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블론세이브와 윤 대통령 순방외교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김응용 감독이 꼽힌다. 한국시리즈 총 10회 우승, 1986년부터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그 원동력에 대한 다양한 분석 중 마무리 투수의 중요성도 있는데, 이를 제일 먼저 깨달은 김 감독의 혜안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국보급 선발 투수 선동열이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어 ‘해태 왕조’ 구축의 주역이 되었고 이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서도 마무리 투수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마무리 투수의 역할은 경기 막판 등판해 팀의 승리를 끝까지 지켜내는 일이다. 만약 팀이 앞선 상황에서 등판해 역전을 허용하면 ‘블론세이브(blown save)’로 기록된다. 말 그대로 팀 승리를 ‘날려버렸다’는 뜻이다. 마무리 투수가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 팀 사기가 저하되고, 다음 경기에도 악영향을 준다.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도 막판에 역전당할까 경기 내내 불안해 선수들이 제 기량을 펼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서두에 마무리 투수 이야기를 한 이유는 5년간의 청와대 근무 기간 동안 대통령의 순방외교를 보좌하며 느낀 점 때문이다. 바로 외교에 있어서만큼은 대통령의 역할이 선발 투수보다는 마무리 투수에 가깝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순방외교를 떠나기 전 정부 부처, 관련 공공기관, 심지어 민간 기업까지 순방외교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부단히 뛰고 또 뛴다. 그 오랜 준비 과정을 거치며 대통령의 순방을 계기로 추진한 다양한 일들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게 되고, 비로소 대통령의 순방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된다.
또한 양국 간 난제를 정상 간 대화를 통해 매듭짓는 것도 대통령의 일이다. 이처럼 외교에서 대통령은 마무리 투수가 되어 책임 있게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은 대형 블론세이브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UAE도 난감해졌고 이란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친구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한 순방외교에서 적을 만들었으니 순방이 성공했다고 말하기가 궁색해졌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외교에서 블론세이브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사적 인사 동행, ‘날리면’ 발언, MBC 기자 전용기 탑승 불허 등으로 순방 성과는 오간 데 없고, 순방 이후 후폭풍으로 사회적 논란만 지속된 바 있다.
마무리 투수가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다음 경기를 준비할 텐데, 블론세이브가 계속되니 다음 경기 격인 순방 이후 국내 현안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있다.
1회부터 혼신의 힘을 다한 동료들의 수고를 마무리 투수가 지켜내듯, 대통령은 순방을 준비한 수많은 공무원들과 경제계, 그리고 국민의 노력을 책임있게 마무리해야 한다. 계속되는 블론세이브에도 지금처럼 끝끝내 세이브라고 우기는 사이, 날아가는 것은 ‘바이든’이 아니라 국민들이 공들여 쌓아온 대한민국의 국격이고 자존심, 국익이다.
야구 명문 충암고 출신이자, 스스로를 야구광으로 소개한 바 있는 대통령이기에 친근한 야구 용어로 순방외교의 연이은 실책을 짚어본 것이니 부디 한 번 곱씹어 주시면 좋겠다.
윤재관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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