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꼰대한테 제대로 대처하는 방법 - 김경일 교수 편

심영구 기자 입력 2023. 1. 30. 11:06 수정 2023. 1. 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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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우재가 만난 열두 번째 '지식인싸', By 남작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지식인싸'를 만나는 <인싸이팅>, 열두 번째 손님은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야.


미니언즈를 연상케 하는 외모와 중저음의 '꿀 보이스' 뿐만이 아니야. 국내 인지심리학 분야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경일 교수의 진짜 매력,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귀 기울이게 만든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지혜로운 인간 생활


그동안 만나온 '지식인싸'들 중 시간을 빼기 쉬운 분들은 없었지만 특히 만나기 어려운 분이었어. 약속된 일정을 모두 소화하기 위해 이동시간까지 고려해 분 단위로 짜인 스케줄을 듣고 궁금해졌지. 이분, 대체 얼마나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걸까.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는데 1년에 강연이 100번은 넘는 것 같고요, 사실 회의를 더 많이 해요. 대학에서 하는 회의도 있지만 기업에서 광고를 어떻게 만들까, 회사 퇴사자들을 어떻게 줄여볼 수 있을까, 신제품이 나올 때 색깔은 뭐로 할까, 크고 작은 회의들이 많아요."

이외에도 대학 수업, 방송, 유튜브까지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게 결국엔 인지심리학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고 해. 그래서일까.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는 강연을 할 때 특히 얻어지는 '인사이트'가 있다는 거야.

"자기 손으로 직접 직원 다섯 명씩 해고시킨 부장님들이 100분 정도 앉아계신 기업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할당하는 기업들이 있거든요. 대단히 안 좋은 방식이에요. 동의하기도 어렵고. 그 사실을 모르고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느끼는 거죠. 마음이 그냥 너덜너덜해진 사람들, 전쟁 영화 보면 백병전 치르고 부하 많이 잃은 소대장들처럼 멍해져 가지고, 그 부장님들도 어마어마하게 다친 사람이거든요. 성인 대상으로 강연하고 몸이 다 젖어서 나온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이별을 당했던 사람과 남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뇌과학에서 몸을 다친 사람, 교통사고 당한 사람, 칼에 찔린 사람, 뼈가 부러진 사람이랑 똑같구나 하는 연구들이 그때부터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중학교 2학년 대상으로 강의할 때도 몸이 다 젖어서 나옵니다. 그래도 1년에 한 5번, 6번 정도는 해요. 꼭. 억지로라도. 그 강의를 갔다 오면 제가 강해져 있어요. 지옥 훈련을 마친 것처럼."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토록 심리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지혜로운 인간관계 지침서? 지적 유희? '너'는 '너', '나'는 '나'인데 왜 우리는 굳이 '너'의 내면까지 들여다보고 알아야 할까.

"우리가 정말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죠. 왜 인간은 유난히 한 부모 밑에서 나온 형제자매의 성격이 가장 동떨어져 있나? 진짜 다르거든요. 아직은 완전한 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보는 거예요. 다산하지 않잖아요, 인간은. 그리고 태아로 열 달이나 어머니가 품어야 되고, 사람 구실 하려면 10년, 20년씩 걸리고. 한 개체 한 개체를 잃으면 안 돼요. 이 대목에서 어떤 식으로 진화했을까 저희들이 상상하는 거예요. 아마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똑같은 행동을 취하지 않게 만든 거죠. 저쪽에서 뭐가 날아오면 형은 앞쪽으로 도망가지만 동생은 뒤쪽으로 도망가요, 그러면 최소 절반은 사니까. 이토록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개인 차, 다양함. 똑같은 걸 보고도 다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하는 능력. 타인의 마음을 한번 추정해 보는 능력. 그게 없으면 세상이 평화롭지가 못해요. 저 사람은 그냥 그렇구나 라고 생각을 멈추지 않고 틀렸어, 공존할 수 없어. 그래서 인간 역사를 보면 다른 종교, 다른 신념들로 그렇게 처절하게 싸웠잖아요. 타인을 이해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능력, 그 개인의 능력도 있지만 사회나 국가의 능력이 그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시기죠. 그런 시대적 요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심리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거죠."

인간 사회의 갈등 없는 세상을 위해, 그래, 타인을 이해해야지. 그런데 놀랍지 않아? 타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걸 '능력'이라고 보는 게.

"하다못해 새로 스마트폰을 하나 사도 매뉴얼이 나오는데 사람 설명서에 대한 매뉴얼을 우리가 한 번도 공부를 안 한다는 건 좀..."

인지심리학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열정, 오늘 만남에서도 뜨거운 걸.

