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뇌파에 따라 두둠칫 둠칫~ ‘댄서 사이보그’

노형석 2023. 1. 30. 06: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무엇보다도 춤을 추는 사람 자체의 몸과 의지가 아닐까.

이를 염두에 두고 춤꾼의 몸짓을 찬란한 영혼의 표현(혹은 현현)이라고 말한 이는 미국의 창작춤 거장 이사도라 덩컨(1877~1927)이었다.

몸에 센서 기계장치를 장착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지나 생리적 율동에 맞춰 자기 몸을 움직이는 사이보그형 춤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춤꾼은 자기 몸의 상체는 다른 이의 뇌파에 따라 율동하고, 하체는 자신의 욕구와 의지로 움직이는 분절된 안무를 보여주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광주 ACC 입주작가전 ‘지구생존가이드: 포스트휴먼 2022’
관객의 뇌파를 감지한 센서로 춤꾼의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이인강 작가의 신작 <퍼포밍 수트 01>(2022)의 실제 퍼포먼스 장면. 지난해 12월1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 전시장 한 구역에서 진행됐다. 

춤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

무엇보다도 춤을 추는 사람 자체의 몸과 의지가 아닐까. 이를 염두에 두고 춤꾼의 몸짓을 찬란한 영혼의 표현(혹은 현현)이라고 말한 이는 미국의 창작춤 거장 이사도라 덩컨(1877~1927)이었다. 고전무용의 족쇄를 벗겨버린 그의 말은 곧 20세기 현대춤의 개념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하지만 21세기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춤꾼의 개인적 내면과 혼의 울림을 강조했던 덩컨의 명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몸에 센서 기계장치를 장착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지나 생리적 율동에 맞춰 자기 몸을 움직이는 사이보그형 춤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실상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에서 지난 연말부터 열리고 있는 국내외 입주작가 기획전 ‘지구생존가이드: 포스트휴먼 2022’(2월5일까지)의 전시장 한 영역엔 관객의 뇌파 움직임에 맞춰 춤을 추는 사이보그 춤꾼의 퍼포먼스 영상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12월15일 같은 장소에서 자기 앞에 앉은 관객 6명의 뇌파를 손과 등, 가슴에 부착한 센서 기기 장치로 전송받으며 젊은 춤꾼이 벌인 댄싱 퍼포먼스의 장면들이다. 이 춤꾼은 자기 몸의 상체는 다른 이의 뇌파에 따라 율동하고, 하체는 자신의 욕구와 의지로 움직이는 분절된 안무를 보여주었다. 영상을 지켜보면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몸과 생각은 과연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춤꾼이 등과 손 등에 부착한 센서 감지 장치를 통해 자신 앞의 관객들로부터 받은 뇌파 신호에 따라 몸짓을 펼치고 있다.
‘지구생존가이드…’전의 문제작으로 꼽히는 다국적 작가팀 ‘오 덧 아’의 신작 <고스트 유토피아>(유령낙원·2022). 광주항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독재와 전쟁의 익명 희생자들을 3D 프린터로 뽑아낸 유령 형상의 군상 조형물들로 표현한 뒤 이들이 놓인 좌대를 마치 그들만의 낙원 섬처럼 보이게 해놓았다. 군상들을 둘러싼 벽에는 당시 항쟁, 전쟁 등의 상황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관련자들의 회고 육성과 함께 흘러간다.

‘지구생존가이드…’전은 ‘인간 너머의 세상을 어떻게 맞이할까’란 의미를 지닌 포스트휴머니즘 화두를 껴안고 지난해 넉달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 21팀(9개국 33명)이 전당 창제작센터 기기를 활용해 나름의 작가적 상상을 담아낸 첨단시각예술 작품들을 소개한다. ‘인간과 동물, 기계의 결합’ ‘기술의 발전이 뒤바꾸는 인간의 정의’ 등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세상의 다른 생명들과 공존하는 ‘포스트휴머니즘’에 관한 각자의 상상을 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미디어아트 등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관객의 뇌파를 반영해 움직이는 춤꾼 외에도 여러 참신한 신작들이 눈에 띈다. 문제작으로 꼽히는 다국적 작가팀 ‘오 덧 아’의 신작 <고스트 유토피아>(유령낙원)가 특히 주목받았다. 광주항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독재와 전쟁의 익명 희생자들을 3D 프린터로 뽑아낸 유령 형상의 군상 조형물들로 표현한 뒤 이들이 놓인 좌대를 마치 그들만의 낙원 섬처럼 보이게 했다. 군상들을 둘러싼 벽에는 당시 항쟁, 전쟁 등의 상황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가상현실로 구현돼 관련자들의 회고 육성과 함께 흘러간다.

작가 그룹 제이에이치알(J.H.R)의 파노라마 가상 영상 작품인 <물처럼 살기>(2022)의 상영 장면.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의 들머리 쪽에 설치돼 있다. 수로의 물 오염 양상을 보여주는 수치 데이터가 전시장 위쪽 부분에 설치된 대형 곡면 스크린을 통해 마치 물방울처럼 피어올랐다가 변형되거나 흩어지는 유기체 덩어리들의 영상으로 뒤바뀌어 나타난다.

작가 그룹 제이에이치알(J.H.R)의 파노라마 가상 영상 작품인 <물처럼 살기>의 얼개도 재미있다. 작품의 소재는 수로의 물 오염도 양상을 보여주는 수치 데이터인데, 이를 전시장 위쪽에 설치된 대형 곡면 스크린을 통해 물방울처럼 피어올랐다가 변형되거나 흩어지는 정체 불상의 유기 생명체 덩어리들 영상으로 변환시켜 표현한다.

눈에 쏙 들어오는 기기묘묘하고 환상적인 다색 영상 이미지로 환경적 위기 상황을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전반적으로 이 전시는 준비 기간이 짧고 풀어낸 얼개가 난해하다는 단점이 눈에 띄지만, 미래상에 대한 인문적 문제의식을 이미지적 실체로 재현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세계적으로 예술 자본의 취향과 흐름에만 맞춘 작품들이 판치는 작금의 미술판에서 인간과 비인간 주체들이 공존하는 미래의 질서와 원리를 실험적으로 탐색하는 작품들을 큰 규모로 만나게 해주는 드문 감상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광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