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존재가 오히려 강할 수 있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1. 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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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가 찜한 작가-갤러리(6) 88년생 우한나-지갤러리
‘날것 그대로’ 작업실 공개 형식
상업화랑 지갤러리서 데뷔 화제

국내 아트선재센터 3인전 이어
英 No.9 코크스트리트 개인전
우한나, ‘The day’(2022) <사진제공=지갤러리>
우한나 오픈스튜디오 전시장 전경 <사진제공=지갤러리>
기묘하면서도 신나는 인도풍 음악이 흘러나온다. 높은 천장에 하얗고 깨끗한 갤러리 공간이 형형색색 공단 천 조각과 실패, 재봉틀로 어지럽다. 작업 테이블 너머 다양한 드로잉 작업물과 함께 사람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거대한 호접란 작품 ‘bleeding’의 꽃잎 표본이 걸려 있다.

서울 청담동 상업화랑 지갤러리가 화려한 작업실로 변신했다. 작가와 조수들이 작업에 매진하는 낯선 풍경에 관람객들은 슬깃슬깃 훔쳐 보고 소곤소곤 대화를 나눈다.

1988년생 설치미술 작가 우한나의 담대한 실험이 펼쳐진 현장이다. 2월 24일까지 예약제로 열리는 이 전시는 ‘커넥션: 우한나 오픈스튜디오’다. 이곳에서 창조되는 작품들은 국내 비영리전시장 스페이스보안2 (2~3월)과 아트선재센터(3~6월), 영국 프리즈가 운영하는 런던 전시공간 ‘넘버나인 코크스트리트’ 에서 3월 9일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차별화된 재료와 조형 언어로 주목받아온 우 작가는 지난해부터 국내외 여러 곳에서 전시 요청이 몰렸지만 을지로의 좁은 개인 작업실에서는 도저히 소화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이때 지갤러리 정승진 대표가 손을 내밀었다. 정 대표는 “회화 일변도인 국내 미술계에 설치와 태피스트리 영역이 확장되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보석 같은 작가 우한나를 만났다”고 했다.

우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와 동 대학원을 마치고 송은아트큐브와 피에스 사루비아 등에서 개인전, 아르코미술관과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번 오픈 스튜디오가 상업전시 데뷔전인 셈이다. 매일 오전 2시간, 오후 1시간 공개되는 시간에 맞춰 예약하는 관람객들은 제작 중이거나 완성된 작품들을 보고 구매하기도 한다.

우한나, ‘Mama’ (2023) <사진제공=지갤러리>
버려지는 자투리 천을 바늘로 엮어내는 패브릭(직물) 설치 작업으로 유명한 우 작가는 페미니스트이자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작품으로 펼쳐 왔다.

우 작가는 “처음에는 이렇게 작업 중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줘도 될까 걱정했는데 관람객 반응도 흥미로운 작업의 일부가 됐다”며 “기존 작업실의 10배나 큰 공간에서 기존 작업의 2.5배 크기 작품을 만드니 갑자기 키가 큰 느낌이다”라고 했다. 그는 “패브릭은 유연하고 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나를 표현하기에 제격”이라며 “분절된 생명체, 상상의 동식물 등을 통해서 가혹한 도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젊은 여성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주변 여성들이 경험하는 임신, 출산, 육아, 경력중단 등의 현실을 작품화한다. 초현실주의 여성작가들에 영향을 받아 전혀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함께 공존하면서 파괴적이거나 창조적인 가능성도 품는다.

전시의 대표적 소재는 미국 텍사스 사막에 존재한다는 마른풀 ‘회전초’였다. 죽은 듯 보이지만 말라 있을 뿐 불이 붙으면 타는,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존재가 엉켜서 협력하는 작업으로 변신했다. 숙원사업으로 묵혀뒀던, 여성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호접란도 펼쳐져 있다. 신체 장기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작품은 형상과 색상의 불일치가 기묘하다.

우한나 , ‘bleeding-5’ (2023) <사진제공=지갤러리>
우한나, ‘Abdomen: Grapes’ (2023) <사진제공=지갤러리>
사다리 타고 두려움없이 작업하는 게 특기인 작가는 벼랑 끝에서 작업한다는 느낌이 들 때 밀려 들어온 전시 소식에 아직도 얼떨떨하다는 반응이다. 아트센터 3인전은 지난해 프리즈서울 때 작업실을 찾았던 스위스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런던 전시는 지갤러리의 동반 기획서가 선정된 덕분에 성사됐다.

정 대표는 “서구에서는 패브릭 설치작품이 인기가 많은데 국내에서는 생경한 것이 현실이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장르의 경계를 낮출 수 있었다”면서 “국내보다 해외 수요가 높은 장르인 만큼 우 작가를 세계에 알리도록 애써보겠다”고 했다.

◆ MZ가 ‘찜’한 작가 88년생 우한나는 우한나 작가는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을 주로 패브릭 설치작업을 통해 표현한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지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동물이나 식물, 인간 등 존재를 구분 짓지 않고 함께 품을 수 있는 세계관을 패브릭 설치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철 등 기존의 단단한 조각 소재보다는 유연하면서도 부드러운 패브릭 소재에 꽂혀서 작업에 매진해 왔는데 인테리어디자인을 한 어머니 영향인지 다양한 색깔을 사용하는 감각이 탁월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송은아트큐브와 피에스 사루비아 등 비영리공간에서 개인전을 열고 아르코미술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우한나 작가
◆ MZ가 ‘찜’한 지갤러리는 정승진 대표는 2009년부터 서미앤투스 등에서 갤러리 경력을 쌓고 2013년 지갤러리를 설립했다. 동시대에 활동하는 역량 있는 국내외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갤러리를 지향하는 의미에서 만국박람회(Great Exhibition)를 따서 갤러리 이름을 지었다. 홍정표와 이미정, 조제 등 설치나 조각 작가들과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정민 등을 통해 평면 회화 일변도를 탈피해서 매체의 다양성을 펼치고픈 욕심이 있다. 조지 몰튼-클락 등 해외 작가를 초기에 발굴해 아시아에 처음 소개하는 등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데 열심이다. 우 작가의 오픈 스튜디오 형식 전시를 마친 후 3월경부터 미국 벽화 작가 테일러 화이트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정승진 지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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