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연구비 깎는 이상한 나라

한겨레 2023. 1. 3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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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달갑지 않은 공문이 도교육청으로부터 각 학교에 하달됐다.

'교원연구비 지급단가 변경 안내'라는 제목으로 현행 학교급별, 직급별 상관없이 동일 금액으로 지급되던 교원연구비를 이전 규정으로 회귀해 차등 지급하겠다는 게 요지다.

공립학교 교원연구비 지급에 대해선 시도교육청 규정으로 정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 교원연구비의 초·중등 재원이 달랐으나 2021년부턴 교육비특별회계에서 지급되므로 학교급별 차등 지급될 사유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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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연합뉴스

[왜냐면] 유성동 | 금산 신대초등학교 교사

연초에 달갑지 않은 공문이 도교육청으로부터 각 학교에 하달됐다. ‘교원연구비 지급단가 변경 안내’라는 제목으로 현행 학교급별, 직급별 상관없이 동일 금액으로 지급되던 교원연구비를 이전 규정으로 회귀해 차등 지급하겠다는 게 요지다.

내용을 확인한 순간 당황스러웠다. 교육경력 5년 이상인 나는 27%의 연구비를 깎이게 됐다. 무언가에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다. 20년 가까이 동결됐거나 최소한의 인상만 있던 각종 수당은 별개더라도 교사들 연구비를 깎는다니, 이게 말이 되나.

교원단체와의 단체협약을 통해 도교육청은 2021년부터 차등을 두지 않고 모든 교원에게 동일한 금액(7만5000원)을 연구비로 지급해 왔다. 전국 최초로 교원연구비의 상향 균등화를 이룬 것이다. 공립학교 교원연구비 지급에 대해선 시도교육청 규정으로 정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후 교육부의 태도다. 교육부는 교원지위법 시행령 조항 가운데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과 협의하여 정한다’의 협의를 ‘동의’로 해석해 해당 교육청에 차별적 지급으로의 원상회복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초등공립학교를 기준으로 교장 7만5000원, 교감 6만5000원, 교사(5년 이상) 5만5000원 등 과거처럼 차등 지급하라는 건데, 말이 원상회복이지 당사자 입장에선 깎이는 게다. 2년도 채 안 돼 교육부에 무릎 꿇은 교육청의 대응도 문제지만 교육청의 정당한 사무 집행의 무력화를 위해 시행령에 대한 법제처 해석까지 동원한 교육부의 폭거적 권한 행사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교원연구비의 학교급별·직급별 차이를 없앤 교육청의 결단은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이룬 혁신적 교육행정이기에 교육부는 집요한 간섭 대신 이를 우수 사례로 소개하며 모든 시도교육청의 변화를 촉구해야 했다. 학생 교육을 위한 교사들 연구활동비가 차등을 둬 차별할 사안인가. 교육부가 강조한 ‘협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교육부는 2018년 교원연구비 인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단체협약을 교원단체와 맺은 바 있고,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2020년 1월에 이어 지난해 9월에도 교원연구비 차등 지급의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규정의 개정을 교육부에 요구했다.

과거 교원연구비의 초·중등 재원이 달랐으나 2021년부턴 교육비특별회계에서 지급되므로 학교급별 차등 지급될 사유도 사라졌다. 연구비의 교원 간 차별이 교직 사회에 주는 실익이 전혀 없음에도 교육부만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조직이 규정 등을 제정하는 이유는 조직의 안정적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다. 조직의 내·외부적 환경변화에 관행과 경직된 행태를 고집하는 조직은 작은 위험과 위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교사들 연구비 1만, 2만원 삭감을 위해 관련 규정까지 내세우며 몽니를 부리는 것이 아닌 유연함과 합리성을 갖춘 리더십을 교육부에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잔잔한 사무는 교육자치 원칙에 따라 거침없이 시도교육청에 이양하고, 교육부는 장기적이며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교육발전 비전과 정책 마련에 집중하면 어떨까.

이제라도 교원연구비의 하향 균등지급과 상향 균등지급, 교원 간 차별 조장과 평등 추구 가운데 어떠한 선택이 교원의 전문성 신장과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질 높은 교육’ 실현에 기여할지를 진중하게 따져 보자. 교원연구비 논란의 중심에 섰던 교원지위법 시행령의 다른 조문대로 ‘교원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높은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 교육부의 앞으로 역할을 기대한다. 이로써 대한민국 교육부가 세계 여느 최고 교육기관과의 비교에서도 높은 ‘교육 인지 감수성’을 가졌다 평가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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