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후진국형 중환자실

권도경 기자 2023. 1. 3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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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에겐 단 1초도 머물고 싶지 않은 비인간적인 공간이죠. 가까이 있는 환자가 배변하는 모습을 봐야 하고, 인튜베이션(기관 내 삽관)하는 환자가 기침이라도 하면 비말이 그대로 튀기도 해요. 다른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본 후에는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국내 한 상급종합병원 전문의는 자신이 맡고 있는 중환자실을 이렇게 몇 마디로 간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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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경 사회부 차장

“환자들에겐 단 1초도 머물고 싶지 않은 비인간적인 공간이죠. 가까이 있는 환자가 배변하는 모습을 봐야 하고, 인튜베이션(기관 내 삽관)하는 환자가 기침이라도 하면 비말이 그대로 튀기도 해요. 다른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본 후에는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국내 한 상급종합병원 전문의는 자신이 맡고 있는 중환자실을 이렇게 몇 마디로 간추렸다. 국내 대부분 중환자실은 다인실이다.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 많은 환자를 볼 수 있어 후진국에서 흔한 병실 유형이다. 이 같은 개방형 병실에서는 환자 권리나 사생활은 보호받을 수 없다. 환자들은 병실에서 2차 감염되기도 한다. 항생제 내성으로 생기는 ‘다제 내성균’이 여러 환자가 모여 있는 중환자실에서 쉽게 퍼질 수 있어서다. “한국은 의료 선진국으로 불리지만 중환자실은 후진국 수준이에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중환자실 구조를 바꿔 달라고 촉구했지만 바뀐 게 없어요. 감염병 유행이 다시 닥쳐도 똑같을 겁니다.”

국내 중환자 진료체계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민낯을 드러냈다. 다인실은 원내 전파에 취약해 신종감염병 치료에는 적합하지 않다. 감염병 중환자를 받으려면 1인 격리실과 음압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신종감염병이 돌 때마다 민간 대형병원들이 ‘공사판’으로 변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가 민간 병원에 중환자 병상 확보 행정명령을 수차례 내렸지만, 병상을 빨리 마련하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 결과 병상대란이 터져 제때 입원 못하거나 치료받지 못해 숨지는 사람이 많았다.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중환자실이 1인실이다. 노련하게 치료할 수 있는 의사들이 있는 데다가 간호사는 중환자 1∼2명만 돌본다. 이들은 재정이 남아돌아 의료 자원을 아끼지 않는 걸까. 선진국이 1인 중환자실을 택한 이유는 사회적·의료적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어서다. 우선 감염병이 유행하면 바로 격리실로 바꿀 수 있다. 치료의 질이 높고 환자 예후도 좋은 편이다.

중환자실 구조 개선은 개별 병원이 추진하기 쉽지 않아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전국 중환자 병상은 총 8000개다. 이중 절반만이라도 1인 음압격리실로 바꾼다면 약 1조2000억 원이 든다. 이는 정부가 지난 3년간 코로나19 병상 손실보상금으로 쓴 8조3911억 원의 14%에 불과한 액수다. 경제 논리로 따져봐도 비용 효과가 높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일회성 예산으로 병상을 사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땜질 처방”이라며 “1인 중환자실 등 의료 인프라에 미리 투자했다면 코로나19 유행을 훨씬 안정적으로 넘길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신종감염병 위기는 5∼6년 주기로 찾아오고 있다. 몇 년 뒤 다른 감염병 사태가 온다면 코로나19 사태로 겪었던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약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된다면 치료받아야 할 사람이 제대로 진료를 못 받거나,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숨지는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신종감염병 대응의 핵심은 중환자와 사망자 관리다.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을 앞둔 지금 중환자 진료체계를 뜯어고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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