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약이 노화까지 치료?.. 치열한 영생 묘약 개발 경쟁 [박건형의 홀리테크]

박건형 테크부장 입력 2023. 1. 30. 07:40 수정 2023. 3. 3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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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세포 없애는 세놀리틱스부터 젊은 피 수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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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중국을 통일한 뒤 진시황(秦始皇)이 꿈꿨던 다음 목표는 영생이었습니다. 불로장생을 위한 불로초를 찾기 위해 수많은 신하들을 보냈고, 그 결과 한국과 일본 곳곳에 불로초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진시황의 희망이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젊음을 갈망하고 죽음을 피하려 한 것은 진시황 만은 아닐 겁니다.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해야겠지요. 기원전 28세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반만년 전 우르크를 지배했던 길가메시왕의 일대기를 다룬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불로장생의 약이 등장할 정도니까 말입니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쇠약해지는 몸과 죽음 뿐이겠이죠. 실제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거부들도 바이오 기업을 직접 세우거나 의학연구재단에 거금을 지원하면서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전자결제 업체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 오라클 공동 창업자 래리 엘리슨, 메타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아내 프리실라 첸,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성공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베릴리의 본사.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계열인 베릴리는 수명연장의 비밀을 연구한다. /베릴리

그렇다면 노화를 늦추고 더 오래 사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일까요. 현대 과학의 답은 ‘그렇지 않다’에 가깝습니다.

◇인류의 3분의 2는 노화로 사망

인류의 평균 수명은 1800년대 초반부터 매년 3개월씩 늘어왔습니다. 그 이전의 인류 역사에서 사람이 20대에 도달할 확률은 50% 정도였습니다. 전염병과 사고, 전쟁 등으로 일찍 죽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의학과 생명과학, 백신, 의료기기 등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류의 수명은 200년만에 40대에서 80대로 늘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세계인의 사망 원인 1위가 노화가 됐습니다. 미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고령화는 전세계 사망 원인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합니다. 매일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고령화로 사망합니다. 특정 질병을 떠올리며 갸웃거리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암, 심장병, 알츠하이머 같은 건강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노화입니다. 흡연, 운동부족, 식습관 등도 노화와 비교하면 별 것 아닌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고혈압이 있으면 심장마비 위험이 두 배로 높아집니다. 하지만 80세의 심장마비 발병 위험은 40세의 10배입니다. 노화 자체가 바로 가장 큰 위험이라는 것이죠.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노화는 치료 가능한 질병’ 주장

과거 과학자들은 노화의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학설은 1980년대 초중반에 나왔습니다. 엘리자베스 블랙번 UC샌프란시스코 교수는 1982년~1984년 염색체의 끝 부분에서 염색체를 보호하는 ‘텔로미어(telomere)’가 노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세포가 유전자를 복제해 물려주는 과정에서 텔로미어가 조금씩 짧아지는데, 이 텔로미어가 닳아버리면 염색체는 안정성이 파괴돼 제대로 복제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 결과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세포가 제 기능을 잃고 장기 손상과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의학계와 생물학계에서는 텔로미어를 ‘분자시계’ 또는 ‘노화시계’라고 부릅니다. 블랙번 교수는 이 연구로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노화 연구는 텔로미어 손상을 막는 방법을 찾는데 집중됐습니다.

염색체를 찍은 전자현미경 사진. 끝부분에 초록색으로 빛나는 부분이 ‘노화시계’로 불리는 텔로미어이다.

하지만 텔로미어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나 동물에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많은데도 노화가 일어나지 않거나, 반대로 돌연변이가 없는데도 노화가 일어나는 경우도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노화 연구의 전환점은 2015년 찾아왔습니다. 당시까지 ‘노화를 늦춰주는 약’ 또는 화장품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노화 치료제라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노화는 당연히 일어나는 현상일 뿐, 질병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 연구팀은 이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이들은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르민’을 노화 치료에 사용하겠다며 미 식품의약국(FDA)에 임상시험을 신청했습니다. 메트포르민을 사용하는 당뇨병 환자들은 다른 당뇨병 치료제 투여 환자들보다 오래 삽니다. 연구팀은 이게 당뇨병 치료 때문이 아니라 메트포르민에 생명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실제로 실험을 반복한 결과 메트포르민은 암 발생 위협을 낮추고, 인지 저하와 알츠하이머를 막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원리만 명확하게 밝혀 낸다면 메트포르민이 ‘노화 치료제’ 허가를 받고, 노화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메트포르민의 가격은 한 알당 100원 정도입니다. 불로장생의 약이 거부들의 전유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당뇨병 치료제 '메트포르민'

◇올해가 노화 정복 원년 될 수도

기술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최근 “2023년에 노화 정복에 대한 아이디어가 사람에게서 입증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습니다. 현재 바이오 생명공학 기업과 연구소들이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노화 치료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겁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 몸에 축적되는 ‘노화 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법인 ‘세놀리틱스(senolytics)’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노화 세포들이 암을 유발하고 신경 퇴화에도 관여한다고 봅니다. 이를 제거하면 노화 과정이 느려지고 역전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2018년 연구에서 쥐에게 암 치료제인 ‘다사티닙’과 과일·채소에 많은 ‘케르세틴’을 조합한 세놀리틱 칵테일을 투여하자 쥐가 더 오래 살면서 질병 위험도 낮아졌습니다. 심지어 운동 능력도 대조군 보다 더 뛰어났습니다.

