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반대편을 식사에 초대하자

김인수 기자(ecokis@mk.co.kr) 입력 2023. 1. 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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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향 다르면
함께 밥먹기도 싫다니
옳고 그름의 감옥에 갇혀
상대를 악마화하게 될 뿐

한국인은 정치 성향이 다르면 같이 밥 먹는 것조차 불편해한다. 연초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5%가량이 그렇다고 답했는데 실제 비율은 더 높을 것만 같다. 생각이 다르다고 밥도 같이 먹기 싫다는 건 옹졸해 보인다. 여론조사에서 그렇다고 답하기가 거북했을 것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10명 중 6명은 될 듯싶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우리가 옳고 너희는 틀렸다"며 서로 간에 벽을 높게 쌓고 있다는 뜻이 된다. 심리적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우리 두뇌는 상대를 '인간'이 아니라 '사물'로 인식하게 된다. 상대의 고통에 둔감해진다. 상대를 쉽게 악마화한다. 경멸과 모욕을 쏟아내고는 그걸 정의라고 믿는다. 정치 유튜브에 접속하면 그런 사례가 숱하다. 문득 옛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시 한 구절이 기억난다. "옳고 그른 것의 개념 저 너머에 들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들판이 사라진 것인가. 정치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 우리 편이 아니다 싶으면 밥조차 같이 먹기 싫어하니 말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 들판을 넓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좌파 작가인 엘리자베스 레서는 '함께 밥 먹기'를 제안한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너무나 달라 우리를 열받게 하는 사람을 점심 식사에 초대하자고 했다. 실제로 레서는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상극인 강경 보수 운동가를 식사에 초대했다. 다만 두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서로를 설득하지 않기로 미리 규칙을 정했다. 서로를 아는 걸 목표로 삼았다. 자신의 인생 경험 중 중요한 몇 가지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좌파와 우파는 서로에게 '엘리트주의자에다 도덕이 타락한 테러리스트 애호가'라거나 '머릿속이 텅 빈 채 총을 쏘는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악마화하는 딱지를 붙인다는 점, 그러나 실제 두 사람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두 사람은 자기 진영에서 상대를 악마화하는 걸 목격하면 반대 목소리를 내기로 약속한다.

물론 같이 밥 먹는다고 생각의 차이가 해소될 수는 없다. 하지만 레서는 "서로를 신뢰하고 진정성을 인정하게 됐다"고 했다. 루미가 말한 '옳고 그름 너머에 있는 들판'으로 들어가 인간으로서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사람이 만나면 정치적 신념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 말고도 할 게 많다. 함께 놀고 사랑하고 대화할 수 있다. 밥 먹는 건 좋은 출발점이다.

미국 작가 재러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미국 정치가 양극화된 것도 그런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 의원들은 가족과 함께 워싱턴에서 살았다. 주말이면 당파와 상관없이 의원들과 배우자들, 자녀들이 함께 어울렸다. 그러나 지금은 의원 혼자만 워싱턴에 머문다. 다이아몬드는 "의원들은 다른 의원들의 배우자와 자녀를 알지 못한 채 정치인으로서 얼굴만 마주할 뿐"이라고 했다. 상대를 그저 정치인으로만 보게 되면 나와 정치적 신념이 같으냐 다르냐만 따지게 된다. 상대를 적으로 보게 된다.

우리는 정치 성향 말고도 지연·학연, 정규직·비정규직 같은 여러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그런 구분 선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하자.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회식 날, 대기업 부장인 동훈은 파견직인 지안에게 "회식 같이 가. 고기 먹어"라고 말한다. 이후 지안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배경으로 사람 파악하고, 별 볼 일 없다 싶으면 왕따시키는 직장 문화에서 투명인간으로 살아왔습니다. 회식에 같이 가자는 그 단순한 호의의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사람 대접받아 봤습니다." 식사 초대는 상대를 인간으로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그 존중을 느낄 때 인간은 차이를 극복하고 교류할 수 있게 된다. 정치에서부터 그런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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