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출신 원학 스님 “전쟁 포화 속에서 명상을 통해 잠시라도 평화 찾길”
저널리스트 활동하다 불교와 인연
2018년 조계종에서 비구계 받아
지난해 전쟁 발발 직후 고향으로
리비우 ‘트라우마 힐링 센터’ 열어
시민들에게 몸·마음 휴식처 제공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명상 수업이 열린다. 이곳은 우크라이나 출신 원학 스님(Ostap Stepaniuk·36)이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조계종의 지원을 받아 운영 중인 ‘트라우마 힐링 센터’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센터에서는 누구나 명상을 통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원학 스님은 29일 경향신문과 서면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전쟁으로 집과 직장을 잃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져 우울함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며 “센터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수행하던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뉴스를 보고 3월1일 폴란드로 출국했다. 그는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열린 평화 시위에 참가했지만 시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고국의 피란민들을 직접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에 있는 자원봉사 단체에서 일을 구했다”고 말했다.
낮에는 구호 물품 보관 창고를 관리하고 저녁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봤다. 리비우에 있는 한 대학의 요청으로 피란민들을 위한 온라인 명상 수업도 진행했다.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늘자 스님은 본격적인 명상 치유 활동을 위해 4월14일 국경을 넘어 리비우로 향했다.
처음에는 마땅한 장소가 없어 시청과 박물관 공원 등 야외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명상 수업을 진행했다. 시립 문화센터에서 수업 일정과 장소 등의 홍보를 도왔다. 스님은 “언제 폭격이 올지 몰라 불안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명상을 통해 잠시라도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스님의 소식을 접한 조계종 공익기부법인 ‘아름다운동행’이 아파트 임차료와 각종 집기류를 지원하면서 센터가 꾸려졌다. 평일에는 하루 2번 좌선(명상)과 기도, 법요 의식 등 초보자를 위한 8주 명상 치유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주말에는 전문 심리치료사와 함께 피란민 등을 대상으로 그룹 치료를 한다.
리비우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서쪽에 있어 전쟁 피해가 다른 지역에 비해 덜한 편이다.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피란민들이 이곳으로 몰려온다. 센터를 찾아오는 청년과 학생들의 절반가량이 피란민이다. 피란민들은 샤워를 하거나 휴대폰을 충전하고 몸을 녹이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원학 스님은 “매서운 추위 속에 러시아가 지속해서 투하하는 폭탄에 전기나 물을 사용할 수 없는 날이 많다. 센터가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2012년 화계사에서 출가한 원학 스님은 무상사와 화계사에서 행자 생활을 거친 뒤 백담사 조계종립 기본선원에서 2018년 비구계를 받았다. 20대 초반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살며 방송국에서 국제뉴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중 우연히 일본의 명상 스승들을 만나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명상 공부를 위해 일본 사찰에서 지내던 중 한국에서 온 우봉 스님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아 한국에 오게 됐다.
원학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한 덕분에 전쟁이 터졌을 때 많은 사람을 도울 준비가 돼 있었다”며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지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 가톨릭 대학에서 임상심리 석사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다. 원학 스님은 “한국 불교 수행에 관심을 갖고 있는 치료사들을 교육하거나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명상을 지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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