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쪼개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한겨레 2023. 1. 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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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1992년 6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에 모인 세계 정상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보전협약 등 지구 환경에 관한 주요 의제가 설정됐다.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기후변화를 해결하려고 한 지 올해로 31년이다. 유엔 제공

[세계의 창]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국제사회 상황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질서에 ‘권위주의적 러시아와 그 지지 세력’ 대 ‘다소간 민주적인 세계’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삽시간에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이 전쟁은 현재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과 중국은 군사적 대립과 경제적 경쟁으로 냉전에 빠져들고 있다. 인도·이탈리아·이스라엘 등에서는 우익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이런 나라들의 국제 현안에 대한 일방주의적 접근은, 그와 마찬가지로 예외적 전통을 지닌 북한·에리트레아·엘살바도르와 겹치기도 한다. 프리덤하우스의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2005년에 세계인들의 46%가 ‘자유국가’에 살았는데, 불과 16년이 지난 뒤 그 비율은 20%로 떨어졌다.

한편 여러 국제기구가 압박을 받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는 필리핀·부룬디가 탈퇴했고, 미국 같은 주요국은 설립 조약에 서명조차 하지 않았다. 파리기후변화협정에는 많은 나라가 참여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중요한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런 약속은 자발적 수준에 그치며, 어떤 나라도 약속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를 핵무기 없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핵무기철폐조약에는 정작 핵보유국들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런 경우들은 책임성과 정당성 결여로 국제적 메커니즘의 효력이 서서히 잠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이 모두가 불길하게 들린다. 전 지구적 위협들에 직면해 더 협력해야 할 지금 많은 나라가 그런 협업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희망을 주는 이유도 찾아보자.

첫째, 오존층 구멍이 줄고 있다. 2006년 2750만㎢쯤이던 오존층 구멍은 2022년 말 400만㎢ 이상 줄었다. 이는 국제적 협력이 효과를 보고 있음을 뜻한다. 세계적으로 인준을 받은 소수의 합의 중 하나인 1989년 발효된 몬트리올의정서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최근 데이터는 몬트리올의정서가 효과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각 국가가 문제를 풀려고 협력을 결심하면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국제사회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을 극적으로 감소시켰다. 백신 보급으로 이번 겨울은 지난번, 지지난번 겨울보다 감염자나 사망자 수가 훨씬 줄었다. 국제적 협력에는 두 단계가 필요했다. 첫째, 백신 개발을 위해 국경을 넘어 놀라운 수준의 과학적 협력이 있었다. 과학계는 전통적으로 정치나 군사 영역보다 국경이나 역사적 원한을 덜 의식한다. 백신이 사람들에게 도달하게 하는 협력도 필요하다. 백신 공동구매·배분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가 그 역할을 했다. 자원을 모으고 성과를 나누는 이런 국제적 메커니즘은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백신 접근권을 주기 위한 것이다. 146개국에 20억회 분량의 백신을 전달한 코백스의 사례는 인상적이다. 코백스는 국제적 협력의 중요한 본보기다.

셋째, 국제사회가 인권보호 확장 노력을 계속한다는 점이다. 장애를 지닌 이들의 권리를 담은 최근의 한 협약은 유엔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협상이 진행됐다. 협약 초안 작성에 참여한 미국을 비롯한 20개국만이 서명하지 않았다. 이 협약은 장애인들이 기반시설과 정책 형성에 접근하도록 함으로써 세계의 지형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 북한도 협약에 서명했다. 이런 상황은 권위주의와 예외주의가 성장하는 시기에도 국제사회가 여전히 기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 세가지 성취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위해 세계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존층 보존과 코로나 대응 사례는 국제사회가 비상시에 최선의 대응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세번째 사례는 장애인 차별 해소 같은 더 힘든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의 흐름은 ‘세계 정부’를 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같은 긴급한 사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중요한 것은 계속 시도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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