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을 품은 피노키오 [비장의 무비]

김세윤 2023. 1. 2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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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TV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보았다.

착하고 바르게 행동한 덕분에 '진짜 소년'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무 인형 이야기가 아이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의 마음속에서 피노키오는 어느새 프랑켄슈타인과 짝꿍이 되어 있었다.

죽은 아들처럼 착하고 예의바른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제페토에게도 점점 실망스러운 존재가 되던 어느 날, 서커스단 단장의 꼬임에 빠져 꼭두각시 인형극에 서는 피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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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의 비장의 무비]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감독:기예르모 델 토로
목소리 출연:이완 맥그리거, 데이비드 브래들리

어느 날 TV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보았다. 착하고 바르게 행동한 덕분에 ‘진짜 소년’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무 인형 이야기가 아이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꼭 사람이 되어야 할까? 인형인 채로는 안 되는 걸까? 불완전한 아이라면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면 안 되는 걸까?

아이의 마음속에서 피노키오는 어느새 프랑켄슈타인과 짝꿍이 되어 있었다. 남과 달라서 외로운 존재들. 하지만 남과 다르기에 또한 특별한 존재들. 커서 영화감독이 된 아이는 언젠가 둘을 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프랑켄슈타인을 품은 피노키오 이야기,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던 이야기, 다른 누구의 ‘피노키오’에서도 만날 수 없는, 오직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공간 배경은 원작과 같은 이탈리아. 시대 배경은 원작과 다른 1차 세계대전.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지배하는 마을에서 술에 취한 목수 제페토가 죽은 아들 카를로를 그리워하며 나무 인형을 만들다 잠든다. 술에 취해 만든 탓에 어딘가 어설프고 조악해 보이는 미완성 피노키오를 경계하고 배척하는 마을 사람들. 역시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성당의 나무 예수상을 가리키며 피노키오가 말한다. “다들 저 사람을 좋아해요. 저 사람도 나무잖아요. 저 사람은 좋아하면서 나는 왜 안 좋아해요?”

죽은 아들처럼 착하고 예의바른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제페토에게도 점점 실망스러운 존재가 되던 어느 날, 서커스단 단장의 꼬임에 빠져 꼭두각시 인형극에 서는 피노키오. 파시즘 광풍의 시대, 남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극에서 유일하게 줄 없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나무 인형의 은유가 더해진다. 삶과 죽음, 자유와 복종, 정체성과 다양성의 테마를 아우르며 점점 더 크고 깊고 아름답고 애틋한 이야기가 된다.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에서 ‘어른들의 파시즘’을 ‘어린아이의 프리즘’으로 다시 보게 만든 감독.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2017)에서 “사랑을 어떤 모양에 집어넣든지 사랑은 바로 그것의 모양이 된다”라는 걸 기어이 믿게 만든 감독. 그리고 이번 작품을 ‘피노키오가 변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피노키오가 만들어내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완전히 새로 써낸 감독. 이 세 편의 영화를 세 꼭짓점으로, 버뮤다 삼각지대보다 더 빠져나오기 힘든 기예르모 델 토로 삼각지대가 완성되었다. 그 삼각형 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것이다.

얼마든지 CG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낸 영화. 제페토가 만든 나무 인형이 요정의 마법으로 생명을 얻는 것처럼, 수많은 애니메이터의 손끝에서 캐릭터와 세트가 살아 움직이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마법. 넷플릭스에 함께 공개된 메이킹 필름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손끝으로 빚어낸 시네마〉까지 꼭 챙겨 볼 것. 인간의 두 손으로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그 경이로움을 꼭 목격할 것.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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