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향유하는 공간, 북카페 ‘수연목서’ [MZ공간트렌드]

2023. 1. 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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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수상…작업자들을 위한 공간

경기도 여주와 광주 그리고 양평 그 사이 어딘가의 좁은 도로를 비집고 들어가다 보면 붉은 벽돌의 쌍둥이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어쩐지 단조로워 보이지만 멋스러운 건물은 누구나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누리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뭐하는 건물이에요?"

붉은색 벽돌 건물로 지어진 수연목서는 총 두 건물로 이뤄져 있다. 한쪽은 목공 스튜디오로, 다른 한쪽은 북카페로 운영 중이다. 본래 이 두 건물은 모두 사진을 찍고 나무를 다루는 작업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점차 이웃 주민들과 그곳을 지나던 행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여러 문의를 받게 됐다. 도대체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호기심은 결국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다. 작업물을 전시하기로 했던 공간을 책과 커피를 만날 수 있는 북카페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

수연목서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우수상을 차지하면서부터다. 수연목서의 우수상 수상 경위에는 ‘담담하면서 명쾌한 건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단조로운 형태지만 절대 심심하지 않은 건축에서 아름다움이 새어 나온 것이다. 건축이 주는 미학은 서울 근교로의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발걸음을 향하게 만들었다.


직접 만든 마그네틱과 북마크를 판매하고 있다. 
 

 나무와 책의 공간 

건축주이자 주인장인 최수연 씨가 처음 이 공간을 구상한 것은 단순히 작업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땅을 보고 여러 콘셉트를 구상해 보던 차에 그는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됐다. 여행 멤버 중 한 명인 이충기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를 알게 돼 작업 공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 교수는 그 자리에서 슥삭슥삭 스케치를 해 보여줬고, 이는 최 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 국경 부근을 달리던 버스 안이었고 그곳에서 수연목서가 탄생하게 됐다.

처음 스케치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완성된 건축물 역시 최 씨의 눈에는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었다. 아마 작업자는 어디에서 작업을 하느냐도 작업의 일부일 수 있다는 그의 철학에서 시작된 감탄이 아닐까.

수연목서의 ‘수연’은 주인장의 이름에서 따왔다. 여기에 ‘나무 목’과 ‘책 서’를 더해 수연목서가 완성됐다. 한 건물이 이미 목공 스튜디오로, 나무 ‘목’의 역할을 다했다면 다른 건물의 북카페가 책 ‘서’의 역할을 다 해낸다. 북카페에는 모두 사진과 건축에 관련 책이 진열돼 있다. 사진을 전공한 최 씨가 사진 관련 서적을 큐레이션했고 나머지 건축 서적 100권은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가 큐레이션했다. 그래서 그럴까. 이곳에는 단 한 권도 그냥 꽂혀 있는 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공자들의 필수 도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점 가판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테디셀러들도 아니다. 다만 모두 사진과 건축을 통해 생각해 볼 만한 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나 자신을 비롯한 타인의 삶, 나아가 인간을 생각해 보는 책이다.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책뿐만 아니라 여러 기계들도 전시돼 있다는 점이다. 100년도 넘은 코닥 필름 카메라, 인화기 등이다. 처음 보는 물건들이지만 누군가의 손에 길들여졌기 때문인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장 신기한 물건은 1800년대에 사용된 타블로이드판 인쇄기다. 이는 영국 출신의 예술가 윌리엄 모리스가 만든 ‘켈름스콧 프레스’ 인쇄소에서 사용했던 기계다. 지인을 통해 얻은 이 물건은 박물관에 소장할 정도의 높은 가치를 자랑한다. 종이를 다룬 인쇄기라는 물건이 나무와 책을 연결해 주는 또 하나의 매개체가 되는 듯 보인다.

손잡이가 없는 계단이 인상적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당신에게

수연목서는 총 2층으로 이뤄져 있다. 북카페 건물 2층에 올라가면 1층 카페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너편 건물인 목공 스튜디오로 이어지는 구름다리를 건너 볼 수도 있다.

특이한 건 북카페의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에는 손잡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천천히 내려갔지만 사실 아무도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하지 않기에 손잡이 없는 계단은 여유를 선물한다. 또한 한쪽 벽면을 쓸면서 내려오는 재미도 쏠쏠하다. 벽면은 노출 콘크리트로 이어져 있는데 이는 대나무 줄기의 화석으로 만들어졌다. 작은 부분에서조차 미학을 잃지 않는 듯한 노력이 돋보인다. 최 씨에게 수연목서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특별한 가치가 있는지 물었다. 이에 그는 자신 있는 말투로 “이곳은 의미 있게 사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는 공간”이라고 말하며 그 가치를 전했다.


눈 내리는 밤에 찍은 수연목서의 전경. ⓒ최수연

“수연목서는 무엇인가를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에요. 누구든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생각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죠. 작업자들에게는 또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 영감을, 비작업자에게는 다시 삶으로 돌아갔을 때 느낄 작은 변화를 이 공간이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공간이 주는 위로와 감동을 품고 있는 수연목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이곳에서 얻은 작은 변화로 큰 반전을 꿈꾸길 응원하는 것만 같다. 마치 ‘담담하고도 명쾌하게’ 말이다.
 
<수연목서>
주소 :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주어로 58
매주 월·화요일 휴무

 
이민희 기자 min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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