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 `호황` 조선업의 이유있는 인력난… "최저시급·계약직 누가 가겠나"

이상현 2023. 1. 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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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공고에 '시급 9620원' 명시
계약직에 평일 잔업·주말 근무도
하청 근로자는 상여금도 '미포함'
스웨덴처럼 동일 노동·임금 대안
조선사들의 수주물량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협력사 직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본사에서 숙련공이 일하는 모습. 연합뉴스

조선사들의 수주가 늘면서 일감이 쌓이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채용공고 등을 살펴보면 시간당 1만원도 채 안되는 '최저시급'을 주거나 계약직인 경우가 수두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윤석열 대통령이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에서도 나타났던 원·하청기업 간 임금격차가 최근 채용공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최근 수주가 쏟아지면서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원청보다 자금구조가 열악한 중소 협력사가 고임금·정규직으로 채용하자니 조만간 이어질 수주 가뭄기를 이겨낼 자신이 없다.

29일 고용노동부 고용정보시스템 워크넷에 따르면 울산 현대중공업 협력업체라고 소개한 D사는 조선소 내 선행도장부에서 도장 스프레이, 조공, 소지(그라인더) 업무를 할 인력을 모집하는 구인공고를 내고 임금을 '시급 9620원'이라고 명시했다. 또 '주 5일 근무지만 토요일 근무하는 경우도 발생하며, 평일 기본시간 이외에 잔업이 있다'는 기타사항도 함께 적었다.

거제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라고 소개한 O사는 시급 9620원에 '제조업 단순 종사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해당 공고의 근무형태는 주 6일이었다.

경력직을 모집하는데도 최저시급과 유사한 임금을 내건 공고도 있었다. J업체는 현대중공업 내 트랜스포터 경력 신호수 모집 채용공고로 시급 9620~1만원을 내걸었는데, 고용형태는 '12개월 계약 후 상용직 전환검토' 조건이었다.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라고 소개한 B업체 역시 안전관리업무를 담당할 사무원을 모집하는 공고에서 관련 경력이 최소 1년 이상 돼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지만 임금은 시급 9620원에 불과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원·하청 생산방식으로 인한 이중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조선산업 격차해소 및 구조개선 방안 보고서'는 "조선업 불황 기간 중 원청 경영상황이 악화 되면서 하청에 지급하는 기성금·물량 축소로 불공정거래가 증가했다"라며 "2019년 이후 수주·생산은 회복세이나 저가수주의 여파 등으로 원청의 적자는 지속되고 있고 하청 임금수준의 회복도 지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관계부처가 현장방문과 간담회 등을 실시한 경과 원청의 경우 기본급이 하청보다 약간 높지만 상여금이 800%(약 2000만원) 수준인 반면, 하청 숙련공은 평균 시급이 평균 1만1600원에 상여금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연봉이 3000만원가량 차이가 나는 셈이다.

보고서는 또 "하청 근로자는 장기불황과 기성금 감축으로 임금수준이 저하돼 있으며 도산·폐업 등으로 임금체불과 4대 보험료 체납이 지속되고 있다"며 "다단계 등 하도급 구조가 심화되면서 품질저하, 산재 증가 등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조선업계에 만연한 부정적인 인식 역시 떠나간 숙련공들이 돌아오지 않는 요인 중 하나다. 과거 조선업에 종사하다 불황기에 구조조정을 당했던 인력들은 조선업이 아닌 건설현장 등으로 상당수가 떠났다. 10년 안팎으로 수주 사이클이 이어지는 조선시황의 특성 상 고용불안이 불가피한 만큼 육상 현장직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당국은 조선업 희망공제를 확대하고 취업정착금 등으로 신규입직자의 소득을 지원하는 방법 등으로 인력유입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사내협력사 근로자를 대상으로 근로환경 개선 지원과 함께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의 지원기간도 연장한다는 방침이다.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좌장을 맡고 있는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는 "조선업은 산업 특성상 외부 변수에 따라 변동성이 큰 구조적 요인들로 인해 오랜시간 이중구조가 고착화된 분야"라며 "이러한 요인으로 협력사의 근로환경은 원청에 비해 열악할 뿐만 아니라, 경쟁력 회복에 있어서도 그 격차가 상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제만으로는 무리가 있으며, 원·하청 기업 사용자와 노동자들 간의 상생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임시직·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20~30% 수준이지만 3년 뒤 상용직 전환률이 70%에 달하며, 정부는 유연성을 높이되 임금과 보너스, 휴가 등에서 차별을 두지 못하도록 했다.

스웨덴의 경우 노사 합의 하에 개별 기업의 수익성에 관계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을 추구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원·하청과 관계없이 '개별임금방식'과 같은 직무형 임금체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상현기자 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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