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한 끼 63만 원' 세계 최고 식당이 문을 닫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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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은사님을 모시고 서울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테이블이 4개밖에 없는 작은 식당이었는데, 한쪽에 있는 책장에는 요리와 미식에 관한 책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나란히 있는 책들 가운데 떡하니 센터를 차지한 책은, 제목부터 눈에 들어왔는데, "노마 발효 가이드"였습니다.
노마(Noma)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식당으로 세계 최고의 식당 순위에서 몇 년째 수위를 다투는 식당입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도 오랫동안 별 3개를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미식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가보지는 못했더라도 이름은 익히 들어본, 아마 위시리스트에 들어 있는 식당일 겁니다. 노마의 주방장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는 "북유럽 요리를 아방가르드적으로 해석"한 이 분야의 독보적인 스타 셰프입니다.
[ https://www.reuters.com/lifestyle/noma-reinvent-michelin-starred-restaurant-new-food-lab-2023-01-09/ ]
아방가르드적인 요리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실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세간의 설명을 빌려 제 언어로 다시 바꿔보면 "창의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한 요리"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재료, 새로운 조리법, 새로운 플레이팅이 아방가르드적인 요리의 구성 요소가 될 테고요. 그러려면 노마의 주방은 단순히 요리를 만드는 곳에 그쳐서는 안 될 겁니다. 그래서 레드제피는 노마의 주방을 일종의 실험실(lab)로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뉴욕타임스의 1월 최고 회자 기사
그런 노마가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식당을 경영하기 위해 노마 3.0을 준비하기 위해 휴지기를 갖겠다는 노마의 발표를 많은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제 체감상 1월에 뉴욕타임스 독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한 기사일 것 같습니다.
[ https://www.nytimes.com/2023/01/09/dining/noma-closing-rene-redzepi.html ]
[ https://www.nytimes.com/2023/01/09/dining/noma-closing-rene-redzepi.html#commentsContainer ]
자연산 밀랍 안에 아이스크림을 담아서 낸다고? 나무상자 안에 딱정벌레 한 마리가 애피타이저라고? 이건 파인 다이닝이 아니다. 그냥 돈 많다고 자랑하는 허세일뿐이지...
이런 식당에서 밥 먹겠다고 비행기 일등석 타고 가는 사람들 있겠지. 기후 재앙 심해지고 여전히 하루 세끼 해결하기 힘든 사람도 많은데... 기사랑 다른 주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소위 최고급 미식의 세계라는 거, 또 하나부터 열까지 낭비투성인 최고급 여행 이런 거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사람들이 노마와 고급 식당, 미식에 관해 제기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음식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비싼 음식을 만든 사람들은 정작 급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직접 자기 식당을 경영하는 요리사 비비안 하워드가 뉴욕타임스에 올린 칼럼은 요식업계 전반에 만연한 문제를 두루 짚은 글입니다.
[ https://www.nytimes.com/2023/01/20/opinion/noma-restaurant-future.html ]
[ https://premium.sbs.co.kr/article/DjzeDRhgcs ]
밥 한 끼에 무려 63만 원?
노마에서 먹는 한 끼는 3,500 덴마크 크로네입니다. 우리 돈으로 63만 원입니다. 단품으로는 주문할 수 없고, 모든 손님이 노마에서 준비한 테이스팅 메뉴의 코스 요리를 먹어야 합니다. 제가 어제 먹은 고기국수 70그릇 값이네요. 도대체 이만한 돈을 내고 먹을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싶지만, 노마의 테이블은 시즌마다 예약이 열리자마자 곧 마감됩니다.
[ https://noma.dk ]
사실 제가 사는 뉴욕에도 고급 식당이 정말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값이 비싸서 저는 모르는 것뿐이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뉴욕의 최고급 스시 레스토랑 중 하나인 마사(Masa)가 800달러짜리 도시락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배달 음식이 한 끼에 100만 원이 넘었던 셈인데, 그때도 많은 비난이 쏟아졌지만, 어쨌든 도시락은 매일 준비한 수량을 다 팔았다는 기사를 봤던 것 같습니다.
