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로 더 나은 세상 기대” [차 한잔 나누며]

이지민 입력 2023. 1. 30.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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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혁신상’ 지크립토 오현옥 대표
자사 개발 서비스 ‘지케이보팅’
“암호화폐 거래시 활용되던 기술
투표 적용해 익명성·검증성 강화
美 오디션 프로와도 협업 논의중”
글로벌 과제 해결할 기술로 주목
“다양한 정치형태 구현 기여 기대”

2017년과 2019년 엠넷(MNet)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학교’와 ‘프로듀스X101’은 출연진의 피땀이 무색하게 ‘생방송 문자투표 조작’이라는 불명예로 마무리됐다. 투표 조작 사태를 주도한 제작진은 모두 사법 처리됐다. 시청자들은 물론, 아이돌 팬덤과 연습생들에게 큰 상처가 남은 사건이다.

정치적으론 투표 이후 뒷말이 생기면 투표에 들어간 비용보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지난달에는 브라질에서 대선 불복 시위대가 대통령궁·의회·대법원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의회에 난입했다.

민주주의에서 투표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비밀투표여야 하지만 동시에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스타트업 지크립토 대표인 오현옥(49) 한양대 공과대학 정보시스템학과 교수가 블록체인을 연구하면서 투표에 이끌린 이유도 이 같은 모순적인 속성 때문이었다. 오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 세상을 더 낫게 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투표를 떠올렸다”고 했다. 오 대표의 생각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 CES 2023 현장에서 큰 공감을 얻었다.
오현옥 지크립토 대표가 19일 한양대 한양종합기술원(HIT) 지크립토 사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지민 기자
19일 한양대 한양종합기술원(HIT)에 마련된 지크립토 사무실에서 만난 오 대표는 CES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지크립토는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20개사 중 한 곳으로 꼽혔다. 첫날 개막행사에서 전 세계가 직면한 도전들을 해결할 기술 3가지 중 하나로 회사가 개발한 지케이보팅(zKvoting)이 지목됐다. 오 대표는 “최고혁신상 수상은 지난해 11월에 알았는데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저희 기술을 외국에서 먼저 인정해주는구나 싶어서 기뻤다”며 “CES 개막행사에서 소개되는 것은 현장에서 알게 돼서 놀랐다”고 했다.

지케이보팅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투표 서비스다. 영지식증명(Zero-Knowledge Proof)이라는 기술을 근간으로 하는데, 증명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그 지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뜻한다. 거래 상대방에게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도 거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로 통용된다. 이를 투표에 적용하면 데이터가 암호화된 상태로도 유권자가 행사한 표가 유효한지를 검증할 수 있게 된다. 익명성과 검증성을 모두 담보할 수 있다.

CES를 계기로 주목받았지만, 서비스 개발은 4년여 전부터 이뤄졌다고 오 대표는 밝혔다. 5개월 전에 베타 테스트 애플리케이션(앱)을 앱마켓에 출시해 현재 누구나 다운받으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오 대표는 “지금 세대보다 다음 세대가 더 좋은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의 예비창업패키지(비대면 분야) 지원 사업에 선정되고 창업에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수익 모델은 구체화되고 있다. 오 대표는 “CES에서 유명 미국 방송국 PD와 여러 차례 만나 내년에 지케이보팅 기술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같이 하기로 했다”며 “우리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일주일에 한 번 투표하는 데 쓰이는 건데 투표 한 번에 과금을 50원, 100원이라고 하면 거기서 매출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대표는 이 프로그램이 예정대로 방송되면 미국에서만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해외에서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으로 관측했다. 오 대표는 2021년 1월6일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 등을 예로 들며 “해외에서 온라인 투표 기술에 관한 수요가 더 크다”고 했다. 그는 “동시에 블록체인 업계가 그간 암호화폐 이야기만 했는데 암호화폐가 아닌 실생활에 쓸 수 있는 실용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만들어줘 고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면서 자사 기술과 민주주의의 역학관계를 설명했다.

“저희 기술이 종이 투표를 온라인 투표로 바꾸는 정도가 아니냐고들 하시죠. 그런데 저는 투표가 온라인으로 바뀌면 세상이 많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투표를 준비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니까 자주 못하잖아요. 국회의원들이 민의를 대신하는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만약 투표를 더 많이 자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시간으로 국회의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강화할 수도 있겠죠. 어쩌면 직접민주주의에 한발 더 다가가거나 다양한 정치 형태가 구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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