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인생 50년 책으로 묶은 백혜선…“놀라운 K-클래식의 힘, 가슴 울리는 음악하고 싶어”

허진무 기자 2023. 1. 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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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혜선이 30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동양인 여성 피아니스트의 삶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백혜선이 1994년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무대에 섰을 때, 관객은 무표정했다. 무대에 동양인 남성이 나오면 원숭이 구경하듯이 했고, 동양인 여성이 나오면 ‘무슨 피아노를 치냐’는 식으로 대하던 시절이었다. 백혜선은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결승 진출자 열두 명 중에서 마지막 순서였다. 그의 연주가 끝나자 수천 명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제가 무대로 돌아올 때까지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어요.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하고, 그런 경험은 다시 없을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자신의 음악 인생 50년을 묶은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다산북스)를 냈다. 그는 30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기자들과 만나 “감사의 책을 쓰고 싶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정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구나’라고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내서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백혜선은 어린 시절 자신이 ‘수영의 천재’라고 생각했다. 피아노와 병행하면서도 경북 신기록을 세우며 자유형에 재능을 보였다. 자신만만하던 백혜선은 전국체전에서 ‘진짜 천재’를 만나며 좌절했다. 나중에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가 되는 최윤정이었다. 피아노 앞으로 돌아온 백혜선은 중학생 때 미국 보스턴으로 혼자 유학을 떠났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높이 봐주시지만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이것보다 나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삶을 바꾸고 싶어’ 하며 도전을 택하는 유형”이라고 말했다.

수영처럼 피아노에서도 천재들을 끊없이 마주해야 했다. 백혜선은 1993년 6월 미국 최대 콩쿠르인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 출전해 본선 1차에서 탈락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피아노를 포기하고 미국 전화회사에 영업직 사원으로 입사했지만, 스승인 변화경의 강한 권유에 밀려 마지막으로 콩쿠르에 출전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였다. 백혜선은 한국인 최초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30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한국으로 금의환향한 백혜선은 최연소 서울대 음대 교수가 됐다.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10년 만에 사직서를 내고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백혜선은 “모든 사람이 서울대 교수가 되면 인생이 풀린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옷이 아닌 것 같았다”며 “제 속에서는 자꾸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는 외침이 있었고, 제가 외국에서도 인정받아 교수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백혜선은 인생의 ‘1기’를 피아노를 접하고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하기까지, ‘2기’를 서울대 교수직을 던지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자식을 키워낸 뒤 다시 연주자가 된 지금까지, ‘3기’를 앞으로의 삶이라고 구분했다. 그는 에세이를 내면서 ‘인생 3기’에 대한 출사표를 던지기로 했다. 예술의전당에서 오는 4월 단독 리사이틀을 열고, 11월에는 브람스 협주곡 1·2번을 연주한다.

임윤찬, 조성진, 손열음…. 젊은 음악인의 연주는 백혜선이 여전히 음악가로서 전진하고 싶게 하는 자극이다. 백혜선은 이날 취재진 앞에서 차이콥스키의 <사계> 1번 ‘화롯가에서’와 리스트의 <녹턴> 3번 ‘사랑의 꿈’을 연주했다. 섬세하고 서정적인 연주 속에서도 특유의 호쾌한 타건은 여전했다. “임윤찬이 연주할 때 고개를 딱 젖히면 다들 우와 하고 열광하잖아요. ‘K클래식’이 폭발적인 인기를 일으키고 있어서 그 힘이 놀랍기도 합니다. 제가 젊은 세대와 어떻게 힘으로 비교하겠습니까. 다만 제 음악이 어떻게 관객의 가슴을 울리고 오래 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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