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문 정부만 요금 안 올려서…" 팩트체크 해보니

이경원 기자 입력 2023. 1. 30. 14:03 수정 2023. 1. 3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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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력 한파와 가스 요금 인상이 겹치면서 '난방비 폭탄'은 현실이 됐습니다. 여야는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폭탄 돌리기'를 했다며, 야당은 정부 대책이 미흡한 결과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바쁩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LNG 가격이 폭등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주택용 가스 요금을 인상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은 주택용 가스 요금을 218%, 영국 318%, 독일 292% 올렸다."
-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지난 26일 비상대책위원회

"난방비 급등은 무능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 결정 결과다. 틈만 나면 거짓말, 무책임한 전 정부 탓, 정부 여당의 책임 전가 공작을 중단하고, 이를 타개할 전향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지난 27일 최고위원회

그러니까 국민의힘의 주장은 가스 요금 인상 요인이 계속 있었음에도 다른 나라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이를 방치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민주당은 틈만 나면 문재인 정부 탓을 하고 있다며 받아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비슷한 내용의 논평을 계속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정말 가스 요금을 많이 올렸을까요. 미국과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가스 가격과 주택 가스 요금 변동의 상관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이 분석했습니다.

주택용 가스 요금, 다른 나라는 얼마나 인상됐을까

SBS 사실은팀은 국제 천연가스 변동 추이과 주요 국가의 주택 가스 요금 자료를 확보한 뒤, 두 자료의 기간을 똑같이 맞춰서 비교했습니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한국 액화천연가스(LNG) 현물 도입 기준가격지표인 JKM을, 주요 국가 주택용 가스 요금은 한국가스공사가 분석한 자료를 확보한 뒤, 글로벌 통계분석 업체인 스태티스타(Statista)의 자료와 맞춰보는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아래 표는 분석 결과입니다.


천연가스 국제 가격은 2021년 하반기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조짐을 보이며 국제적 긴장이 높아졌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한국의 가스 요금은 1MJ에 16.16원으로 일정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서민 부담을 이유로 요금 올리는 것을 억제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국제 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가정용 요금도 기민하게 인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경우, 2021년 10월 1MJ에 26.57원에서 다음 달 46.33원으로, 불과 한 달 만에 74% 넘게 올린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고 세계 가스 가격은 그즈음 급격히 치솟습니다. 주요 국가들의 가스 가격 인상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우리 가스 가격은 그대로였습니다. 

이후 국제 가스 가격은 상승세는 주춤했지만, 지난해 하반기 다시 급등해 지난 8월 정점을 찍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석 달 정도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정부는 이 같은 추세를 배겨내지 못하고 가스 요금을 올렸고, 결국 이번 겨울 국민들은 '난방비 폭탄' 고지서를 받게 됐습니다.

데이터만 보면, "다른 나라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가 요금 인상을 하지 않았다"는 국민의힘 주장은 '대체로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국민의힘과 주요 언론에서, 우리의 요금 인상이 더딘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독일 사례를 자주 비교하지만, 독일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는, 스태티스타 자료 기준 49%로 EU 평균 38%보다 훨씬 높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위 그래프를 봐도 독일의 가스 요금 변화가 더욱 극적입니다. 참고로 미국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이고, 한국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는 6% 수준입니다.

물론, 독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훨씬 더 예민할 수밖에 없을 뿐이지, 전쟁이 전 세계 가스 공급량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왜 요금 인상이 더딜까 : ① 두 번의 선거

전체적인 맥락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만 가스 요금 인상이 더뎠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 조짐이 보였던 2021년 하반기, 이미 국제 가스 가격에 대한 우려가 그대로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권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당시 정치권의 시선은 이듬해 있을 3월 대선에 가 있었습니다. 대선 즈음, 가스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말하는 정치인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말했다가는 선거에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은팀이 가스 대란 당시 나왔던 국민의힘 윤석열,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약집에서 에너지 관련 공약을 확인해보니까, 윤석열 당시 후보는 '탈원전', 이재명 당시 후보는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에너지 가격을 어떻게 조정하겠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조화시켜 탄소중립을 추진하겠습니다.
-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공약집 269쪽

지원 대상 확대로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 해소하겠습니다.
• 에너지 바우처 지급 대상 확대로 에너지 빈곤 사각지대 해소
• 노후 주택 단열, 냉방기기 지원 등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 확대
-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공약집 377쪽

대선 직후 정치적 부담이 적어질 즈음, 문재인 정부는 4월과 5월에 연속으로 2차례 요금을 올렸습니다.
당시 대통령인수위에서는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국내 파급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원론적 주문에 그쳤습니다.
 
