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못난이 농산물
십수 년 전 고향 집에서 참외를 재배할 때 주말에 가서 몇 번 도운 적이 있다. 신기한 것은 달고 잘 익은 참외일수록 벌레가 일부를 파먹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벌레 먹은 부분을 제거하고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벌레 먹은 과일이 더 맛있다’는 옛말은 그르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흠 있는 참외는 상품 가치가 없어서 팔 수 없었다.
▶사람들은 예쁘게 보이는 음식이 몸에도 좋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도 있을 것이다. 과일·채소는 외형이 중요한 가격 결정 요인이다. 농가와 유통업체는 모양이 이상하거나 흠집이 있거나 크기가 균일하지 않은 농산물은 솎아낸다. 못난이 농산물은 모양·크기 때문에 소비자를 만날 기회조차 잃는 것이다. 이렇게 버려지는 채소와 과일이 전체 생산액의 3분의 1에 가깝다고 한다. 연간 최대 5조원어치라는 추정이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
▶최근 가성비를 중시하는 합리적인 소비자들이 늘면서 못난이 농산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뛰는 물가가 이런 소비를 부채질하고 있다. 온라인몰은 관련 코너를 확대 중이고 못난이 상품만 취급하는 쇼핑몰과 정기 배송 서비스도 성업하고 있다. 대형마트들도 이를 ‘집객 카드’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못난이 감자, 고구마, 무, 토마토 등이 대표적이다. 못난이 농산물에 ‘맛난이 농산물’ 상표를 달거나 외관에 흠이 있는 과일을 ‘반전 과일’이란 이름을 붙여 저렴하게 파는 것도 재치 있다.
▶못난이 농산품은 기존 판매 농산품보다 작거나 못생겼지만 맛과 영양까지 별로인 건 아니다. 최소한 차이가 없거나 더 좋은 경우가 많다. 건강에도 더 좋을 가능성이 높다. 제각기 다른 사연으로 버려질 위기에 있는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은 생활 속에서 친환경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얼마 전 소비자 설문조사에서 61%가 못난이 농산물을 구매한 경험이 있고 96%가 재구매 의사를 밝힌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충북도가 시작한 겉모양이 못생긴 배추를 김치로 만들어 파는 사업이 계약 물량만 200t을 넘길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김영환 충북지사가 4년 전 고향 괴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 농민들이 생산한 배추의 절반 이상을 버리는 것을 보고 이 ‘못난이 김치’ 사업을 고안했다. 일본·미국·베트남 등에 수출도 시작했다고 한다. 김 지사는 “이 김치가 저가로 파고드는 중국산 김치에 맞서는 ‘김치 의병’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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