상처받지 않는 건강한 마인드 셋


상대방의 가치관을 알아보기 위해서 던지는 논쟁거리가 있대. '깻잎 논쟁'만큼 뜨거운 그것은, 고기를 굽지 않고 먹기만 하는 후배 불편하게 느낀다면 꼰대일까, 아닐까 하는 것.

"저는 제가 먼저 구워서 제가 다 먹기 때문에, 하하하. 꼰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고기 구우러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음? 그럼 사무실에서 무선 이어폰을 꽂고 있는 후배 불편하게 느낀다면 꼰대일까, 아닐까.

"제 수업 듣는 데 이어폰 끼고 있는 학생을 본 적이 있어요. 수업 듣기 싫은 걸 티 내나? 생각했는데 끝나고 제가 몇 번 쳐다보니까 그 학생이 다가왔어요. 저는 다른 친구들이나 다른 학생들이 뒤에서 끄적거리고 작게 말하는 게 듣기 싫어서 이걸 꽂고 있는 거고, 이거 꽂으면 교수님 얘기밖에 안 들려요 그러더라고요. 무슨 얘기냐."


"제가 만약에 그 부서의 부서장이라면 그걸 끼고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나 시간대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네 마음대로 해라, 그걸로 음악을 듣고 있거나 다른 걸 하고 있다면 중요한 작업들은 실제로 안 되거든요. 인간이 음악 들으면서 공부한다는 것처럼 거짓말이 없어요. 멀티태스킹 절대 못 하거든요. 집중해야 하고, 실수하면 안 되는 일, 꼼꼼하게 해야 되는 일, 이렇게 정해놓고 이거 할 때는 다른 거 하지 마 그렇게 얘기할 것 같아요. 실제로 요즘 운전하거나 통화하거나 라디오 듣고 있을 때 주차하려고 후진 기어 넣으면 볼륨이 확 줄어들죠? 그거 집중하라고. 멀티태스킹 하지 말라고 뇌에 암시를 주는 거거든요. 그래서 기업 자문 가면 심지어 저는 다른 창도 열지 말라고 해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에 창 열다섯 개쯤 여는 날 있죠? 그날은 대부분 아무것도 못 하고 퇴근하는 날이에요. 창 사이에서 허둥지둥 대다가 끝나거든요. 보통 뭘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사람한테 되게 불편한 요구인데요, 뭐 할 때 뭐뭐 하지 말아라는 꽤 괜찮은, 들어줄 수 있는 요구예요. 그냥 '직장에서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 이건 되게 모호한 얘기예요."

밑도 끝도 없이, 심리학자라면 말야. 어떠한 타인의 행동도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것만 같아. 혹시 인간관계가 힘들다 싶을 때가 있을까.

"인지심리학이든 또 다른 심리학이든 공부한다고 내 감정이 안 나오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을 보고 불쾌한 거, 어떤 사람을 보면 어? 놀라는 거 똑같아요. 심리학에 되게 유명한 말이 있죠. 심리학자가 한 말은 아닌데 반응과 결정을 구분하는 거예요."


"공포를 안 느끼면 그건 이상한 거죠. 뭔가 딱 봤을 때 무서운 건 정상이에요. 느끼는 거. 그다음에 도망갈까? 그래도 맞설까? 혹은 그대로 놔둘까? 이 모든 것들이 결정이죠. 가끔 동료 심리학자들 중에서도 그 병에 빠진 친구들이 있어요, 너그러움 병. 어떤 사람을 보고 이해하는 건, 내가 불쾌감을 안 느끼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된다 이렇게 착각하는 심리학자들이 가끔 있어요. 저는 명백한 착각이라 봐요. 본인만 더 괴로워지는 거예요. 감정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그 감정 자체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너그럽고 이해한다? 계속 자기감정을 누르고 자기만 힘들어지거든요."


"누가 날 짜증 나게 해? 짜증 내세요. 그리고 행동으로는 응원하세요. 내가 느끼는 감정이 행동과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이도 저도 못하게 되거든요. 양자택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엘리베이터 탔는데 급해서 닫힘 버튼 누르고 있는데 밖에서 열림 버튼 누르고 누군가 타요. 급해 죽겠는데. 그러면 그때 속으로 이런 생각 누구나 하시죠. 짜증 나게. 그런데 그걸 입 밖으로 내는 사람? 안되죠. 감정은 이거지만 결정은 이거야. 몇 번씩 해보면, 돼요. 짜증 나는 건 솔직히 얘기하고 하지만 응원한다 혹은 굉장히 섭섭하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 해 보면 후련해져요. 해볼 필요가 있어요."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 같기도 한데, 정말 후련해질까. 검증해 본 분 있다면 댓글 부탁해.

