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만든 '알파고'급 사건···인간의 역할은 [정혜진의 Whynot 실리콘밸리]
소수 전문가 넘어 아이들까지 전파
점차 대중에 기술 빨리 퍼지는만큼
인간의 영역인 '검증'도 속도 중요
대규모 자연어 처리 모델을 기반으로 한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가 입소문을 타면서 하나의 신드롬이 됐다. 한 매체는 이를 두고 “2007년 아이폰 첫 공개에 버금가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사실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챗GPT는 출시되자마자 하나의 사건이었다. 엔지니어와 연구자들이 저마다 챗GPT 서비스가 기대와 어떻게 다른지, 실제 성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수도 없이 들었다. 식당이나 카페의 테이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특정 기술이 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의 입소문으로 끝나지만 이번은 달랐다. 실질적인 위력을 체감한 부분은 교육 현장이었다. 학부모들이 동요했다. 아이들이 챗GPT로 에세이나 조별 과제에 대한 답안을 쓴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이야기에 미국 일부 학교에서는 챗GPT 이용을 금지하는 등 소동이 일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날 때부터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에 능숙하고 부모들도 이를 활용하는 데 열려 있을 것 같지만 엔지니어 출신 부모들도 다른 부모들처럼 ‘디지털 문물’을 늦게 접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학교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한다. 도서관은 ‘1회에 99권까지 대여 가능’이라는 넉넉한 도서 대여 정책을 보유하고 있고 아이들은 저마다 이동형 바구니에 책들을 담아가며 에세이를 작성한다. 교사들도 어릴 때부터 저작권 의식을 가르치고 에세이에 스스로의 생각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에세이가 챗GPT에 의해 쓰인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다.
급기야 콘텐츠 큐레이션에 강점을 갖고 성장한 미국 매체 버즈피드가 오픈 AI의 챗GPT를 콘텐츠를 만드는 데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에 버즈피드 주가가 300% 이상 뛰었다. 요나 페레티 버즈피드 최고경영자(CEO)가 내놓은 활용 구상은 AI가 내놓은 퀴즈에 대해 구독자들의 답변을 가지고 맞춤형 콘텐츠를 만들거나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극본 등 제작에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모호한 구상이었지만 AI 에디터와 인간 에디터가 할 역할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확한 구상이 있었다. 사람이 아이디어와 문화적 자본, 영감을 제시하면 이 같은 창의적 과정을 돕고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AI가 한다는 설명이다.
상황이 이같이 흘러가다 보니 이제 사라질 직업들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고 있다. 금융 애널리스트를 비롯해 그래픽·소프트웨어 디자이너는 물론 기자의 밥벌이도 위협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알파고(AlphaGo)의 대국 이후 저마다 알파고의 학습에 활용된 딥러닝의 위력을 이야기했다. AI가 바꿀 미래와 함께 사라질 일자리도 다뤄졌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딥러닝 구루’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지난해 8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딥러닝 연구의 가장 큰 상용화 사례로 딥마인드가 개발한 단백질 구조 예측에 쓰이는 ‘알파폴드(AlphaFold)’를 꼽으며 “지난 50년간 생물학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생물학자들이 50여 년간 단백질 10만여 종을 해독했다면 알파폴드는 1억 개 이상의 구조를 해독해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스탠퍼드에서 만난 한 생물학 연구자에게 알파폴드의 영향을 물으며 할 일이 줄어들지 않았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AI가 예측한 1억 개 이상의 구조를 실제로 검증하는 일이 남아 있다”며 “여전히 생물학 분야에서 할 일은 많다”고 단언했다.
생물학과 마찬가지로 대체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오류 검증’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 셈이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은 특정 기술이 나올 때 ‘베타 테스트’에 걸렸던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알파고가 세상에 나오기 전 학계에서는 2012년 전 세계 최대 이미지 인식 대회인 ILSVRC에서 당시 힌턴 교수팀이 딥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우승을 하며 화제가 됐다. 이후 2015년 네이처지에 딥러닝 논문이 실렸지만 대중이 딥러닝을 인식하기까지는 간극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신기술이 학계와 업계를 거쳐 일반에 오는 시차가 줄며 더욱 큰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인간의 영역인 ‘검증’도 AI 윤리, AI 철학 등에 머무는 게 아니라 속도와 행동이 더 중요한 시급한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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