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압없어도 처벌…‘비동의간음죄’ 입법제안 논란, 왜

2023. 1. 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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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성 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변호사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

(강원=뉴스1) = 비동의간음죄 신설 여부와 관련해 법무부와 여성가족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여가부가 9시간만에 입법제안을 철회하는 것으로 해프닝이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동의없는 간음행위가 강간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강간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어느 편이 더 온당한 입장일까?

우리 법은 폭행·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를 강간죄로 처벌한다. 여기서 강간이란 폭행·협박이라는 수단을 동원해 강제로 간음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강제'란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의 자유의사를 억눌러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내키지 않음'의 경우는 어떠할까? 적극적으로 원하는 의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거절을 하는 것도 조금은 껄끄러워서, 유쾌하지 않다는 낯빛을 보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성행위 요구에 응했다면?

이런 경우는 명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는 사례이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성행위로 나아간 것으로도 볼 수 없는 사례다. 즉, 원한다는 의사가 확인되지 않은 모든 경우가 곧바로 강제된 성행위일 리는 만무하다.

이번에는 논의의 방향을 바꿔서 조금 더 고찰해 보기로 하자.

헌법은 제12조 제1항에서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었다. 제27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제27조 제4항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한다.

따라서 범죄사실에 대해서 구체적인 증거에 기반하여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오로지 검사에게만 있는 것이며, 자신에게 범죄혐의가 없음을 피의자, 피고인인 국민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비동의간음죄가 신설되는 경우에도 검사가 그 성행위에 관한 동의가 없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서 전부 입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유독 비동의간음죄라고 해서 피의자, 피고인이 동의 없이 성행위를 했으리라는 유죄추정을 받더라도 무방하다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특정한 사항이 존재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전혀 존재했었던 바가 없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난해한 일이라는 점이다.

성폭력범죄에 관한 사건은 아니었으되 대법원도 그러한 까닭에서, ‘특정기간과 특정장소에서의 특정행위의 부존재에 관한 것이라면 적극적 당사자인 검사가 이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해야 할 것이지만, 특정되지 아니한 기간과 공간에서의 구체화되지 아니한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불가능한 반면 그 사실이 존재한다고 주장·증명하는 것이 보다 용이’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0. 11. 25. 선고 2009도12132 판결 등 참조).

이제 상상해 보자. 동의가 없었다는 고소인 측의 피해주장에 터 잡아 비동의간음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때, 현실에 있어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위에서 보았듯이 부존재 사실에 대한 적극적 입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성폭력범죄 사건에 있어서 고소인의 피해진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주요 증거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한 연유에서 고소인 진술에 대한 수사기관의 의존도는 더욱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구나 고소인 측의 피해주장이 앞서 이미 있었으니 성행위에 관한 동의가 실재했음을 피의자가 스스로 알아서 입증해 반박하라는 수사기관의 요구가 빈발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에 따른 무죄추정의 원칙이 사실상 형해화될 위험성 또한 매우 크다.

법원은 피해자의 피해진술 이외에 다른 물적 증거가 없더라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기관으로서는 범죄 구성요건을 오히려 깨뜨리는 사실에 해당하는 '동의의 존재사실'을 적극적으로 수사해 밝힐 만한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게다가 묵시적 동의만 있었던 경우라면 그 동의가 있었음을 밝힌다는 것도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만일, 나쁜 마음을 먹은 고소인이 있다면 무고를 하고도 얼마든지 무고죄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비동의간음죄는 그 실질에 있어서는 모든 국민이 무죄추정을 받으며 그 범죄혐의에 관한 입증책임은 오롯이 검사에게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근본원칙을 위협하는 위헌적 법률이 될 소지가 커 보인다. 설사 형식논리상으로는 위헌법률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지는 않을 수 있더라도 말이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필자는 비동의간음죄 신설을 지지하는 이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비동의' 상황이 윤리·도덕적으로 아무런 잘못이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강제'된 성행위에까지 이른 것은 아닌 경우를 모두 형사책임의 영역으로 포괄하여 범죄로 규율할 것이냐 또는 규율하여야만 하느냐는 문제는 전혀 다른 쟁점이다.

세상의 모든 잘못된 행위가 형사범죄인 것은 아니며, 반드시 형사범죄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극악한 범죄에 관한 숱한 소식들 속에서 흔히 간과되곤 하는 원칙이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국가형벌권의 발동은 최후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leej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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