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위기? 마녀사냥 멈춰라[할 말 있습니다](24)

2023. 1. 3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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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말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케어(문케어)를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으로 규정하고, “재정 파탄을 가져와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정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건강보험 재정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사실상 폐기를 선언한 것이다.

정말 건강보험이 재정위기이고, 문케어가 재정위기의 주범일까? 전혀 아니다. 2017년 문케어를 시작할 때 20조원이었던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은 문케어가 끝나가는 2021년 말 기준 여전히 20조원으로 변화가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저축한 돈을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건강보험이 재정위기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2015년 8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의료진과 내원객이 병원 로비를 오가고 있다. 정지윤 기자



혹시 건강보험료를 너무 많이 걷어 적립금이 안 줄어든 것일까? 이도 사실이 아니다. 문케어 기간 5년(2017~2021)간 인상률은 2.3%로 문케어 이전 10년(2007~2016)간 건강보험료 인상률 3.4%에 비해 높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동안 인상률이 1.4%로 낮았으나 이명박 정부 동안 4.0%로 높았다. 보수 정권에서도 보장성 강화를 했고 건강보험료는 올랐다.

2040년 건강보험 누적적자가 678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주장도 가짜뉴스에 가깝다. 이는 2026년 건강보험료율이 법정 상한선인 8%에 도달한 이후 15년 동안 건강보험료율은 전혀 올리지 않는 반면 지출은 예전처럼 증가할 것이라는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에 근거한 예측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느 정부와 국회가 건강보험이 적자인데 15년 동안 지출도 줄이지 않고 보험료도 인상하지 않는단 말인가.

문케어 때문에 의료남용이 심해지면서 건강보험이 재정위기를 맞고 있다는 정부 주장도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문케어 이후 건강보험이 적용된 MRI, 초음파 검사 중 급여기준에 맞지 않는 사례의 비용은 2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돈이긴 하나 2021년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0.2%에 불과하다. 0.2%를 절약한다고 건강보험 재정이 크게 좋아질 리 없다. 정부는 1년에 2000회 외래를 방문하는 의료남용 사례를 들면서 문케어를 탓하고 있지만, 이 같은 의료남용은 문케어 이전부터 계속돼왔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건강보험 재정에 큰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인구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전으로 지출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소득의 7% 수준까지 인상된 건강보험료율은 낮은 경제성장률과 소득양극화로 점점 올리기 어려워졌다. 현 정부는 아니지만, 다음 정부에서는 진짜 재정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

건강보험 재정, 어디서 낭비되고 있나

미국과 유럽은 전체 의료비 20~30%가 낭비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부가 건강보험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지난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폄훼하기 위해 ‘가짜 재정위기’를 퍼뜨릴 때가 아니다. 건강보험 재정이 어디서 낭비되고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는 ‘진짜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누수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과잉공급된 병상이다. 우리나라 병상 수는 OECD 국가에 비해 3배 더 많다. 병원은 과잉공급된 병상을 환자로 채우기 위해 의학적으로 꼭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까지 입원시킨다. 병상 수를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줄여 불필요한 입원을 줄이면 약 11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

2000년 우리나라 병상 수는 OECD 평균을 넘어섰지만, 정부는 20년 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2018년 병상이 과잉 공급된 지역에서는 병상 신·증설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정부는 국회가 만들어준 법도 4년 넘게 시행하지 않고 있다.

둘째, 주치의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주치의 역할을 하는 동네의원에 다닐 경우 다른 병·의원에서 진료받는 경우에 비해 뇌졸중·심장병 같은 합병증이 덜 발생하고, 사망률이 낮아진다. 진료비가 비싼 중증질환이 덜 생기니 진료비도 4분의 1가량 적게 쓴다. 우리나라 모든 만성질환자가 주치의에게 진료를 받도록 하면 약 5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2007년 정부가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을 시작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셋째, 민간의료보험으로 인한 의료남용이 또 다른 주범이다. 실손보험이나 정액형 민간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병·의원을 더 많이 이용한다. 실손보험만 있으면 외래를 15% 더 많이 이용한다. 실손보험과 정액형 민간의료보험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외래를 25% 더 자주 이용하고, 입원일수는 65% 길어진다. 이처럼 민간의료보험 때문에 늘어난 건강보험 진료비가 5조~8조원에 달한다. 이중 상당 부분은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의료이용으로 추정된다.

지난 정부에서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의료남용을 줄이고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사보험협의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는 지난 5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의료남용으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비와 비급여 진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넷째, 붕괴된 의료전달체계 때문이다. 경증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동네 병·의원에 비해 진료비가 비싸진다. 큰 병원에 환자를 빼앗긴 동네 병·의원은 의학적으로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를 입원시키거나 환자를 더 자주 오게 해서 새로운 의료 수요를 만들어낸다. 경증환자는 동네 병·의원에서, 중증환자는 큰 대학병원에서 진료받도록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면 약 5조원을 줄일 수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수십년째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제대로 된 정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대형병원, 중소병원, 의원 모두 양보할 생각이 없다. 정부는 이들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내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은 우리가 아플 때 크게 돈 걱정 하지 않고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제도다. 다가올 재정위기로부터 우리 건강보험을 지키려면 지금부터 낭비적인 의료체계를 차근차근 개혁해나가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정치적 마녀사냥에 매몰되면 우리 의료체계를 개혁할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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