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기후 위기, 이젠 정말 ‘내 일’이야…영화 ‘투모로우’

강푸른 2023. 1. 2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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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땔 보일러조차 없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그다음으로 가스 요금을 낼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자유의 여신상이 버틸 수 있는 물의 하중을 계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을까? 예를 들면, 이 영화의 궁극적인 진실에 주목하는 일? 지구 온난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며, 이대로라면 인류 존속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수많은 사람이 반복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기후위기를 남 일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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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투모로우’(2004)의 한 장면. 뉴욕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얼어붙어 있다.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예외는 없었다. 이번 주 목요일 아침, 집 수도관이 얼어붙었다. 찬물은 나오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질 않았다. 밤사이 분명 물을 틀어 놨었는데? 한바탕 푸닥거리 끝에 결국 작년 겨울에 왔다 가신 기사님을 불렀다. 그사이 작업 비용이 15만 원으로 올랐다며, 기사님은 추울 땐 냉수뿐 아니라 온수도 틀어놔야 한다는 조언을 남기고 떠났다. 이러다 매년 보겠다는 농담을 던지며. 기사님이 떠나고 물난리가 난 아파트 복도에 굵은 소금을 뿌리며 결심했다. 그래, 이번 주는 '투모로우'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2004년에 만든 영화 '투모로우'는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난 상황을 담고 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이 차가워지고, 대류권의 찬 공기가 하강하면서 순식간에 태풍과 해일, 눈 폭풍이 차례로 찾아온다. 기상학자인 주인공 잭은 북반구 전체가 얼어붙는 끔찍한 상황을 예측하지만, 빙하기가 다시 찾아올 거라는 경고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도 살리겠다는 각오로, 잭은 눈보라를 헤치고 뉴욕에 있는 아들을 구하러 떠난다.

개봉 후 근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투모로우'는 지금도 종종 극강의 추위를 표현하는 '짤방'으로 동원될 만큼 당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일밖에 모르던 아버지가 아들을 구하며 가정을 회복한다는 전개야 새로울 것 없지만, 최첨단 특수효과로 구현한 얼어붙은 지구의 모습이 꽤나 섬뜩했기 때문일 테다. 얼어붙은 여신상이 상징하듯, 갑작스런 기후 변화에 인간이 만든 제도와 기술은 무용지물이다. 당장 주머니에 얼마가 들었든, 얼마나 부잣집 도련님이든 간에 해일과 눈보라 앞에선 떠돌이 노숙자와 다를 게 없다. 니체를 비롯한 인류사의 위대한 저작물들도, 추위를 피해 도서관에 숨어든 주인공들에겐 벽난로 땔감일 뿐이다.

폭우로 교통이 마비된 뉴욕 도심을 그린 영화 ‘투모로우’(2004)의 한 장면. 출처 IMDB.


그러나 실제로 이 같은 종말을 맞는다면 그저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겪고 있는 '느린 종말'이 훨씬 더 지독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사람이 얼어붙는 할리우드식 과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투모로우' 속 기후 위기는 모두에게 공평하다. 눈 깜짝할 사이 결딴을 내주는 덕(?)에 고통을 느끼는 순간도 길지 않다. 현실은 어떤가? 열화상 카메라로 아파트 단지와 쪽방촌을 찍었더니, 한쪽은 불을 때 새빨갛고 한쪽은 바깥과 실내가 별다를 바 없더라는 며칠 전 서울신문 기사를 굳이 들고 오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땔 보일러조차 없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그다음으로 가스 요금을 낼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는다. 한 번도 쓰지 않고 버려진 물건들과 오염된 물로 뒤덮인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이 먼저 죽고, 그 쓰레기를 만들어 낸 '1세계' 국가 부자들은 어떻게든 남들보다 오래 살리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투모로우'가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이 영화가 얼마나 허황된 작품인지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장면 곳곳에 숨은 오류를 찾아내거나, 실제 과학자의 반응을 전하며 우스갯소리로 삼는 식이었다. 하지만 자유의 여신상이 버틸 수 있는 물의 하중을 계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을까? 예를 들면, 이 영화의 궁극적인 진실에 주목하는 일? 지구 온난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며, 이대로라면 인류 존속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수많은 사람이 반복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기후위기를 남 일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사이 미국 핵 과학자 회보가 발표하는 '지구 종말 시계'의 초침은 자정까지 90초 앞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연일 북극에서 '직배송'된 찬 공기에 시달리며 추위와 싸우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이 '역대 가장 추운 겨울'과 '역대 가장 뜨거운 여름'을 겪어야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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