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국가는 없다, 각자도생뿐”…신군부 장악 장기화 조짐

한겨레 2023. 1. 3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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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 시위]미얀마 편지
쿠데타 2주년
지난 24일 미얀마 마궤 지역 민부시에서 상인 한 명이 서 있다. 민부/AFP 연합뉴스

2월 1일은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2주기가 됩니다. 이에 맞선 시민 저항으로 지금까지 2700여명의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1만3000여명은 여전히 구금상태입니다. 미얀마와 태국·중국·인도와 국경을 맞댄 지역에선 여전히 시민군과 신군부 간의 교전이 이어지고 있지만, 경제를 이끄는 주요 도시들은 신군부가 장악해 통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총구를 노출한 군경의 무장 차량들의 활보하는 상황을 보며 느꼈던 공포감이 차츰 무뎌지면서 도시민들은 신군부의 폭정에 저항 의지를 내려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피로감들로 인해 시민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삶의 터전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시민들은 여전히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을 등지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와 억울함을 스스로 대변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안타깝지만 생계를 선택한 시민들을 원망하기엔 이들의 삶이 너무 피폐해졌습니다. 도시 내 양극화는 갈수록 커져 가고 있습니다. 신군부가 도시에 내렸던 야간통행금지 등 제재를 완화하면서 대학 캠퍼스는 서서히 학생들로 채워지고, 야간 유명 식당과 바에는 주차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차량들이 넘쳐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로 길 건너편에는 구걸로 생계를 연명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이 둘의 삶의 색깔이 너무나 확연히 구분됩니다. 새해를 맞아 유명 관광지 언덕 위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여행객들과 언덕 아래 일렬로 앉아 구걸하는 거주민들의 사진을 보며 불과 2년 만에 망가진 미얀마의 현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 현지에 거주하며 거의 1년 동안 군사정변의 실태 연구를 해왔습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미얀마와 내재적 시각의 차이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신군부의 무력 장악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을 내렸습니다.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이유는 지역 개발의 불균형입니다. 미얀마 전체인구는 5400만이지만, 대한민국의 6.5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를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중요한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지역은 매우 협소합니다. 지난해 9월 국민통합정부(NUG)와 유엔의 미얀마 특별자문위원회는 산악과 변방을 거점으로 활동해 온 시민군과 소수민족 저항단체가 국토의 절반이상을 장악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정상적 기능을 하는 도시는 전체 면적의 35%이고, 인구는 900만 정도로 전체 인구의 18%정도에 불과합니다. 신군부는 이 지역을 선제적으로 완전히 장악했었습니다. 또 도시 내에 빈곤층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을 모조리 철거하고 그 안에 사는 이들을 외지로 쫒아냈습니다. 도시민들만 철저히 통제하면 국가 운영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국민통합정부는 영토에 대한 ‘장악력’을 주장하지만 이는 대부분 산악 지역이거나 저개발 지역입니다. 즉 정치와 경제에서 실제 영향력을 갖는 지역을 차지한 신군부에는 전혀 타격을 못 준다는 점입니다. 소외된 산간 등 오지 마을 거주민들은 거의 매일 신군부의 전투기와 무장 헬기의 폭격대상이 됩니다. 남녀노소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총격에 희생은 늘어나고 피난민은 증가하는 실정입니다.

두번째로 국민통합정부와 소수 종족단체와의 통합협상이 여전히 지연되고 있습니다. 국민통합정부는 쿠데타 직후 시민저항단체, 소수민족단체들과 ‘국민통합협의체’를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소수종적 단체들은 각각 긴 역사적 베경과 정치적 목표를 자고 있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연방주의’ 즉 소수 종족단체들의 자치권 주장 등으로 인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통합정부의 섣부른 저항 선언이 무책임한 희생으로 이어졌다는 원망 섞인 반감 여론도 커졌습니다. 예를 들어 2021년 9월 준비되지 않은 국민저항전쟁 선포로 전선에 참가한 청년들의 희생이 증가했습니다. 그해 10월엔 ‘1년 내에 신군부를 축출하겠다’는 공식 발표와 대공 군사무기 보유 발표가 있었지만, 오히려 신군부의 폭격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 무력함을 고스란히 노출했습니다. 또 새해 들어 북부지역 소수민족무장단체 산하에 ‘버마인민자유군’을 창설한다는 소식이 국민통합정부와 합의가 된 것처럼 발표됐지만, “지속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런 미숙한 모습으로 인해 시민들의 기대는 낮아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생파탄에 의한 강력 범죄 증가입니다. 범죄의 대상에는 외국인들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이젠 야간에 택시를 타는 일은 엄두도 못 냅니다. 미얀마는 전통적 불교국가로 국민들의 선한 미소가 특징이었던 안전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2년 만에 강력 범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시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쿠데타 초기 제일 먼저 떠올랐던 신군부에 대한 공포보다 범죄의 공포가 더 커졌습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을 보면, 이제 신군부보다 범죄에 대한 공포가 더 커졌다고 말합니다. 제가 조사한 시민 한 분은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는 신군부도 국민통합정부도 아무도 믿지 않겠다. 이 곳에 국가는 없다. 우리는 각자도생할 뿐이다.” 미얀마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입니다.

천기홍 부산외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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