적정한 삶을 찾아


이번엔 누군가 '꼰대 대처법'을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슬기롭게 상황을 풀어가는 해답이 있을까.

"내가 절대로 참을 수 없는 너만의 정의가 있어야 된다. '라떼는 말이야' 100번 해도 괜찮아, 하지만 당일 회식 잡는 건 정말 못 참아. 어떤 사람을 대할 때 이것도 참고, 저것도 참고, 참고 참고 참다 보면 정말 못 참는 데서 터지게 돼 있거든요. 그러면 상대방은 나는 어차피 다 똑같은 강도로 그 사람을 대했는데 얘가 펑 하고 터져버리니까 얘가 뭐 하는 놈이지? 라고 나올 수가 있어요. 더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 견디고 있던 젊은 세대에게 충동적이다라는 얘기를 결과적으로 할 수밖에 없게 되거든요.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어야 돼요. 나는 다 참아도 이건 못 참습니다 라는 걸."

나만의 정의를 세웠다 한들, 막상 밖으로 표현해내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인 것을.

"그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평상시에 분위기 좋을 때 그런 얘기들을 해놓는 건 되게 괜찮아요. 그 사람한테 '나 사용 설명서'를 자꾸 넣어주는 건 되게 중요하거든요. 실제로 연구가 많이 됐던 사례인데 하나 더 붙여주는 게 좋아요. '부장님께 백 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농담을 하시는 건 되게 좋아요. 이 말의 핵심은 뭐냐면 난 당신을 오래 볼 거다 선배한테 그것만큼 좋은 말이 없거든요. 제가 농담으로 총장님 임기는 4년이고 벌써 2년 하셨는데 2년밖에 안 남았잖아요. 내가 총장님이 되면 30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요. 이런 농담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선배에게 나는 당신을 오래 볼 거다라는 안심, 그런 느낌의 덕담들을 하시는 게 좋아요. 무조건 너는 나랑 오래 있을 거야도 피하셔야 하고, 나는 당신과 오래 안 볼 거야라고 하는 지나치게 객관적인 얘기도 좀 피하면서. 생각해 보세요. 연애할 때도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서로 하잖아요. 우리는 사람에게 기능적인 언어만 하는 게 아니라 감정적인 언어들을 조금씩 하잖아요. 상대방을 위한 언어들을 조금씩 해주는 것도 좋죠."

유머러스하면서도 단정함이 느껴지는 말투, '스마일 방패'를 장착한 듯 흐트러지지 않는 얼굴. 교수님도 '멘붕'이란 걸 겪을까.

"저는 사실 멘털이 절대 강하지 않아요. 심리학자들이 멘털이 약해서 심리학을 하는 거죠. 다른 심리학자들도 많이 얘기하는데 얼마나 소심하면 심리학을 하겠느냐. 예민한 사람들이 심리학을 하죠. 예민하다와 멘털이 약하다가 꼭 일치하지는 않고, 저도 막 많이 무너지고 많이 힘들고 그런데 잘게 잘게 썰어서 징검다리 여러 개 놔서 건너오는 거죠. 무너진 상태에서. 무너진 상태가 여기고 극복한 상태가 거기라면 사람들은 두두두두 하면서 뛰어넘어 간다고 생각을 해요. 그게 아니라 징검다리를 빨리 놓고 놓고 해서 종종걸음으로 가는 거. 그런 방법이 더 나은데 그런 방법을 좀 아는 거죠."


"인지심리학 연구도 그렇지만 다른 심리학 연구들도 그 징검다리가 많아야 해요. 우울증 빠진 사람을 뷔페 데리고 가면 큰일 나요. 음식이 너무 어마어마하게 많거든요.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엄두가 안 나요. 더 힘들어져요. 우울증에 빠져 있는 분에게 뭐 좋아해요? 떡볶이 좋아해요. 그럼 떡볶이 한 판, 큰일 나요. 떡볶이 종이컵에 세 개 담아서 쑥 밀어줘. 그럼 이 사람이 뭐야 이거 하고 후루룩 먹어요. 그다음에 이런 얘기 하죠. 더 없냐? 빠져나오는 징검다리가 하나 나온 거예요."

우울증은 평생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인 줄로만 알았는데 너무 반가운 이야기였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어렸을 때 쓰던 식기 있으면 엄마한테 달라고 해 그래요. 가지고 다니라고. 어렸을 때 먹은 식기에 밥 담아 먹어 보라고. 확 먹어버린다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징검다리죠. 화도 마찬가지, 우울도 마찬가지 기본적으로 훅 뛰어넘는, 그러니까 극복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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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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