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나발니, 과연 살아나올 수 있을까

2023. 1. 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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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몇 해 전이다. 초등생 아이를 데리고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몇 번의 이름을 바꾼 끝에 1998년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불리는 곳이다. 물론 아이를 위한 '생생 역사체험'이 목적이었다. 이렇게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 교육의 시작이라는 것을 믿으며.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옥사 시설을 둘러봤다. 어둡고 칙칙했다. 아이와 함께 각종 고문장비를 보고 있자니 숨이 턱 막혀왔다. 그 곳엔 여전히 독립운동가에 가해진 일본제국주의 그림자가 살아있는 듯했다.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독방에 갇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외신을 통해 마주한 나발니의 감방사진은 서대문형무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정치범에게 감옥은 더욱 가혹하나보다.

이미 수감된 나발니는 또다른 괘씸죄에 걸렸는지 징벌방이라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곳의 크기는 가로 2.5m, 세로 3m. 한 사람이 겨우 눕고 앉을 만한 공간이다. 손바닥만한 창문을 통해 최소한의 빛만 들어온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230㎞ 떨어진 도시 블라디미르 내 감옥이다. 가족 면회는 안된다. 변호사만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간신히 몇 마디만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나발니는 과연 살아 나올 수 있을까.

나발니의 징벌방 수감소식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잠시 비켜서 있던 러시아 인권실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발니는 러시아 인권탄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과 같다. 그는 2011년 호기 있게 반부패 재단을 만든 후 지속적으로 고위 관료들의 비리 의혹을 폭로했다. 그러다 2020년 8월 비행기에서 갑자기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몇 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생사를 오갔다. 마침내 기적적으로 회복돼 독일로 이송된 후 집중 치료를 받았다. 그는 살아나자마자 푸틴의 비리 역사를 총망라하는 두 시간 짜리 영상을 제작해 공개하기도 했다.

나발니는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요원이 신경작용제 '노비촉'을 이용해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21년 귀국과 동시에 체포됐다. 2014년 사기 혐의로 선고받은 집행유예가 실형으로 바뀌면서 옥고를 치러왔다. 또한 사기와 법정 모욕 혐의 등으로 징역 9년 형이 추가돼 현재 형기가 무려 11년 6개월로 늘었다.

나발니 지지자들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절실하다며 여전히 규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최근 독일 베를린 주재 러시아대사관 앞에 나발니가 수감된 징벌방과 똑같은 감방 모형을 세웠다. 누구나 와서 나발니가 갇힌 감방을 체험해보란 얘기다. 나발니는 현재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다. 그의 부인 나발나야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나발니에게 치료약을 제공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러시아 의사 200여 명도 푸틴 대통령에게 나발니에 대한 학대를 멈춰달라는 진정까지 냈다. 투옥된 정치범을 모두 석방하라는 것과 푸틴을 법정에 세우라는 시위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상 푸틴의 일인 독재국가인 러시아에서 인권이 있을 수 있을까. 나발니 뿐만 아니다. 러시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비판한 야권 인사 일리야 야신도 징역 8년 6개월이 선고됐다. 미국은 이런 러시아를 향해 소름끼치는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반정부 인사들과 인권운동가들, 언론인들 구금을 언급하면서 러시아를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가로 지목한 것이다.

푸틴은 지금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범죄 행위까지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다음 달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맞는다. 이젠 미국 등 서방이 최첨단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하면서 전쟁이 또다른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푸틴이 위기 타개책으로 나발니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서방 협상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인데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다만 조건이 있다. 그때까지 나발니가 목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몸은 갇혔어도 나발니의 말은 쇠창살에 가둘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엉터리 재판을 받고 수감되기 전에 남긴 글이다. "만약 징역형이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 나의 인권의 대가라면 113년형을 내려도 된다. 나는 나의 말과 행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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