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르포] '개딸'이 아니라는 6080들은 왜 서초동에 나왔나

원종진 기자 2023. 1. 2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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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의혹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어제. 검찰청사 앞 서초동의 대로는 중세 군대의 전투가 벌어지는 강가를 떠올리게 했다. 8차선 차로를 사이에 두고 '이재명 구속' 깃발을 내건 이들과 '우리가 이재명이다'를 내건 이들이 포진했다. 이들은 이재명 대표가 검찰청사 안으로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나서까지도 말의 투석전을 벌였다. '이재명 구속' 진영이 설치한 스피커 다발에서는 개가 짖는 소리와 도살당하는 돼지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귀를 찢는 짐승 울음소리가 겨울 하늘에 울려 퍼지자, '우리가 이재명이다' 진영은 상응하는 소리들을 목청껏 부르짖었다. 개 돼지 울음소리와 사람의 악쓰는 소리들은 대한민국의 정의를 담보한다는 대법원,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법원의 우뚝 솟은 건물 사이를 휘감았다.

양 진영의 전위대가 말의 전투를 벌이는 전선의 뒤편, 조금 다른 부류로 보이는 이들이 서 있었다. 시위 내내 서로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던 이 사람들의 행동은 주로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다. 주최 측이 배부한 종이 피켓은 들었지만,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가 말의 전투에 참전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삼삼오오 소통하며 시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20~40대의 '개딸'들보다는 언뜻 보기에도 훨씬 윗세대인 것으로 보였다.

이 대표가 검찰 청사로 들어간 뒤, 점심을 먹으러 가다 이들을 보게 된 기자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이어지는 수사에도 이 대표가 대통령에 버금가는 30% 후반대의 지지도를 보이는 건 '개딸'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재명 지지율을 떠받치는 기둥의 뼈대는 분명 '개딸', '손가혁'으로 호명되는 초강성 지지층이겠으나, 강성과 중도 사이 어딘가의 사람들이 이 뼈대 주위를 회반죽처럼 감싸면서, 30% 후반대의 지지율 기둥은 비로소 완성되었을 것이다. 흘러내리기보다는 고착되고 있는 이 기둥 덕분에 이재명은 '분당론', '끓는점 도달론'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한민국 원내 제1당의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기자는 '개딸'들의 최전선 뒤편, 다소 소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설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SBS 로고가 적힌 명함을 건네며 말을 걸자 마스크 위 눈빛에 불쾌하고 달갑지 않은 기운이 어렸다. 망설이던 이들은 하지만 곧 말문을 열었고, 영하 10도의 날씨 속에서도 40여분 간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우리는 '개딸'아냐…인터넷 소통 잘 안 해"


60대 중반에서 80대 중반에 이르는 이들 4명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개딸'로 생각하는지, '재명이네 마을'과 같은 이 대표 팬카페에 가입돼있는지 묻자 모두 손사레를 쳤다.
 
(김나운/58년생 여성/서울 강남구 역삼동 거주)
잘 모르겠어요. 저희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본인들끼리 하겠죠. 카페 가입이나 이런 거 말하는 거잖아. 그런 거 없어요. 이재명 당 대표님 이렇게 이런 거 같은 경우는 나와야 되는 거죠. 응원하려고 당연히.

(A씨/52년생 여성/서울 송파구 송파동 거주)
여기들은 다 안 들어가. 오죽 그냥 그냥 속이 뒤집어져서 지금 나오는 거지.

이재명 지사가 지방자치단체장을 하던 시절부터 주 지지층이었던 '손가혁' 등과 달리, 이들은 정치인 이재명을 좋아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한 상호 소통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씨/52년생 여성/서울 송파구 송파동 거주)
작년 11월경쯤 10월 11월경쯤 이렇게 됐어요. 그때서부터 관심 가졌어요. 처음에는 선거 끝나고 나서 그냥 몇 표짜리 요만큼이라도 졌으면 인정하자 했는데, 점점 하는 거 보니까 그냥 사람을 그냥 진짜 그냥 그렇게 말려 죽일 작정으로 그냥 그렇게 하는 거 보고서는 안 되겠다 싶어 가지고…

이들은 주로 유튜브를 통해 집회 소식을 전해 듣는다고 했는데, 64년생 정의균 씨의 경우 생업이 바빠 토요일 아침에도 일을 하다가 '집회 상황이 밀린다'는 유튜브 방송을 우연히 듣고 처음으로 집회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정의균/64년생 남성/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우리 아들내미 일하는 거, 인터넷 쇼핑몰 판매하고 하는데. 그 구제 옷 하는 데 가서, 동묘에 가서 받아서 데려다주고 왔어요. 그리고 유튜브를 딱 켜는데 우리 '빨간 아재(유튜버)' 이분이 인원은 우리가 많은데 저기 스피커 때문에 밀린다고 그래서 저도 그래서 왔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재명은 응원하지만 민주당은 별로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적극적 지지와는 달리, 이들은 현재의 민주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보수 정당보다는 나으니 민주당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당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였다. 민주당 내에서도 줄곧 비주류였고, 이를 굳이 숨기지 않아 온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서사와 일치하는 반응이었다. '정치 세력'에는 기대하는 것이 없지만, 이재명이라는 특정 '인물'에게는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는 것이다.
 