[ https://ny.eater.com/2020/5/11/21253853/masa-sushi-takeout-coronavirus-800-photos ]
미국에서는 식당 메뉴판에 쓰여 있는 가격보다 밥값을 더 내야 합니다. 메뉴판의 가격은 음식값이고, 계산서에는 거기에 세금(소비세)이 붙어 나옵니다. 그리고 팁도 내야 하죠. 팁은 손님 기분에 따라 주거나 안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서버와 싸웠거나 싸울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내야 합니다. 팬데믹 전에는 음식값의 15% 정도를 내곤 했는데, 최근에는 물가가 오르면서 팁도 최소 20%는 내는 추세입니다. 비비안 하워드도 칼럼에 썼듯이 미국 식당 종업원 가운데 음식을 나르는 서버들은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손님이 내는 팁에 수입을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그래서 서버들은 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현재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시급 7.25달러입니다. 뉴욕이나 보스턴, 시애틀 등 주요 도시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이 연방 기준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시급 15달러죠. 레스토랑 서버는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는 대표적인 직종으로, 이들에게 보장된 최저임금은 연방 기준 시급 2.13달러입니다. 미국의 물가를 고려하면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 https://www.dol.gov/agencies/whd/state/minimum-wage/tipped ]뉴욕시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몇 년 전부터 팁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려고 해 왔고, 올해부터 뉴욕시의 레스토랑 서버들은 최저임금을 보장받고 일하게 됐습니다.
[ https://dol.ny.gov/minimum-wage-0 ]
업계 최고급 식당에서 '열정페이'라니
사실 더 충격적인 건 노마가 극도의 열정페이를 사실상 강요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관해선 하워드가 칼럼에도 링크로 소개한 또 다른 요리사 롭 앤더슨의 애틀란틱 칼럼이 아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 https://www.theatlantic.com/ideas/archive/2023/01/noma-copenhagen-fine-dining-unsustainable/672738/ ]
노마의 실험실(주방)에서 일하는 연구원(요리사) 가운데 절반 이상은 급여를 받지 않고 일했습니다. 덴마크 노동법상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유럽 전체에서 물가가 비싼 도시로 손꼽히는 코펜하겐에서 이력서에 "노마 주방 근무" 한 줄을 넣기 위해 젊은 요리사가 치러야 할 비용치고는 너무 비쌉니다. 석 달 동안 딱정벌레를 상자에 넣는 플레이팅만 기계적으로 반복한 결과 요리는 하나도 늘지 않았다는 전 인턴의 푸념 섞인 인터뷰를 보면 무급 인턴 관행은 더욱 불합리하게 느껴집니다.
지속 가능한 식당을 위해 필요한 기본은
롭 앤더슨은 애틀란틱 칼럼에서 제대로 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요리사의 노동을 갈취한 노마가 반성의 기미도 없이 노마 3.0을 준비하겠다고 발표한 건 위선이라고 강하게 비난합니다. 비비안 하워드도 식당이 가장 중요한 기본을 잘하려면 신선한 재료와 맛있는 음식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죠. 지금은 음식만 팔아서는 수익이 나기 어려운 구조라서 주류 판매에 신경을 안 쓸 수 없고, (미국은) 서버들은 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두 가지만 고쳐서는 시장의 구조를 바꿀 수 없습니다. 당장 뉴욕시의 사정을 생각해 보면, 인건비나 식재료도 비싸지만, 가장 큰 부담은 어마어마한 월세입니다.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목이 좋은 데 문 연 식당이 잘 되기 마련인데, 그런 곳의 월세는 어김없이 아주 비쌉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식업계에 진출한 전문 투자자들은 유망한 셰프에게 부담스러운 초기 비용을 대주고, 몇 년 안에 수익을 내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미 맛있는 음식은 크게 개선할 여지가 없으니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꾸미고, 럭셔리한 경험을 끼워 팔면 됩니다. 그 결과 뉴욕에서만 '가성비 좋은 맛집' 여러 곳이 '쉽게 갈 엄두가 나지 않는 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장이 굴러가는 원리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참으로 미국다운, 뉴욕다운 변화라는 씁쓸한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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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premium.sbs.co.kr/article/c1sibxwSPc ]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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