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없지만 안티도 없는… ‘뚝심의 80세’ 美 최고령 대통령[Leadership]
기밀문서 유출에 지지율 뚝… 역대 대통령 중 하위 3번째
재선 실패한 트럼프 될지, 반등 성공한 레이건 될지 관심
중간선거 참패 전망 뒤엎고 승리했지만 집권 후반기 암울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정치 = 약속’ 흔들림없이 밀어붙여
잦은 말실수로 치매 의심받고…“고령 탓 재선 반대” 47%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42.2%.’ 미국 46대 대통령인 조 바이든(80) 대통령이 취임한 지 정확히 2년째를 맞은 지난 20일(현지시간) 기록한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이다. 불과 10일 전 44.1%로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기밀문서 유출 파문이 불거지면서 뚝 떨어졌다. 같은 시점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정확히 10%포인트 앞선 52.2%에 달했다. 1945년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 이후 취임 2년 시점에 바이든 대통령보다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대통령은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40.0%) 전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37.0%) 전 대통령 2명뿐이다. 조만간 2024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 앞에 공교롭게도 4년 임기 종료까지 30%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 전 대통령과 60% 넘는 지지율로 반등해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 중 한 명이 된 레이건 전 대통령이라는 정반대 갈림길이 놓인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중간선거 참패 전망을 뒤엎고 승리를 거뒀지만 임기 후반 대내외 상황은 더 녹록지 않다. 국내에서는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탈환하면서 국정 차질이 불가피하다. 공화당 강경파는 바이든표 국정과제 발목 잡기는 물론 청문회 소집·소환권 발동 등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차남 헌터 바이든을 겨냥한 전방위 공세를 예고했다. 국제 정세도 심상치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과의 갈등은 정치·군사에서 경제까지 확산일로다. 지난해 9.1%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서 겨우 숨 돌리자 이번에는 경기 침체 우려다. 2016년 대선 당시 ‘정치 경력 50년’ 슬로건을 내걸고 정치 9단을 강조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특유의 꺾이지 않는 뚝심과 노회한 정치력을 결합한 리더십으로 또다시 악재를 넘고 재선 기회를 잡을지 주목된다.
◇열혈 지지자도, 각 세운 적수도 없는 뚝심의 ‘엉클 조’=20년 동안 대통령 4명을 취재했던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19일 칼럼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방법론은 ‘점진적 압박’ ‘꾸준한 진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극단주의가 넘쳐나는 도전 속에서도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고 민주당을 선거 승리로 이끌었으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글로벌 연합 조직, 중국 패권에 맞선 반도체 수출 통제 등을 성공적으로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에 항상 웃는 표정으로 언뜻 유순해 보이지만 오랜 측근들은 그를 겉모습만 부드러운 인물로 평가한다. 어려서 외할아버지로부터 ‘정치란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은 그는 흔들리면서도 쉽게 꺾이지 않고 일단 결심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을 키웠다. 미군 철수 과정에서의 혼란상으로 여론 뭇매를 맞고 지지율 하락 시발점이 됐지만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과단성 있게 밀어붙이고, 야당 공세에도 2년 동안 단 한 명의 장관도 하차하지 않은 점은 그가 쉽게 굽히지 않는 심지의 소유자라는 점을 보여준다. 29세 나이로 최연소 상원의원이 된 그가 존재감 없는 부통령으로 8년, 공화당 정권하에서 절치부심 4년 등을 거쳐 50년 만에 최고령 대통령이 된 것도 결국 대통령이라는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흙수저 출신으로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소통하고 37년간 의회에서 잔뼈가 굵은 탓에 민주·공화당을 넘나드는 폭넓은 인맥과 빼어난 협상력을 가진 점은 정치인으로서 바이든 대통령이 가진 최대 장점이다. 여기에 더해 온건 진보 성향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열광적 지지층은 없지만 특별히 그를 적대시하는 세력도 많지 않다. 2024 대선을 앞두고 낮은 지지율에도 당내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내민 후보가 없는 것 역시 쉽게 적을 만들지 않는 리더십 덕이다. 일부 평론가는 바이든 대통령을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보다 오히려 더 많은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던 린든 존슨 전 대통령에 비유한다. 실제 오바마 행정부 1기 시절 높은 지지율에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음에도 개혁 법안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했던 것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이후 가장 많은 1조 달러(약 1233조 원) 규모 초당적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인프라법)과 반도체법 등 대중국 견제 법안, 총기 개혁 법안,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 등 입법 성과를 거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일 올해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함께 인프라법에 따른 지원을 받아 새로 지어질 켄터키주 브렌트 스펜스 다리를 찾는 등 틈날 때마다 협치를 강조한다.
