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래스·가죽재킷 입고 노래…창극이 젊어졌다[花甲의 국립창극단]

2023. 1. 3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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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을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
‘창극의 진화’에 남녀노소 '환호'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의 본질’
2010년 초반 시기는 국립창극단의 변곡점이었다. 김성녀 예술감독이 이끄는 창극단엔 젊은 단원들(민은경 김소연 김준수)의 대거 영입으로 배우 폭이 넓어졌고, 시즌제 도입으로 편수가 늘었으며, 외부 연출가와의 협업으로 장르가 확장됐다.국립창극단의 간판 스타 김준수(왼쪽)와 민은경이 출연한 ‘귀토’. [국립극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창극이란 무엇인가’.

1962년 1월 15일 창단 이래로, 국립창극단은 끊임없이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오페라’, ‘국악의 뮤지컬’로 정의하던 창극은 시대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왔다. 창극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창극의 미래’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질문의 답은 무수한 실험을 통해 찾아갔다. 국립창극단은 ‘창극’이라는 견고한 그릇 안에서 기존의 관습과 규범을 깨뜨리는 시도를 이어왔다.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 적벽가, 수궁가, 심청가, 흥보가)에서 출발한 창극은 2023년 현재, 시대와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소재로 확장하고 있다. 지금의 창극은 여느 콘텐츠 못지않게 동시대 이야기를 나눈다.

오지원 국립창극단 책임 PD는 “창극은 태생 자체가 동시대성을 담고 있다”며 “어느 시대에나 공감대 형성을 해왔던 장르로 서서히 진화하하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대성’을 담고 있다 해도, 전통 장르가 대중성을 가지며 확장해나가는 일이 쉽지 만은 않다. 지금은 탄탄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지만, 모든 순간 관객의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12년이다. 안호상 국립극장장(현 세종문화회관 사장) 시절이었다. 안 전 극장장이 ‘레퍼토리 시즌제’를 시도한 해다. 오 PD는 당시를 떠올리며 “시즌제를 통해 작품의 물리적 숫자가 늘었고, 국내외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외부 연출가를 영입해 창극의 경계를 넓혔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의 ‘나무, 달, 물고기’은 인도, 한국, 중국 설화를 차용한 보편적 스토리에 전통음악의 틀을 깬 아름다운 선율의 조화로 관객을 새로운 창극의 세계로 이끈다. [국립극장 제공]

이 시기는 국립창극단의 변곡점이었다. 김성녀 예술감독이 이끄는 창극단엔 젊은 단원들(민은경 김소연 김준수)의 대거 영입으로 배우 폭이 넓어졌고, 시즌제 도입으로 편수가 늘었으며, 외부 연출가와의 협업으로 장르가 확장됐다. 배우, 작품, 연출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며 진화의 길로 들어선 때다. 더불어 ‘창극의 변화’를 고민하며 과감한 실험이 이어지자, 명실상부 ‘젊은 창극’ 시대가 도래했다. 한태숙 연출가와 협업한 ‘장화홍련’을 시작으로 ‘변강쇠 점 찍고 옹녀’와 같은 실창 판소리 작품, ‘안드레이 서반의 춘향’과 같은 해외 연출가와의 협업, ‘트로이의 여인들’과 같은 서양 고전의 창극화를 시도했다. 새로운 시도와 함께 국립창극단의 근간이 되는 전통창극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은 국립창극단이 시대와 세대를 아우른 방법이었다.

국립극장 관계자들은 국립창극단 ‘변화의 동력’은 ‘관객’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 PD는 “관객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변화는 없었을 것”이라며 “기존에 해오던 것에 대한 만족감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땐 엄청난 동력이 필요한데, 그럴 때마다 관객의 지지와 애정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과거 극장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도 있었다. 국립창극단의 창악부장 정미정은 “20여년 전만 해도 단원들이 관객을 동원하고, 티켓 판매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고 돌아봤다. 1999년 입단한 기악부 최영훈은 “대부분 지인이나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온 관객들이 많았다”고 했다. 군부대나 회사, 단체를 초대해 객석을 채우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나 다름 없다. 지금 국립창극단의 작품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 전쟁이다. 소리 좀 듣는다고 하는 ‘소수의 장르’에서, “뮤지컬 보듯이 한 번씩 보러 오는 대중 장르”(최영훈)에 가까워진 것은 고무적인 변화다.

입단 8년차인 ‘국립창극단의 간판 스타’ 유태평양은 “이전과 달리 관객들의 연령층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며 “젊은 관객들이 많아져, 이젠 남녀노소 창극을 즐기러 오는 관객들이 늘었다는 점을 체감한다. 객석이 매번 꽉 차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풍경이다”라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중 ‘게우사’. 국립창극단 단원 김우정(왼쪽)과 김수인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맛깔난 소리가 일품이다. [국립극장 제공]

객석이 차지 않던 때엔 창작자의 섭외도 어려웠으나, 창극의 인기가 높아지자 내로라하는 음악가, 연출가, 작가들이 국립창극단으로 향한다. “창극을 미지의 세계”라며 꺼리던 창작자들이 “이젠 먼저 러브콜을 보내온다”. ‘기생충’, ‘오징어게임’의 정재일은 일찌감치 국립창극단이 점찍어 다수의 작품을 함께 한 음악가다.

지난 수십 년,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장르”로 성장한 창극은 “형식에 국한하지 않아 더 새롭고 다양한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오 PD는 “전통에서 시작해 새로운 재료를 담되, 소리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착창극단의 정체성이 곧 ‘소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면서도, 본질을 고수하는 것이 ‘창극의 미래’라는 공감대가 내부에서 니온다.

현재 국립창극단의 가장 큰 고민도 시대와 세대의 연결이다. 유태평양은 “창극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태어난 장르이기에 태생상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며 “시대에 따라 대중성을 가미에 웃음과 공감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와 더불어 신구의 조화를 이루는 것은 국립창극단이 놓치 않으려 하는 방향성이다. 오 PD는 “실험적 시도와 신진들의 창작, 새로운 창작진의 영입 등 관객의 입장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되, 편향된 콘텐츠를 지양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전통과 서양 고전, 여성 소리와 남성 소리, 다섯 바탕의 균형 있는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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