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업성공률 '3할 신화' 뒤엔 대학·기업 환상의 호흡

양연호 기자(yeonho8902@mk.co.kr) 2023. 1. 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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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강국 이스라엘 가다

지난 1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북쪽에 맞닿아 있는 해안 도시 헤르츨리야. 전기차 초고속충전(XFC) 기술 전문기업인 '스토어닷' 사무실에 들어서니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초고속 충전 배터리 셀이 한눈에 들어왔다.

도론 마이어스도르프 스토어닷 대표는 "흑연 대신 실리콘 음극재 소재를 활용한 이 셀 수백 개를 모으면 5분 충전으로 종일 달릴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가 된다"며 "전기차의 치명적 약점인 충전시간 문제를 해결하는 배터리업계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삼성이 초기에 투자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 회사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재료공학 연구원들이 2012년 창업했다. 반도체용 나노 소재를 연구하다가 배터리로 눈을 돌렸다. 마이어스도르프 대표는 "이스라엘에선 모든 대학에 기술지주회사가 있어 교수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수월하다"며 "대학 역시 활발한 지분투자로 지속 가능한 창업 생태계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스토어닷의 기업가치는 15억달러(약 2조원)에 달한다. 누적 투자액도 2억달러(약 2600억원) 정도다. 이날 마침 스토어닷은 이탈리아 배터리 기업 이탈볼트에 제조 기술을 판매하고 대량 양산을 공동 추진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텔아비브에서 남쪽으로 약 20㎞ 거리에 위치한 도시 레호보트. 이스라엘 최고 생명과학 연구기관이자 세계 5대 기초과학 연구소로 꼽히는 와이즈만연구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연구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울트라사이트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초음파 심장 영상진단 기술로 지난해 유럽 통합규격인증마크(CE)를 받았다. 다비디 보트만 울트라사이트 대표는 "머신러닝을 적용해 어떤 의사든 손쉽게 초음파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더 많은 의료 전문가가 환자를 정확하게 스캔할 수 있도록 지원해 전 세계에서 심혈관 질환을 더 빠르고 더 잘 진단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울트라사이트는 미국 뉴욕대와 와이즈만연구소가 공동 설립한 회사다. 휴대용 장치에 결합해 응급 현장에서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와이즈만연구소로부터 이전받아 사업화에 성공했다. 와이즈만연구소 출신으로 울트라사이트를 공동 창립한 이타이 케주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창업 초기에는 자금이 없다 보니 기술이전을 받았을 때 즉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사업화에 성공하면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첨단 기술산업에서 창업 강국으로 떠오른 원동력으로는 기술이전 창업 활성화가 꼽힌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대학과 연구소의 기술사업화 조직이다. 이스라엘에서 만난 혁신 스타트업의 뿌리는 모두 맞닿아 있었다.

기술창업은 개발자가 직접 창업하는 경우와 대학·연구기관 등이 개발한 기술을 기업이 이전받는 경우로 구분된다. 텔아비브에서 만난 드로르 빈 이스라엘혁신청 대표는 "기술이전 창업은 사장될 수 있는 기술을 발굴해 창업 시장의 규모를 확대하고 국민 경제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또 기술이전 창업은 기술 개발자와 경영 전문가가 협업해 창업하고 경영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보다 높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이전 활성화가 건전한 창업 생태계 구축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창업 생태계가 번성하는 비결도 이 같은 기술이전 창업 활성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혁신청에 따르면 이스라엘 내에서 연구개발(R&D)이 완료된 기술은 대부분 기술이전이 이뤄진다.

한국에서도 대학 등 공공 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을 민간에 이전하는 비율은 2021년 처음으로 40%를 넘겼지만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하며 정부와 민간의 인력과 재원을 투자해 개발된 기술이 사장되는 경우가 흔하다. 국내 업계에 따르면 기술이전 후 사업화 성공 비율이 한국의 경우 사실상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에서 기술이전 후 상용화에 성공하는 비율이 약 30%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술이전에 대한 적극성과 제도가 이 같은 차이를 만든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대학이나 연구소는 자회사 등 별도의 기관을 설립해 전문적으로 기술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스라엘 대표 이공계 대학인 테크니온공대 T-3, 히브리대 이숨, 텔아비브대 라못 등이 대표적이다. 와이즈만연구소의 기술 사업화 조직인 예다가 기술 사업화로 지금껏 거둬들인 매출만 누적 기준 280억달러(약 32조원)에 이른다. 히브리대 이숨은 기술이전을 통해 연 매출 2조4000억원을 창출해낸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달리 교수 등 연구자가 창업·경영에 대한 경험이 없어 실제 창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스라엘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이스라엘에서 기술이전 창업은 통상 연구자와 경영 전문가가 협업해 이뤄진다"고 말했다.

[텔아비브(이스라엘)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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