(김나운/58년생 여성/서울 강남구 역삼동 거주)
현재는 민주당에도 80%가 일을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이 많아요. 정치 국회의원들. 근데 이재명 후보님은 태생부터가 흙수저잖아요. 그죠? 학교도 제대로 안 나오고, 그리고 전과 4범이 됐지만 그거는 다 시민들을 그 살기 좋게 하기 위해서 인권으로 간 그런 거죠. 개인적인 뭐가 아니에요. 개인적인 범죄가 아니잖아요. 공익을 위해서 공무 방해 이런 걸로 걸려 들어가신 거잖아요. 그래서 그거는 훈장이죠. 전과 4범이 훈장인 거죠.

이들은 대부분 원래 자신들은 민주당원이거나, 당의 열성 지지층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민주당과의 인연을 물으면 부인하거나 밝히기를 꺼려했다. '이재명이 곧 민주당이다'라는 종이 팻말을 들고 있던 85살 여성 B 씨는 '팻말을 보니 민주당 지지층이신 거 같다'는 기자의 질문을 어렵사리 알아듣고는 이렇게 답했다.
 
(B씨/39년생 여성)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에요. 당하고는 상관없어요. 그런데 이 일은 잘했는데 너무 당하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진짜 노인네들 그냥 나오는 거예요.
 

"언론이 제일 밉고, 그 다음이 검찰…때릴수록 이재명 응원할 것"


정치도 싫고 민주당도 별로인데, 대체 이재명의 무엇이 좋으냐는 물음에 이들은 '능력이 있다'는 말과 함께 '억울하지 않느냐', '불쌍하지 않느냐'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조국 전 장관 이야기를 꺼냈다. 지방자치단체장 시절부터 이재명을 열렬히 지지했던 '개딸', '손가혁'과는 달리, 이들이 정치적 서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조국'과 '정경심' 때부터였다고 한다.
기성 언론은 종종 '친문'과 '친명'의 계파 차이에 주목하고, 강성 친문의 상징이었던 조국과 상대적으로 아웃사이더였던 이재명을 조금 다른 결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개딸'이기를 부정하면서도 이재명을 지키겠다고 나온 이들은 두 인물의 서사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었다.
 
(김나운/58년생 여성/서울 강남구 역삼동 거주)
조국 장관님 정경심 교수님 가족이…조국 장관님 사모펀드 수사했지만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거 하나로 지금 투옥시키셔서 그 딸은 지금 대학교 자체가 날아간 거잖아요. (…) 이재명 대표님도 10년 동안 400회 정도 2000번 이상 조사하셨는데 돈 나올 증거가 없다고 저도 들었거든요. 그러면 억울한 거죠. 그래서 저는 정당 가입을 해본 적도 없는데 이재명 대표님이 너무 억울한 것 같아서 이재명 당 대표님 지금 힘내라고 힘을 보태드리러. 이것밖에 할 수가 없으니까,

2년 전 서초동을 휩쓸었던 '검수완박' 소용돌이의 핵, '언론-검찰'에 대한 적개심과 비난도 뒤따랐다.
 
(정의균/64년생 남성/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주)
나는 첫째로 언론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언론이 가장 잘못됐어요. 저는 언론도 하나의 기득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기네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지 않나 그래서 정말 참담해요. 정말 참담합니다.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기자들 보면 이런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너도 기자냐' 하면서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에요. 진짜 맞아요. 정말 그래요. 근데 막상 우리 민주 시민들은 그러지 않잖아요. 질서 있고 뭐 하고 이러기 때문에 안 하는 건데…

언론과 검찰을 사회의 공기(公器)이자 시스템의 한 축이라기보다는, 부패한 기득권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검찰 수사와 보도가 장기화된 상황은 도리어 응집의 유인으로 작용하는 듯 보였다. 정경심 전 교수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지면서 거의 사그라든 것처럼 보였던 '서초동 촛불'의 일부가 이재명을 촉매로 되살아나고 있는 듯했다.
 
(정의균/64년생 남성/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주)
검찰이 이럴수록 언론이 이럴수록 이재명에 대한 사랑은 더 깊어져요.

(A씨/52년생 여성/서울 송파구 송파동 거주)
더 커져요!

(정의균/64년생 남성/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주)
언론-검찰에 대한 믿음과 이재명을 지지하는 마음은 연결돼 있죠. 당연히 반비례예요. 언론이 그러면 그럴수록. 사실은 근데 저는 이거 시대정신이라고 보거든요.

