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서재

한겨레 2023. 1. 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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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서재가 있다.

값비싼 원목 책상이나 벽 한면을 가득 채운 책장 같은 건 없어도 내 눈엔 꽤 근사한 서재다.

도시의 야경을 채우는 무수한 빛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기에 내 집도 있으려나, 헤아려보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는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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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말고] 이고운 | 부산 엠비시 피디

내겐 서재가 있다. 부산으로 오면서 넓은 집을 구한 덕분에 그런 호사를 누리게 됐다. 사실 말이 서재지, 자취방에서 쓰던 책상을 옮겨다 놓고 플라스틱 책꽂이를 올려둔 게 전부다. 책꽂이는 읽고 싶은 책들과 두툼한 국어사전으로 채워져 있고, 책상 구석엔 내가 좋아하는 소품들을 세워뒀다. 값비싼 원목 책상이나 벽 한면을 가득 채운 책장 같은 건 없어도 내 눈엔 꽤 근사한 서재다.

서울에서는 줄곧 집이 아닌 방에 살았다. 하나짜리 방, 원룸. 내 집도 아니고, 기껏해야 대여섯평인 방에 취향을 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테리어에 인색한 데다 특별한 감각도 없는 나는 가성비가 좋은 물건들을 방에 자주 들여놓았다. 마음에 썩 들지 않지만 싼값에 제 역할을 하는 생활용품들. 공통된 분위기 없이 들쑥날쑥 어긋나는 물건들 사이로 그나마 내 취향을 녹일 수 있는 곳은 책상이 유일했다.

원목 흉내를 낸 상판에 철제 다리를 조립해 만든 책상엔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많았다. 고민 끝에 고른 엽서나 잡지에서 오린 사진, 영화관에서 가져온 포스터나 스스로를 격려하는 말이 써진 포스트잇 같은 것들. 비싼 값을 치르지 않고도 취향을 담을 수 있어 좋았다. 하나짜리 방에선 가구는 그 자체로 생활공간이 되기도 했다. 폭이 양팔을 벌린 것보다도 좁은 책상은 나의 거실이자, 부엌이자, 서재였다. 거기서 부지런히 먹고, 읽고, 마시고, 쓰고, 빈둥거리며 나는 어른이 됐다.

언젠가 방에서 사는 일이 지겨워졌을 때, 자취하는 친구와 서울 동대문 인근에 있는 낙산공원에 갔다. 새 월세방을 구하러 다니던 때였을 것이다. 뭘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취직해 벌이도 늘었는데, 왜 내 방은 커지지 않을까 싶은 날이었다. 방을 보러 다니다 보면 십년 가까이 산 서울이 나를 자꾸만 밀어내는 것 같았다. 너 아직 멀었어, 하고. 도시의 야경을 채우는 무수한 빛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기에 내 집도 있으려나, 헤아려보던 기억이 난다. 그날 아마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식탁이자, 소파이자, 책상인 곳에 앉아 길고 긴 일기를 썼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산으로 돌아와 결혼한 뒤 남편과 함께 구한 전셋집은 방이 세개다. 서울이었다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꿨을 가격으로 구한 집이다. 방 하나는 침실, 하나는 남편 방, 하나는 내 서재로 쓴다. 비록 붙박이 옷장엔 입지 않는 옷들이 가득 걸려 있고 손님용 매트리스도 놓여있지만, 타지에 있는 친구들이 놀러 올 때를 제외하면, 오롯이 내 서재로만 쓸 수 있는 방이 생겼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저녁이면 이곳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쓴다. 일을 마친 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생각한다. 서울에 계속 살았다면 내게 이런 공간이 허락될 수 있었을까. 물론 서울로서는 그건 도시가 아니라 네 잔고의 문제야, 라고 받아치겠지만.

서울을 떠나 지역에 살다 보면, 가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설사 그곳이 고향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고향 부산에 돌아온 지 5년째인데도, 여전히 아주 중요한 것들을 서울에 두고 온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비슷한 삶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와 동료들이 그립고, 혼자 동떨어진 채 낙오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땐 나만의 서재에 앉아 지금처럼 뭔가를 쓰는 수밖에 없다. 이곳이 내게 허락한 여분의 공간과 여유에 관해서. 그러면 알게 된다. 그곳에 두고 온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불안해하는 것보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만들고 있는 세계에 충실한 게 중요하다는 걸. 서울을 떠나 지역에 산다는 건, 때때로 그런 깨달음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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