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전 정부 지우기"라는 뜬금포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는 자신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왕건에게 "일찍이 아우(왕건)를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폭정을 거듭하면서도 누군가 자신을 멈춰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전 정부 인사들로 구성된 정책 연구 단체 '사의재'가 연일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현 정부가 전 정부 지우기에 나섰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 과정을 범죄로 둔갑시키고 있다"(조대엽 전 정책기획위원장)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계승한다며 이달 18일 출범한 사의재는 집값 급등을 이끈 전 국토부 장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행한 전 복지부 장관, 총리와 청와대 수석 등 300여 명으로 구성됐다.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제한한 임대차법 시행 이틀 전 자기 집 전세금을 14% 올린 것이 밝혀져 사퇴한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참여했다.
정권 교체 8개월 만에 이들이 이전 정부 정책의 홍보에 나선 것은 정치 역학적 판단에 따른 행위로 보인다. 현 정부가 3대 개혁 등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전 정부의 정책이 틀렸던 것으로 평가되면 실정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면 부담은 더 커진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탄 채 내릴 수 없는 기호지세(騎虎之勢)의 처지다.
사의재 인사의 상당수는 '울며 겨자 먹기'의 심정일 것이다. 전 정권 때 시행된 주요 정책들이 국민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멀쩡한 원전산업을 망가뜨린 탈원전 정책, 자영업자를 고사시킨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용, 부동산 등의 통계를 조작했다는 감사원의 조사는 이들 역시 자신들의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의재 인사들도 궁예처럼 자신의 과오를 알고 있으며 누군가 멈춰주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잘못을 인정하고 내려오면 성난 국민에게 물려 죽을까 봐 국민의 등 위에 붙어 있을 뿐이다. 결국 해결의 주체는 국민이다. 내려올 때를 놓치고 아직 등 위에 올라타 있는 이들을 국민이 떨쳐내야 한다.
[김형주 오피니언부 kim.hyungju@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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