거시경제 안정과 대내외 리스크 관리 강화
ㅇ (서민 물가 안정화) 비축 기능 강화, 수급 안정 대책 등을 통해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 요인의 국내 파급 영향 최소화
- 대통령인수위,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48쪽.

그리고 6월,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가스 가격 동결 방침을 다시 밝힙니다. 아시다시피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뒤, 정부는 7월과 9월, 각각 6.8%와 15.5%의, 꽤 높은 폭의 가격 인상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크라이나 전쟁 즈음 가스 가격이 한창 급등할 즈음, 요금 인상을 주장하는 정치인은 없었습니다. 그건 여야 모두 같았습니다.


물론, 우리만 선거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지난해 프랑스도 비슷했습니다. 프랑스는 지난해 4월 대통령 선거, 6월 총선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3월, 재선에 도전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국제 가스 가격이 치솟는 상황 속에서, 가스 요금을 묶어 놓겠다고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가 부과하는 휘발유 가격 규제가 가급적 6월 이후, 연말까지 연장되어야 한다"면서 "특히 가스와 관련해 우리는 6월을 넘어설 것이며 연말까지 가야 한다"고 유세 현장에서 말했다.
French President Emmanuel Macron on Monday said state-imposed curbs on gas prices should be extended beyond June, preferably until the end of the year, to respond to price surges linked to the war in Ukraine. “And with regards to gas in particular, we will go beyond June, we need to go until the end of the year”, Macron said at a campaign event.
- 로이터, 2022년 3월 8일 자.

그리고, 프랑스는 지난해 하반기 모든 선거가 끝난 뒤, 가스 요금을 대폭 올렸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한국은 왜 요금 인상이 더딜까 : ② 정부의 가격 결정 구조

또 하나 고려할 게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우리는 정부의 가스 가격 통제가 매우 강하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가스공사의 최대 주주는 기획재정부입니다.

정부의 가스 가격 통제의 핵심 구조는 가격 폭등의 '충격'를 '유보'한다는 겁니다. 한국가스공사에는 '미수금'이란 게 있습니다. 가스 판매 가격을 수입 원가보다 낮게 책정한 데 따른 영업 손실입니다. 국제 가스 가격이 오를 때는 싼 값에 팔기 때문에 미수금이 쌓이지만, 가스 가격이 내리면 이를 회수할 수 있습니다. '가격 상한제' 정도로 가격을 제한적으로 묶어 놓는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의 가스 요금이 훨씬 안정적인 이유입니다.


문제는 이번 같은 이례적인 가스 가격 폭등 상황에는 요금 인상 말고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점입니다. 가스 가격 시장이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사이클 속에서는 잘 돌아갈 수 있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외부 변수가 커질 때, 갚지 못하는 외상값이 계속 쌓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연가스를 100%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 가스를 비롯한 에너지는 공공재 성격이 짙고, 미수금을 통한 안정적인 가격 구조가 서민들에게 유리한 구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만, 국제 가스 가격에 대한 요금의 탄력성이 크지 않은 까닭에, 가스 요금 변동성에 대한 국민들의 면역도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요금 인상의 충격은 더 크게 다가오는 측면도 있습니다.


양비론이 무책임하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팀이 찾은 여러 데이터와 통계, 자료들을 보면, 여야 공동 책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례적인 국제 가스 가격의 폭등, 문재인 정부의 예측 실패, 엄중한 시기 두 번의 선거, 요금 인상 문제에 입을 닫았던 여당과 야당, 전 정부를 탓하며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 여당까지, 누구 하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안에 대해 책임의 지분을 명확히 하는 것은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취지에 반한다고 사실은팀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책 입안의 주도권을 쥔 정부와 여당, 의회 권력의 대다수를 차지한 야당, 당위적으로 봐도 남 탓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은 "국제 가스 가격 폭등에 다른 나라는 가스 요금을 인상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는 국민의힘 주장을 팩트체크 했습니다. 국제 가스 가격 추이와 주요 국가 주택 가스 요금의 상관 관계를 분석한 결과, 사실은팀은 국민의힘 주장을 '대체로 사실'로 판단합니다. 다만, 우리의 가스 요금 인상 속도가 왜 이렇게 더뎠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데이터와 함께 선거라는 정치적 상황, 나아가 우리의 가스 요금 책정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게 사실은팀의 결론입니다. 이번 '가스비 폭탄' 논란은 단순히 누구 하나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여러 맥락이 얽히고설킨 결과인 까닭입니다.

(인턴 : 정수아, 강윤서)

이경원 기자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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