자료=랜싯

와이어드는 현재 세놀리틱스에 도전하고 있는 회사가 최소 24곳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가장 큰 회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인 미국 메이요 클리닉의 과학자들이 설립한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입니다. 이 회사의 주요 투자자 가운데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있습니다. 노화 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바이오 업체들이 내세우는 방향도 다양합니다. 노화 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단백질을 투여해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체내 면역 체계를 바꿔 노화 세포를 스스로 제거하도록 하는 백신을 개발하는 곳도 있습니다.

◇세포 회춘은 이미 동물에서 입증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약도 있습니다. 프로클라라 바이오사이언스는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단백질 GAIM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PCSK9라는 유전자를 변형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버브 테라퓨틱스의 유전자 요법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와이어드는 “최초로 인정받는 노화 치료 의약품은 노화 전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질병을 목표로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노화의 원인이 하나가 아닌 만큼 해법도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거죠. 이렇게 하나씩 노화의 원인을 제거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정한 노화 치료가 가능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동물 실험까지 시야를 넓히면 더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은 지난 12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셀’에 늙은 쥐의 건강 상태를 젊게 만드는 ‘세포 회춘’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눈먼 생쥐의 망막과 뇌, 근육, 신장 세포에 세포를 역분화시키는 이른바 ‘야마나카 전사인자’를 섞은 칵테일을 투여했습니다. 그 결과 쥐의 시력과 뇌 인지 능력이 회복됐고, 근육과 신장도 젊어졌습니다. 야마나카 전사인자는 역분화 줄기세포를 처음으로 만든 일본 쿄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성체 세포를 배아줄기세포로 만드는데 활용했던 물질입니다. 아예 세포를 다시 프로그래밍해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이죠. 이게 현실화되면 늙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젊어지는 것도 가능합니다.

세포 회춘을 아예 사업 모델로 내세운 회사도 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턴바이오는 코로나 백신 개발에 사용됐던 mRNA(메신저리보핵산)를 이용해 세포를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이 회사에는 일본 거대 제약사 아스텔라스와 한국의 대웅제약 등이 투자했습니다. 이들은 2024년 임상시험에 돌입할 계획입니다.

◇아무도 성공은 자신할 수 없다

노화 정복의 가능성을 얘기했으니 이제 그 이면에 대해서도 다뤄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바이오·제약 산업은 그 어떤 분야보다 성공 가능성이 낮습니다. 세포 실험에서 성공했다고 동물 실험에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동물 실험이 인간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10년 가까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만들어낸 신약에서 뒤늦게 부작용이 밝혀져 폐기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암브로시아’는 16세부터 25세까지의 건강한 청년들의 혈액을 공급받아 노화를 늦추기 원하는 35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이틀에 걸쳐 1.5L의 혈장 성분을 수혈하는 사업 모델을 선보였다. 하지만 미 식품의약국이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노화 정복에 뛰어들었던 기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실패 기업은 암브로시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암브로시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꿀·물·과일·치즈·올리브유 등으로 만드는 음식으로 신들이 죽지 않는 비결입니다. 여기서 이름을 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암브로시아는 2016년 25세 미만의 젊은이들에게서 얻은 혈장을 원하는 사람에게 수혈하는 임상시험을 허가 받았습니다. 이를 35세 이상의 신청자 600명에게 한 번에 8000달러를 받고 수혈해준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사람의 피를 빨아 영원히 사는 드라큘라를 현실에 불러낸 듯한 시도였습니다. 기괴하지만 이 실험은 일부 과학적 근거도 있었습니다. 2014년 미국 하버드 줄기세포 연구소는 “젊은 쥐의 혈액에 있는 단백질을 늙은 쥐에 주입했더니 악력이 세지고 운동 능력이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젊은 쥐의 혈장을 늙은 쥐에 주입하자 이전보다 기억력이 좋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암브로시아의 사업은 2019년 중단됐습니다. FDA가 “젊은 기증자의 혈장에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혈장 주입은 감염, 알레르기, 호흡기 및 심혈관 위험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탠퍼드 의대를 졸업하고 암브로시아를 설립한 제세 카르마진은 “임상시험 성과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연구 결과를 공개한 적도 없었습니다. 위에 언급했던 기업들이 성공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꿀지, 아니면 암브로시아의 길을 가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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