글로벌 무대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훼손한 미국의 리더십을 일정 부분 복원했다는 평가다. 취임 일성으로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를 주창한 그는 관련 분야 최고 베테랑들을 포진시킨 외교안보팀에 “외교로 세계를 주도하고 동맹을 다시금 공고히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우선주의와 예측 불가능성, 정상 간 즉흥 외교를 내세운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동맹을 분열시키고 경험 많은 외교전문가들을 무시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난맥상을 180도 뒤집으려는 취지였다. 동맹과 민주주의·인권을 내세운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리더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통해 일순 좌절을 맛봤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해 러시아 침공을 공개 경고하고 우크라이나 지원·대러 제재를 위한 서방 진영 결속에 성공해 재평가받았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에서 대러 정책에 A-라는 점수를 매겼다.
◇잇단 말실수에 건강이상설 시달리고 카리스마 부족한 80대=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해 3월 한 대담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매우 구식이고 지도자의 나이가 대중과 몇 세대 떨어져 있으면 소통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특정 정치인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이었다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만 80세를 맞아 역대 현역 대통령 중 최고령 기록을 썼다. 상원 법사위원장 시절이던 1988년 뇌동맥류 파열로 쓰러져 두 차례 뇌수술을 받은 전력 탓인지 잦은 말실수로 중요 선거 때마다 상대 진영으로부터 치매에 걸렸다는 공격도 자주 받았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지난해 9월 공식 석상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재키 월러스키 하원의원을 불러 논란을 빚었고, 지난 16일에도 마침 생일을 맞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며느리 워커스 킹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다 이름을 까먹어 건강이상설을 자초했다. 외교 무대에서도 지난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개최국 캄보디아를 콜롬비아로 부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축출 발언을 했다 번복하는 등 꾸준히 설화에 휩싸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 CNBC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출마에 반대하는 응답자 중 47%가 ‘나이’를 이유로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4년 재선에 성공할 경우 86세에 임기를 마치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 ‘미국의 귀환’을 외치자 트럼프식 미국우선주의에 지친 서유럽 등 동맹들은 미국의 전통적 리더십 복원에 대한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바이든 외교의 우선 가치는 민주주의·인권 같은 원칙보다 미국의 이익이라는 평가다. 취임 당시 트럼프 지우기 차원에서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안보협의체)가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지만 패권 경쟁국인 중국 견제를 위해 지속하고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공급망 협의체) 등을 추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국익 없는 전쟁은 반복 않는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실리 우선 기조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미국 내 제조·미국산 구매를 뜻하는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내세워 연일 IRA 성과를 강조하는 행보는 한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영국·일본 등 핵심 동맹에 바이든표 리더십의 한계를 보여줬다.
■ 바이든의 인맥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오바마… ‘분신’ 블링컨·‘신뢰’설리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인맥으로 첫손에 꼽히는 인사는 단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오바마 전 대통령이 러닝메이트로 자신의 약점인 외교안보 전문성을 메워줄 적임자인 ‘외교통’ 바이든 대통령을 낙점하면서 둘의 본격 인연은 시작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 임기 8년간 부통령을 지내며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굴곡도 있었다. 2016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지지했고, 2020년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에야 지지 선언을 했다. 하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유세 등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도 10여 년 전부터 인연을 맺은 사이다. 부통령 시절인 2011년 중국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카운터파트인 국가부주석 신분의 시 주석과 운명적 만남을 가졌고 이후 18개월간 두 사람은 미·중을 오가며 8차례 만났다. 시 주석 취임 후에도 2013·2015·2017년 등 둘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미·중 갈등 속에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는 1년 10개월간 5차례 통화·화상 회담만 하다 지난해 11월에야 첫 대면 회담을 했지만 커다란 입장 차만 확인했다. 국내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랜 친분을 쌓았는데 2001년 김 전 대통령이 청와대 오찬 중 즉석 선물한 수프 묻은 넥타이를 행운의 상징으로 20년간 간직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행정부 내에서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오랜 인연에 ‘바이든의 분신’으로 불릴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는 대표 인사다. 블링컨 장관은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당시 바이든 후보를 돕다 오바마 행정부 1기였던 2009년 백악관에 합류해 2013년까지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바이든 대통령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을 보좌하다 클린턴 전 장관의 비서실장을 지낸 설리번 보좌관 역시 바이든 당시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2013년 블링컨 장관이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기자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이 바로 설리번 보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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