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화론 ‘논파’ 업적…허수열 교수 별세

고명섭 2023. 1. 3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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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경제학자들의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학문적 열정을 바친 허수열 충남대 명예교수가 29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학문적 업적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실증적 논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고인은 <개발 없는 개발> (2005), <일제 초기 조선의 농업> (2011), <식민지근대화론 무엇이 문제인가?> (2017) 같은 저작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실증적 자료를 통해 논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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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허수열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우익 경제학자들의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학문적 열정을 바친 허수열 충남대 명예교수가 29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8∼2016년 충남대 경제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인의 학문적 업적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실증적 논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군의 국내 우익 경제학자들이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을 수용해 제시한 주장이다. 고인은 <개발 없는 개발>(2005), <일제 초기 조선의 농업>(2011), <식민지근대화론 무엇이 문제인가?>(2017) 같은 저작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실증적 자료를 통해 논파했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조선 후기 사회가 생산력 붕괴로 자멸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고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의 선진 자본이 투입됨으로써 조선이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조선인들의 생활 수준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으며 △이런 식민지 개발의 경험과 유산이 해방 뒤 한국 경제 고도성장의 역사적 배경이 됐다고 주장했다.

고인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이런 주장을 실증 자료를 통해 일일이 논박했다. △식민지가 되기 전의 경제 통계가 왜곡돼 식민지화 이후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착시가 생겨났으며, △식민지 시기에 이른바 ‘근대적 경제 개발’이 이루어진 것은 맞지만,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 민족별 생산수단의 불평등이 확대되고 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는 ’식민지적 경제구조’가 강화됐으며 △그런 탓에 일제강점기 산업화가 ‘개발 없는 개발’로 귀착했다는 것이 고인의 논박이었다. 또 이런 사실은 1918~1945년 사이 조선인의 영양 공급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는 통계적 사실로도 뒷받침된다고 고인은 밝혔다. 개발의 혜택이 그대로 돌아왔다면 영양 공급량이 감소될 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인은 한국 경제를 옥죄어 온 식민지적 경제구조가 해방 뒤 깨져 나감으로써 1960년대 이후에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이뤄질 수 있었음도 실증적으로 밝혔다. 해방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식민지 경제구조를 분쇄하고 급속한 경제발전의 길을 였었다는 것이다. 고인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책 <반일종족주의>가 논란을 일으키던 2019년 8월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잊을 만하면 한번씩 튀어나와 염장을 지른다”며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말하는 ‘불편한 진실’은 ‘불편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못박았다.

유족으로 부인 손인자씨와 자녀 허윤경·허규서씨, 사위 이준엽(아주대 경영학과 교수)씨, 며느리 이청백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7호실, 발인 31일 오전 7시. (02)2072-2028.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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