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전히 도전이 설레는 26년차 '참배우' 김현주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3. 1. 30. 13: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김현주, 사진제공=넷플릭스

눈빛은 단단했고 말에는 여유가 실려 있었다. OTT 통합검색 및 콘텐츠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의 1월 4주 차 통합 콘텐츠 랭킹 1위를 기록한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서 김현주가 연기한 주인공 정이는 단단한 재질을 지닌 여전사다. 연상호 감독이 "전사인 여성 캐릭터를 가장 잘 소화할 수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배우를 생각하니 김현주 배우가 떠올랐다"고 말했을 만큼 '정이'는 김현주를 위해 존재한 캐릭터였다. 1위라는 성적이 증명하듯 김현주의 '정이'는 모험이 아닌 확신의 선택이었다.  

'정이'(감독 연상호)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물이다. 김현주는 제 몸집보다 큰 로봇들을 거뜬히 박살내는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화려한 액션과 애끓는 모성애를 동시에 그려내며 관객과 눈맞춤 했다. "국물이 끝내줘요"를 외치던 나이어린 소녀는 이제 단단한 모성을 지닌 누군가의 엄마를 연기한다. 세월은 그에게서 젊음을 앗아간 것이 아닌, 내공 이상의 단단한 감정의 벽들을 쌓아올렸다. 

허나 키노라이츠 1위라는 성적과 별개로 '정이'에 대한 평가는 분분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시도가 많지 않았던 장르였고, 낯선 장르에서 오는 경계심 내지는 기대감이 작품의 호불호로 이어졌다. 

"SF물을 도전하는 데 있어서 연상호 감독님을 의지하고 믿었어요.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거기 때문에 미리 예단하지는 않았죠. 그저 이러한 발상을 연상호 감독님이라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신뢰가 있었어요. 때문에 '정이'에 대한 모든 평가들에 있어서 억울하거나 분한 건 없어요. 다들 저마다의 기대감을 갖고 작품을 보시는 거잖아요. 물론 만족과 불만족의 간극을 줄여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는 작품을 만드는 게 대중문화이지만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여러 시선들이 공존하는 것들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김현주, 사진제공=넷플릭스

김현주에게 '정이'는 분명 도전이었다. 손에 들린 총은 자연스러워야 했고 풍기는 아우라는 다부져야 했다. 그동안 출연작에서 주로 대사와 눈빛을 통해 인물의 저변을 쌓아왔다면, '정이'에선 말보단 몸으로 인물을 표현해야 했다. 하지만 김현주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걱정보다는 "재밌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만 나이 45세의 김현주는 여전히 도전이 설레는 배우다.

"시나리오를 받고 설정 자체만 들었을 때는 흥미진진했고 흥분되는 지점이 많았어요. 신기했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작품이 어떻게 완성될지는 뒷전이었어요. 이런 작품이 한국에서 나오는 전례가 없었잖아요. 생소한 장르를 하는 것에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 다음에서야 액션과 연기에 대한 걱정을 했죠. '지옥' 촬영할 때 액션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어요. 그때 다져놓은 게 있어서 '정이'의 시작이 수월했던 점이 있었어요. 그래도 와이어나 총을 들고 하는 액션은 또 다르더라고요. 총 들고 있는 모습이 어색하면 안되니까 비주얼적인 임팩트를 위해서 집에서도 실제로 장난감 총을 계속 쏴보곤 했어요. 처음에는 마냥 신났었어요."

놀라운 건 '정이'에서 김현주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신들을 직접 소화했다는 점이다. 더미나 CG로 대체했을 거라 생각됐던 장면까지도 김현주가 실제로 연기한 뒤에 후반 작업을 거쳐 완성했다. A.I 실험을 하다 가동을 중단해 동작을 멈췄을 때도, 실험실 공중에 매달렸을 때도, 상반신만 있는 부분 조립 상태에서까지. 조심스레 호흡하며 진짜 기계처럼 제자리에 멈춰 있었고, 그린 수트를 입고 정이의 세세한 장면 하나하나까지 본인의 얼굴을 녹였다. 

"기본적으로 A.I로 깨어나는 장면의 기본은 오랫동안 숨을 참다가 버튼을 누르면 가쁘게 호흡을 내뱉는 버전으로 촬영했어요. 실험 도중에 멈추는 상태에선 최대한 이상한 표정을 내면 더 동적인 느낌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여러 표정을 지으려고 했고요. 실험실 안에서 매달려 있던 장면들도 실제로 제가 다 연기했어요. 후반 작업으로 CG를 잡아주셨고, 다른 인물들이 대사할 때 옆에서 혼자 가만히 부동 자세로 있었어요. 정이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실제로 현장에서 제가 다 직접 연기한 거라고 보시면 될 듯해요. 상반신만 나오는 장면도 그린 슈트를 입고 다 연기했어요."

김현주, 사진제공=넷플릭스

극중에서 딸로 열연한 고(故) 강수연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드러냈다. '정이'는 강수연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김현주에게도 강수연의 존재는 든든하게 의지할 수 있는 선배였다.

"저에게 강수연 선배님은 완전 전설 속 인물이었어요. 강수연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내가 눈을 마주치면서 같이 연기를 하는 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했어요.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 정말 좋았어요. 사적인 자리에서도 정말 어른 같으시고 제가 귀여움 떨면서 기댈 수 있었어요. 저도 이제 연차가 있다보니까 현장에서 선배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강수연 선배님이 계셔서 오랜만에 칭얼대기도 하고 상담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선배님과 함께하면서 '참 좋다'는 순간이 굉장히 많았어요."

김현주에게도 '정이'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영화 타이틀롤로 활약한 작품이자, 전설 속 인물과 함께 연기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마중할 수 있던 작품이었고, 이름 앞에 '도전하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안겨줬다. 그러나 김현주는 자신이 걸어온 길 앞에 노랗게 익은 벼처럼 한없이 겸손하다. '정이'에 캐스팅된 이유조차 "연상호 감독의 용기"라며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이유를 찾고 감사함을 드러낸다. '김현주의 새로운 전성기'라 평가받으며 최근 여러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약할 수 있던 이유는, 그의 유연한 태도와 정체하지 않는 사고였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배우라면 누구나 새로운 걸 해보고 싶지 않을까요. 주로 드라마를 했고 아무래도 한계점이 부딪히는 것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매체 변화가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고요. 도전을 하게 된 계기는 없지만 매체의 변화 속에서 여러 제안들이 있었고, 어떤 시점에서는 혼자 끌고가는 것들을 많이 하다보니까 힘에 부치는 것들이 있었어요. 부담을 느꼈던 것 같아요. 자신감을 잃은 시점도 있었고요. 그래서 다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 바람들이 시대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변주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Copyright © ize & iz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