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토끼의 꽁무니에는 ‘꽁지’가 없다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2023년이 시작된 게 언제인데, 이제야 새해 타령이냐고 하실 분도 계실 듯하다. 하지만 갑자년이나 을축년 등의 육십갑자는 음력이 기준이다.
따라서 계묘년은 지난 설날 시작됐으며, 올해는 토끼 중에서도 ‘검은 토끼’의 해다. 육십갑자의 위 단위를 이루는 갑·을·병·정 같은 십간의 계(癸)가 오방색으로 ‘흑(黑)’을 나타내며, 검은색은 ‘지혜’를 상징한다. 여기에 토끼는 다산과 풍요의 동물로 통한다. 즉 계묘년의 운세는 검은 토끼의 지혜와 풍요가 넘치는 해다. 모든 분이 그 기운을 한껏 받으시길 바란다.
달나라 속 옥토끼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토끼는 우리말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쫓겨 달아나다”나 “몰래 피해 달아나다” 따위 의미로 쓰이는 ‘토끼다’도 그중 하나다. ‘토끼다’는 명사 ‘토끼’에 ‘다’가 붙어 동사가 된 말로, 우리말에서는 이런 사례가 더러 있다. “띠나 끈 따위를 두르다”를 의미하는 ‘띠다’와 “신이나 양말 따위를 발에 꿰다”를 뜻하는 ‘신다’도 그런 말들이다.
“입술갈림증이 있어서 세로로 찢어진 기형의 윗입술”을 ‘토순(兎脣)’이라 하고, 그런 사람을 ‘토순이’라고 부르는 것도 토끼 때문에 생긴 말이다. 토끼의 윗입술은 좌우로 갈라져 있다. 이런 사람을 ‘언청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언청이’나 ‘토순이’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일상에서 누구를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 써서는 안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입술이 갈라져 있는 형태”를 이르는 말은 ‘구순열(口脣裂)’이고, 이로 인해 고통을 받는 분들은 ‘구순열 환자’다.
토끼와 관련한 말 가운데 자주 틀리는 것에는 ‘깡총’과 ‘꽁지’도 있다. 토끼처럼 “다리를 모으고 힘 있게 솟구쳐 뛰는 모양”을 뜻하는 말은 ‘깡총’이나 ‘깡총깡총’이 아니라 ‘깡충(껑충)’과 ‘깡충깡충(껑충껑충)’이다. 또 ‘토끼 꽁지’처럼 동물의 짧은 꼬리를 ‘꽁지’로 부르기도 하는데, 꽁지는 “새의 꽁무니에 붙은 깃”이다. 길든 짧든 새가 아닌 동물의 꽁무니에 붙은 것은 다 같은 ‘꼬리’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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