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읽은 것 같은 연주 들려주고 싶어"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2023. 1. 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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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는 좌절의…' 펴낸 피아니스트 백혜선
백혜선이 30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 제공=마스트미디어】

피아니스트 백혜선(58)이 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를 펴냈다. 1990년대 세계 유수 콩쿠르 입상자로 이름을 알렸고, 특히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성공 가도를 달려온 그는 스스로를 '좌절 전문가'로 칭했다.

콩쿠르 출전 당시 한국의 존재조차 몰랐던 심사위원들을 이겨내고 입상한 그가 처음으로 좌절한 분야는 스포츠였다. 어린 시절 수영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경북 대표로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했지만 곧 좌절을 맛봤다.

"경북 신기록을 갖고 있는 저를 스카우트해 간댔어요. 올림픽 선수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했었죠. 그런데 소년체전에서 최윤정 선수와 겨루고 숨막혀 죽는 줄 알았죠."

이후 피아노 앞으로 돌아와 여러 대회에서 입상하며 서울대 최연소 교수가 됐지만, 낙후된 시설에 만족하지 못해 외국으로 나가면서 또 한 번 시련을 자초했다. "음악은 손가락이 아니라 귀로 하는 건데, 귀를 더 망치는 환경에서 음악을 하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싶었죠. 외국에 가서 승부를 보고 싶었죠. 그런데 8년이 지났는데 교수 자리는커녕 지방 공연만 하게 됐어요. 그땐 인생을 포기할까도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는 자신의 지난 경험이 후배 연주자는 물론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고 했다.

"저는 항상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는 결국 정년퇴임을 맞잖아요. 계속 다음 스테이지가 있는 거죠. 앞으로의 저 자신을 개발해야 된다는 의미를 담기도 했어요."

백혜선은 이번 책이 자서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서전은 뭔가 이룬 사람들이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스승인) 변화경 선생님한테 인생을 책으로 남기셔야 한다고 할 때마다 '책은 죽을 때 쓰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우리 인생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런 걸 담았다고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자신의 첫 책을 지금 시기에 낸 것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지난 3년간 팬데믹으로 생을 마감한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잃으면서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제 어머니를 포함해서요. 이 책을 쓰는 동기가 됐어요. 하루하루가 굉장히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백혜선은 한국의 청년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이 자랑스럽다면서도, 자신은 그들과 또 다른 역할로 음악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음악회를 보러 온 분들에게 마음으로 무언가를 전할 수 있을까입니다. 어린 연주자들 보면 대단하잖아요. 기능적으로 조성진이나 임윤찬을 제가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이 들어도 '저 사람 음악은 가슴을 울리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해요. 제 연주로 상상하게 만들고 싶어요. 좋은 책을 읽는 것과도 같은 연주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오래 남을 수 있을지, 그게 제 가장 큰 고민입니다."

이번 에세이 발간을 계기로 미뤄왔던 국내 활동도 이어갈 예정이다. 오는 4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열고 11월에는 인천시립교향악단과 브람스 협주곡을 선사한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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