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가 판 키워 1조 넘은 韓 미술시장...열기는 이미 증발 "올해 하락 각오해야" [정순민의 종횡무진]

정순민 2023. 1. 2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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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국내 미술시장, 글로벌 경기침체 견뎌낼까
아트페어 폭발적 성장세가 미술시장 견인
작년 1조377억 규모… 코로나 이전比 2배
경매시장은 되레 찬바람… 5분기 연속 감소
"3高 경기위축 요인, 미술시장 악영향 불가피"
이건희 효과·MZ 열풍도 증발해 잿빛 전망
일각 "건강한 조정국면 맞을 기회될 수도"
아트페어 열풍에 힘입어 지난해 국내 미술시장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대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아트페어가 판 키워 1조 넘은 韓 미술시장...열기는

국내 미술시장 규모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지난 4일 '2022년 미술시장 규모 및 추산 결과'라는 제목의 정책자료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 규모가 총 1조377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아트페어 매출액이 3020억원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화랑을 통한 직접 판매액이 5022억원, 경매를 통한 거래액이 2335억원에 달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비해 2배 이상 커진 규모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아트페어의 폭발적 성장세가 미술시장을 견인한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21년부터 불붙기 시작한 이른바 '아트페어 빅뱅'은 지난해 9월 세계 3대 아트페어의 하나인 영국 프리즈(Frieze)가 국내서 처음 열리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에 힘입어 아트페어 매출은 지난 2021년 1889억원에서 지난해 3020억원으로 59.8% 급증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던 2020년 아트페어 매출이 지난해 매출의 6분의 1수준인 468억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증가세다.

2021년 점화된 아트페어 열풍으로 지난해 다양한 이름의 미술장터가 전국에서 열렸고, 대개는 좋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5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이 전년(350억원)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746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고, 6월 열린 울산국제아트페어는 129억원에서 230억원으로, 화랑협회 주최로 3월 세텍(SETEC)에서 열린 화랑미술제는 72억원에서 177억원으로 매출이 늘어나면서 톡톡한 재미를 봤다. 물건을 내놓기 무섭게 모두 팔려나가는 이른바 '불장'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정확한 데이터가 수집되는 경매 시장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경매는 낙찰 결과가 곧바로 공개돼 시장 상황이나 경기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미술품 경매시장은 지난해 1분기 낙찰총액 785.3억원을 기록한 이후 2분기 665.3억원, 3분기 443.6억원, 4분기 440.8억원으로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렸다.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된 아트페어 매출 추이와는 상이한 추세다.

시기를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던 2020년까지로 넓혀보면 미술품 경매시장의 분위기는 보다 명확해진다. 분기별 낙찰총액이 200억~300억원대에 머물던 2020년 코로나 침체기를 지나 2021년 1분기 527억원으로 반등에 성공한 경매시장은 2분기 920억원을 거쳐 3분기 945억원으로 신고점을 찍었다. 업계에선 대체로 이 시기(2021년 3분기)를 정점으로 본다. 이때 이후 맥을 못추면서 5분기 연속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어서다.

가장 최근 데이터인 2022년 4분기 자료를 점검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국내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지난해 4분기 경매 결과를 집계한 결과, 낙찰총액은 전년동기 대비 61% 줄어들고, 작품 판매 수도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3.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79%였던 낙찰률도 57%로 떨어지고, 쿠사마 야요이·이우환 등 이른바 '블루칩 작가'의 출품작 수도 전년 동기에 비해 58%나 줄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주요 작가의 몇몇 주요 작품을 제외하고는 유찰되거나 하한가 선에서 낙찰되는 등 하락세로 접어든 시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정점을 찍은 지난해 6~7월 이후 국내 미술시장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각종 지표가 나빠지면서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신규 고객의 진입이 일시에 멈췄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연속된 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NFT 가격 폭락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대표적인 사치품 시장의 하나인 미술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얘기다. 국내 미술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는, 어쩌면 놀랄만한 뉴스에도 시장 참여자들이 의외로 차분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올해 미술시장이 녹록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건 누가봐도 분명해 보인다. 최근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2022 미술시장 분석보고서'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내고 "올해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미술시장 하락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올해 미술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9년 수준은 아니지만 2021년이나 지난해에 비하면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술시장 전문 컨설팅 기관인 '아트 이코노믹스'가 지난 2009년 당시 미술품 판매량이 36% 감소한 사실에 주목한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년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 보고서를 내는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김영석 이사장도 "지난해 상반기 시작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의 복합적인 경기 위축 요인이 미술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를 밀어냈던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 따른 훈풍과 아트페어의 열기, MZ세대 열풍 등은 이미 증발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 홍경한 미술평론가도 '냉기 도는 미술시장, 전망도 흐림'이라는 제목의 2023 전망 리포트에서 "2009년과 같은 침체가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좋은 시절 다 갔다'는 말이 나온다"며 "(지난해 중반 이후 미술품 경매시장이 보여준 각종 지표는) 주식으로 치면 차트가 온통 파란색으로 새파랗게 질린 형국"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미술계 일각에서는 시장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나치게 빠르게 달아오른 시장이 '건강한' 조정 국면을 맞을 기회가 될 수도 있고, GDP 대비 0.1~0.2% 수준인 해외 선진시장과 비교했을 때 한국 미술시장(GDP 대비 0.02% 수준)은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미술시장이 '공급자 주도시장'에서 '구매자 주도시장'으로 전환된 만큼 투자자 입장에선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숨고르기를 할 필요는 있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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