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마지막 지사형 언론인 故 조용중

신익규 기자 2023. 1. 3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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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의 생애 중 60년 넘는 세월 동안 언론 외길을 걸어온 고 조용중 선생을 기리는 추모집이 발간됐다.

참 언론인이었던 조 선생과 언론계에서 함께 힘쓴 후배 언론인들이 '조용중 선생 추모문집간행위원회'를 꾸려 책을 펴냈다.

책은 언제나 후배 언론인들에게 귀감을 보이며 '영원한 언론인'으로 기억되는 조 선생의 칼럼과 함께 동료 후배들의 기억 너머에서 펼쳐지는 고인의 각종 일화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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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대기자 조용중 (조용중 선생 추모문집간행위원회 지음 / 글방과 책방 / 394쪽 / 2만5000원)
언론 외길 조용중 선생 추모문집 발간
생전 칼럼 등과 동료, 후배의 글 30편 담아

88년의 생애 중 60년 넘는 세월 동안 언론 외길을 걸어온 고 조용중 선생을 기리는 추모집이 발간됐다. 참 언론인이었던 조 선생과 언론계에서 함께 힘쓴 후배 언론인들이 '조용중 선생 추모문집간행위원회'를 꾸려 책을 펴냈다. 책은 언제나 후배 언론인들에게 귀감을 보이며 '영원한 언론인'으로 기억되는 조 선생의 칼럼과 함께 동료 후배들의 기억 너머에서 펼쳐지는 고인의 각종 일화를 담고 있다. 특히 고인에 대한 날카로운 언론 정신과 그 이면 속에 존재하는 따듯한 마음을 담아낸 후일담을 통해 언론인 조용중의 일생을 낱낱이 살펴볼 수 있다.

1930년 대전에서 태어난 조 선생은 23세의 젊은 나이로 언론계에 입문, 정치부 기자로 명성을 날렸다. 이후 서울신문과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한 뒤 MBC·경향신문 전무로 승진 및 연합뉴스의 전신인 연합통신의 사장을 지냈다. 관훈클럽 총무와 한국언론연구원장, 한국ABC협회장, 문우언론재단 이사장으로도 활동했으며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좌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조 선생이 '영원한 언론인'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평생 동안을 언론계에서 지내왔을 뿐만 아니라 체질적으로 비판 정신이 강해 취재 일선에서 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꼿꼿한 언론인으로 처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 시절 자유당 정권의 횡포를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논객으로선 김대중 대통령의 신문사 세무 사찰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언론인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조 선생은 언론에 남다른 애착을 가져 세상을 뜨기 전까지도 펜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별세 1년 전인 2017년 9월 대한언론인회의 월간지 '대한언론'에 '박근혜와 언론 동반 추락'이라는 글을 통해 촛불시위 당시 국내 언론의 편파 보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식 전 조선일보 정치부장은 "그는 오직 기자를 위해 태어났고 살다 간 사람이었다. 뒤돌아보기는커녕 좌고도, 우면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기자는 천직이라기보다 오히려 생명 그 자체였다"라고 회고한다. 언론인으로 출발하던 당시 아직 개발도상국이었던 국내의 어려운 언론환경 속에서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꿋꿋하게 언론인의 사명을 지킨 그의 생애는 현재 언론인들에게도 크나큰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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