(A씨/52년생 여성/서울 송파구 송파동 거주)
그러니까요. 저는 이거 정치라는 거는 진짜 그냥 몰라요. 몰라. 그냥 내가 이렇게 놀리는 것도 모르고 컴퓨터 할 줄도 몰라요 그런데…

(김나운/58년생 여성/서울 강남구 역삼동 거주)
상식으로 눈에 봤을 때 너무 기울잖아 그러면 일반 시민들이 모이게 돼 있어요. 그게 무서운 거예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

미국 엘리트 계층은 자신이 '부족적'인 것과는 정 반대라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이 보편 인류를 찬양하고 전 지구적, 코즈모폴리턴적 가치를 받아들인 '세계 시민' 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로 그 코즈모폴리턴주의가 얼마나 부족적인 것인지를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고학력이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볼 수 있었던 사람들의 코즈모폴리턴주의는 사실 매우 배타적인 부족적 표식이다. -에이미 추아, <정치적 부족주의> 中

이재명의 정치적 위치를 받치는 기둥뼈대인 '개딸'들과 그 주위에 회반죽처럼 굳어져 있는 지지층들은 필자가 쓰는 기사를 포함한 주류 매체에서 주로 '극렬 팬덤'이라는 단어로 호명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공론이 오가야 할 자리를 잠식하는 '미개한 부족민'들로 표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광화문에서, 서초동에서, 전국의 광장 곳곳에서 양 진영의 이들이 저마다 결집해 소리를 지르는 일들은 일시적 병리현상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상시적인 '풍경'이 되었다. 처음엔 꼬리가 개를 흔드는 광경이 벌어졌다고 했으나, 이것이 상시적 현상이 되면서 개의 본질은 꼬리에 있는 것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 되고야 말았다. 미국에서 수입된 저널리즘 이론을 대학에서 배워와 '공론장'의 일원이라 자처하는 기자들은 기존에 써오던 안경으로 현상을 읽어내는 데 실패하고야 말았다. 이제는 '팬덤'으로 호명되는 이들이 부족적인 것인지, 아니면 이 와중에 공론이니 합리적 토론 따위를 들먹이는 이들이 부족적인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의 부분들이 공론을 할 수 없는 각개의 부족으로 남고야 만다면 '사회적인 것'들은 점점 가능하지 않게 된다. 미국의 분열 현상을 '정치적 부족주의'라는 이름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한 정치학자 에이미 추아는 조금 공허할 수도 있는 문장으로 글을 맺는다. '중요한 것은 개인과 개인이 대면해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분열이 심각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가치 있는 일 중에 어렵지 않은 일은 없다'. 날로 극심해지는 정치적 부족주의를 조금이라도 허물기 위해서는 결국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대면해서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제의 서초동처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대면해 상호작용을 하는 게 도무지 가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디어 종사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디어 혹은 매체라고 불리는 것들이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미디어를 통해 주로 정보를 습득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기자'라는 이들이 몸담은 매체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김나운/58년생 여성/서울 강남구 역삼동 거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 새날. 다른 건 안 봐요 일절.

(정의균/64년생 남성/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주)
새날, 아까 말씀하신 김어준, 그 다음에 고발뉴스, 그 다음에 더 탐사. 그 다음에 저기 김두일, 정치 고고 뭐 여러 가지 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추동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인 '정치'는 이미 여야 간 사생결단의 총동원 체제에 접어든 듯 보인다. 여당은 공식 브리핑에서 상대 당 대표를 '일개 범죄자'라고 호명한다. 야당 또한 대통령과 여당을 정치적 금치산자 정도로 부르고 있다. 비슷한 상황이 지속됐던 브라질에서, 미국에서, 거리에 파도처럼 일렁이던 사람들은 결국 해일이 되어 국회의사당이나 대통령궁을 점령하고야 말았다.

누군가는 병리 그 자체로, 누군가는 민주(民主)의 실현 그 자체라 평가하겠지만, 대선 패배 뒤에도 정치인 이재명이 몰고 다니는 지지층들은 이제 그 자체로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보수 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가 지구 반대편 브라질의 소요 사태를 1면으로 다룬 것은 전국의 거리와 광장에서 일렁이는 파도가 언제든 해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진영의 불안감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파도가 해일이, 촛불이 들불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해일이든 들불이든, 그것들의 에너지가 좀 더 생산적으로 쓰이려면, 일렁이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공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이 현상 속의 구성원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쯤 차분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어제와 오늘, 가장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정치인 이재명의 말 대신, 서초동 전위대 후방에 위치한 이들의 이야기를 SBS라는 매체 위에 장황하게 올린 이유다.

*참고문헌
<정치적 부족주의>, 에이미 추아, 김승진 역, 부키

​​​​​​​(사진=연합뉴스)

원종진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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