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 다크 히어로, 서울서 현대미술 가면을 벗기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 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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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한국 첫 개인전 '우리(WE)'

'동시대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기억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63)의 작품이 드디어 서울을 찾았다.

한국에서 열리는 카텔란의 최초 전시로, 2019년 누런 바나나 한 개에 포장용 덕테이프를 사선으로 붙인 '소장 불가' 작품을 무려 '12만달러(약 1억4000만원)'에 팔아버리며 '도대체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충격적인 방식으로 질문했던 바로 그 작가다.

현대미술의 멱살을 쥐고 자유자재로 농락하는 이단아, 장르 간 경계에 구멍을 뚫어버린 미술계 침입자,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블랙유머로 관객을 도발한 정복자인 카텔란의 작품 38점을 한자리에 모은 개인전 '우리(WE)'가 이달 31일부터 7월 16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30일 기자들과 만나 "2011년 미국 구겐하임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 개인전"이라며 "런던, 베이징 전시에도 카텔란 작품은 20점 내외였는데 이번엔 38점을 모았다. 이 정도 대규모 전시는 작가도 처음이고 리움 입장에선 큰 행운"이라고 강조했다.

카텔란의 화살은 예술, 역사, 종교 등 문명사회가 공히 금기로 여겨왔던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권위를 전복하려는 카텔란의 30년 작업 총체가 이번 한 번의 전시에 집약됐다. 그렇다고 작가의 전달방식이 한없이 무겁지는 않아서, 관객에겐 편안한 익살처럼 다가오는 점도 이번 전시의 장점이다.

리움미술관 M2 지하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보이는 첫 번째 작품 '무제'(2009)는 카텔란이 추구하는 블랙유머를 압축해낸다. 검게 칠해진 캔버스를 세 번의 칼질로 베어버렸는데, '알파벳 Z' 모양의 칼자국은 마치 쾌걸 조로의 상징 표지를 연상케 한다. 현실판 다크 히어로인 카텔란이 첫 번째 작품부터 '미술계 의적'을 자임한 것이다. 영화와 소설에선 조로가 가면을 쓰다 결국 적발되지만 카텔란은 현대미술의 가면을 벗기며 미술의 알몸을 공개하려 한다.

실제 말을 박제해 공중에 매단 '노베첸토(1997)', 발바닥을 사진으로 찍은 뒤 극사실 회화로 그린 '아버지(2021)' 등이 설치된 전시 전경(왼쪽)과 바닥을 뚫고 올라온 작가의 재치 있는 표정이 돋보이는 '무제(2001)'. 【사진 제공=리움미술관】

아돌프 히틀러의 참회를 표현한 '그(Him)'(2001)는 금기에 대한 발칙한 도전으로 읽힌다. 무릎을 꿇은 소년이 흰 벽을 쳐다보고 있다. 관객이 얼굴을 확인하면 조각상은 영락없이 콧수염 기른 히틀러다. 이 작품이 처음 등장한 건 2001년 스웨덴으로, 겉으론 중립국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나치에 협력했던 스웨덴인의 복잡한 감정을 노린 작품이라고 리움 측은 설명했다.

전시실 2층에선 바티칸의 시스티나 대성당을 재현한 '무제'(2018) 내부도 구경 가능하다. '최후의 심판' '천지창조' 등 미켈란젤로가 그린 전설적인 프레스코화가 서울 한복판으로 재현됨으로써 카텔란은 미술의 원본성과 종교의 권위에 도전한다. 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운석에 맞아 쓰러진 모습을 담은 조각상 '아홉 번째 시간'(1999)이 그 앞에 누워 있어 종교와 신념의 갈래에 선 인간을 질문한다.

'노베첸토'(1997)는 실제 말을 박제해 밧줄로 공중에 매단 작품으로, 땅을 박차며 질주하는 동물의 상징인 말을 무력하게 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배에 무력하게 실리는 말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았다"고 작가는 회고한 바 있다. 그 옆의 한 남성의 더러운 발바닥을 찍은 사진의 제목은 '아버지'(2021)로 본인의 발을 찍은 뒤 이를 극사실적으로 그린 회화 작품이다. 그 사이 소설 '양철북'의 북 치는 소년 오스카를 본뜬 한 소년이 주기적으로 북을 치며 관객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미술관은 곳곳이 직관적인 유머로 가득해, 그간 카텔란식 화법에 익숙하지 않던 관객일지라도 대번에 자기만의 해석을 내리게 만든다. 미술관 바닥을 뚫고 얼굴을 빼꼼히 내민 카텔란의 분신은 잘못 찾아온 불청객이 모든 걸 뒤바꾼 듯한 현실의 역설을 가늠케 하고, 작가의 유년 시절 모습을 재현한 인형이 세발자전거를 굴리며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이곳이 절대 엄숙해야 마땅한 공간이 아님을 관객에게 주지시킨다.

특히 전시실로 들어가는 로비는 작가의 요청에 따라 실제 지하철 플랫폼처럼 꾸며졌다. 입구와 로비에 누워 있는 두 명의 노숙자는 실제 사람이 아니라 리얼리티를 구현해 전시된 가짜 인형이다. 리움 전시를 앞두고 작가가 새로 설치한 작품으로 제목은 '동훈과 준호'(2023)다. 최고 명성의 미술관이 지하철 역사로 바뀌면서 곳곳에 비둘기가 관객의 정수리를 무심하게 보고 있어, 이곳이 미술관인지 자문하게 된다.

이제 카텔란의 대표작으로 통하는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2019)도 놓칠 수 없다. 벽에 테이프로 무심하게 붙여진 바나나를 보고 있노라면 소장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작품을 정의하는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있는지, 훼손된 원본과 무한 증식 가능한 복제품은 과연 무엇이 다른지, 비싼 값에 팔리는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을 가르는 요인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다 왜 카텔란이 마르셀 뒤샹의 '후예'로 불리는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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