐에 따라 보이는 단면은 전혀 다르다.

이번 일정은, 기원전 3100년경 상·하 이집트 통일로 시작된 초기 왕조시대부터 이집트가 로마제국의 영토로 편입될 때까지 3000여년의 고대 이집트에 집중됐다. 곽 소장이 ‘더 많은 유적,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유적지를 보자’는 목표로 고심하며 일정을 짰다. 한반도의 5배 넓이로 이동거리가 긴 이집트 지리를 고려해 시대순으로 유적지를 묶었다. 고왕국 시대의 초창기 유적들이 많은 사카라와 최초의 수도 멤피스, 피라미드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다슈르부터 시작해, 남쪽의 아스완에서 고왕국과 중왕국 시대의 귀족 무덤군과 유적지를 본 후 신왕국 시대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 신전까지 들른다. 그다음 신왕국 시대의 유적들이 몰려 있는 룩소르로 이동해 왕들의 계곡과 신전, 박물관들을 둘러본 후 아비도스를 거쳐 카이로로 돌아와 이집트 문명 이후인 이슬람 유적과 기독교 유적을 맛본 후 이집트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총정리하는 코스다.

어떻게 하면 이집트를 입체적으로, 가깝게 느끼며 보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가령 아스완의 누비안 박물관에서 수몰 전후의 아부심벨 신전 모형을 본 다음날 아부심벨 신전을 찾아갔고, 아스완에서 아부심벨을 갈 땐 항공편 대신 육로를 택해 사막에서 일출과 신기루를 볼 수 있도록 이동시간을 조정했다. 주요 신전과 무덤들을 둘러본 후 박물관에서 신전과 무덤의 실제 주인공들을 미라로 확인하는 시간도 각별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다슈르 피라미드 방문, 관광객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완전 시골이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큰 아비도스를 방문한 것도 일정을 한층 풍성하게 했다.

“이집트 정부에서 아스완 댐을 건설하며 수몰 위기에 처한 누비아 지역의 고대 이집트 유적을 이전시키자는 국제적인 구호활동이 일어났고, 이 경험을 토대로 탄생한 것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거대한 아부심벨 신전은 1036개의 블록으로 분해돼 10년간 통째로 옮겨졌죠. 이후 이집트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국가들에게 선물로 뭘 줬을까요? 누비아 지역에서 이전된 자그마한 신전들을 통째로 선물했습니다. 스케일이 다르죠.”, “여러분이 보시는 건 석고로 만든 복제품입니다. 진짜 천궁도는 어디에 있을까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이집트 약탈품 3대장은 지금 보시는 덴데라 천궁도와 영국박물관의 로제타스톤, 독일 베를린 신박물관의 네페르티티 흉상입니다.”

인류가 문화재 보호에 한마음이 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탄생 이야기엔 다 함께 감동했고, 덴데라의 하토르 신전 2층 가짜 천궁도를 보면서는 문화재 약탈에 모두가 분노했다. 10만원에 달하는 별도의 입장권, 그것도 내부에선 10분만 머물 수 있는 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에선 가슴이 뛰었고, 세티 1세 신전의 일명 ‘헬리콥터 상형문자’와 각종 음모론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제가 말이 많아서 설명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언제나 진지하게 경청해 주셔서 굉장히 감동을 받았고,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선 한국에서 고대 이집트에 대해 정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잘 아시는 분들이 되셨을 거예요. 상위 1%, 어쩌면 0.1%일 수도 있어요. 이번엔 고대 이집트를 봤지만,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를 테마로 다시 찾아오셔도 좋으실 겁니다.”

한국행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곽 소장의 소감은 마치 하산을 명하는 스승의 말처럼 들렸다. 현장 가이드 야신과의 이별까지 일행 모두가 이집트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여행을 한번 갔다고 해서 그 나라와 아주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게 된다. 여긴 와 봤으니 다음 여행지로 눈길을 돌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엔 많은 이들이 이집트를 다녀온 후 오히려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고, 다시 와 보고 싶다고 한다. 여러 모로 특별한 여행이다.

“전문가인 제가 가는 만큼 저를 많이 활용하세요. 모르는 건 뭐든 질문하세요.” 첫날 얘기한대로 곽소장은 여행 내내 같은 질문에도 몇 번이고, 기꺼이, 성의껏 답하는 모습이었다. 이집트를 알리고자 하는 곽 소장의 진심과 이집트의 매력을 알아본 답사단의 마음이 닿았다.

이집트 |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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