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퍼진 ‘청량리역 노숙인 동사’?…노숙인도 동사도 아니었다

김송이·윤기은·이유진 기자 2023. 1. 2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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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대기소에 있던 81세 남성
급성 심정지 원인으로 사망
‘안 움직인다’ 신고로 발견
유족 “평소에 지병 없었다”

지난 26일 오후 5시30분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3층 맞이방 맞은편 대기의자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역무원이 남성의 상태를 처음 확인했다.

남성의 죽음은 같은 날 오후 7시쯤 한 시민이 페이스북에 “청량리역에서 노숙인이 한파 속에서 동사했다”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시해 알려졌다. 사진에는 폴리스라인 너머에 파란 천이 덮인 시신 한 구와 주변을 오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다른 시민도 비슷한 시간 “한 주검이 누웠습니다. 청량리역 3층 맞이방.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수많은 행인의 친절한 무관심”이라는 목격담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겼다. 목격담은 트위터 등에서 1만회 이상 공유되며 빠르게 퍼졌다.

2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사망한 남성 A씨는 노숙인이 아니었다. 사망 원인도 동사가 아니었다. 81세인 A씨의 사망 원인은 급성 심정지로 확인됐다. 철도경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은 없었다”며 “(청량리역 내) 대기소 의자에 앉아 있다가 돌아가신 걸로 파악됐다”고 했다.

A씨는 사망 당일인 26일 오전 10시부터 청량리역에 머무른 것으로 추정된다. 청량리역에서 근무하는 철도경찰 B씨는 “오전 10시쯤부터 역내에 계셨던 것으로 안다”며 “10시에 (역에) 도착해서 오후 5시30분쯤 발견됐으니 오래 계신 것”이라고 했다. B씨는 A씨를 무궁화 열차 이용객으로 추정했지만, A씨가 이날 열차를 이용한 내역은 발견되지 않았다. 청량리역 측도 “A씨의 열차 이용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A씨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망 추정 시각은 오후 4시쯤이다. 철도경찰에 따르면 119구급대가 출동해 A씨의 사망을 최종 확인한 시각은 오후 7시36분으로, 사망 후 3시간36분이 지난 뒤였다.

청량리역 식품판매대 직원 김모씨(34)는 “같이 일하는 이모가 (A씨가)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서 자는 줄 알았는데 꽤 오래 계셔서 걱정된다고 말하긴 했다”며 “그냥 할아버지가 많이 앉아 계시니까 몰랐다. 유난히 오래 앉아 계셨다더라”고 말했다. 청량리역 관계자는 “큰 역이다보니 이런 일이 종종 있다”며 “역에 머무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한 사람만 특정해서 살피긴 어렵다”고 했다. A씨 시신 수습 상황을 지켜본 시민 C씨는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차가운 바닥에 시신이 놓여 있고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고 말했다.

A씨는 아들 부부와 떨어져 혼자 살며 청량리역을 종종 찾은 것으로 보인다. 아들과 왕래가 끊긴 것은 아니었다.

아들 D씨는 빈소에서 기자와 만나 “명절 때 뵙고 얼마 안 지났는데 갑자기 이렇게…”라며 말끝을 흐렸다. D씨는 “아버지가 청량리역을 자주 다니셨다. 청량리역에서 약속도 많이 잡으시고, 경동시장도 많이 가셨다”며 “사시는 곳은 다른 곳인데 그쪽으로 옛날부터 많이 다니셨다”고 했다. D씨는 “고령이시기도 하고,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나와서 갑자기 그렇게 되신 것 같다”고 했다. A씨가 평소 앓던 지병은 없었다고 했다.

김송이·윤기은·이유진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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