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극우 질주’는 중도층에 대한 배신이다

성한용 입력 2023. 1. 29. 07:05 수정 2023. 1. 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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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65
대분열의 시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22년 3월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선 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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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분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것인지를 놓고 국왕과 총리의 의견이 맞서면서 그리스 전체가 두 진영으로 갈라졌던 사건을 의미합니다. 대분열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이 통째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정치 현안과 정책 과제에 대해 두가지 상반된 여론이 존재합니다. 뻔히 바라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심각할까요?

정치 양극화, 갈라진 민심

지난 설 연휴를 전후해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와이티엔>(YTN)이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응답자가 지지하는 정당이 어디냐에 따라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현상이 확연합니다. 같은 나라 국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지금부터 인용하는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한국방송> 여론조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영수회담에 대한 질문에, 민주당 지지자의 87.8%가 ‘필요하다’, 8.3%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는 29.2%가 ‘필요하다’, 64.9%는 ‘필요하지 않다’였습니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개헌해서 4년 중임제로 변경하자는 의견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는 ‘5년 단임제 유지’ 34.6%, ‘4년 중임제 변경’ 59.9%였습니다. 반면에 국민의힘 지지자는 ‘5년 단임제 유지’ 58.1%, ‘4년 중임제 변경’ 37.6%였습니다. 개헌에 대한 양당 지지자들의 생각이 정반대입니다.

두가지는 정치 현안이기 때문에 양당 지지자들의 의견이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요 정책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양당 지지자들의 의견은 크게 달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개혁 추진에 대한 평가를 물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22.0%는 ‘잘못된 관행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 추진’이라고 했고, 68.8%는 ‘노동계를 적대시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일방적 추진’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83.7% 대 8.1%’의 압도적 비율로 정반대의 평가를 했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13.7%만 ‘한·일 양국의 관계 회복을 위해 동의한다’고 했고, 81.8%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의견 반영이 미흡하여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62.4%가 동의한다고 했고, 30.7%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문화방송> 여론조사에서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두개의 문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태원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에 대한 견해를 물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11.3%만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수사가 충분했다고 본다’는 쪽을 선택했고, 84.9%는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수사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본다’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57.3% 대 28.1%’로 정반대의 견해를 보였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거취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들의 81.9%는 ‘사퇴해야 한다’고 했고, 13.5%가 ‘사퇴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24.5%가 사퇴해야 한다고 했고 68.4%가 사퇴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와이티엔> 여론조사에서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문항 두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69.8%는 ‘야당 탄압용 정치 수사’라고 했고, 21.7%는 ‘이재명 대표 개인에 대한 비리 수사’라고 답변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7.4% 대 86.6%’ 압도적 차이로 정반대의 견해를 보였습니다.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기소할 경우 이재명 대표의 거취에 관해 물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33.4%가 ‘사퇴해야 한다’고 했고, 60.7%는 ‘사퇴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90.8% 대 6.4%’, 압도적 차이로 정반대의 견해를 보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거의 국론분열 수준인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나라가 두 쪽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론분열이라는 말이 탄생한 그리스처럼 말입니다. 이를테면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때 미국이 우리에게 참전을 요구하면 우리가 그 전쟁에 뛰어들어야 할까요? 군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참전을 결정하고, 국회 다수 세력인 민주당은 참전에 반대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정치 현안과 정책 과제에 대한 여론이 지지 정당에 따라 크게 엇갈리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정치 양극화 때문입니다. 정치 양극화는 정보화 혁명과 모바일 혁명으로 유권자의 확증편향이 점점 심해지는 현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대통령제 권력구조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특히 심각한 것 같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유권자의 분노와 증오를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을 선택하면서 점점 더 폐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거대 양당이 ‘적대적 공존’을 추구하는 모양새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윤석열 대통령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했던 모든 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경제·복지는 물론이고 외교·안보까지 뒤집기를 시도하며 극우 노선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향 설정이 윤석열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관에서 나온 것인지, 국정 지지율 하락을 막고 2024년 4·10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술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두가지 다일 수도 있습니다.

중도 지지층에도 ‘배신 행위’

어쨌든 윤석열 대통령은 고정 지지층 결집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내세웠던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총선 승리가 필요하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내보내고 있습니다. 야당과의 대화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정면으로 맞서면서 모든 정치 현안과 심지어 정책 과제까지도 정쟁화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극우 노선 질주가 자신을 당선시켜준 중도층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정치공학적으로도 올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두고 한국갤럽이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지,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지 물었습니다. 43%가 이재명 후보를, 44%가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실제 선거 결과는 이재명 47.83%, 윤석열 48.56%였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별로는 민주당 지지층의 90%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95%가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지지 정당 없다’는 무당층은 이재명 27%, 윤석열 33%였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무당층의 지지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의미입니다. 그랬던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극우 노선으로 고정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입니다. 중도층, 무당층의 여론을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와이티엔>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잘한다’ 38.9%, ‘잘 못한다’ 54.2%였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6.5% 대 90.5%’였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79.7% 대 17.1%’로 크게 엇갈렸습니다. 그런데 무당층은 ‘24.6% 대 58.2%’로 전체 수치와 비교하면 여론이 매우 나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기대어 겨우 버티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3·9 대선에서 겨우 0.73%포인트 차로 당선됐습니다. 표 차가 너무 적어서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제작한 3월10일치 조간신문 가운데 몇곳은 마지막 판 1면 기사의 제목을 ‘윤석열 당선 유력’이나 ‘박빙 리드’라고 뽑았을 정도였습니다. 거의 모든 신문이 당선자의 첫번째 과제로 국민통합을 주문하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경향신문: 초박빙 당선 윤석열, 민심 겸허히 새겨 통합에 매진해야
국민일보: 20대 대통령의 국민통합 행보를 기대한다
동아일보: 통합과 미래가 새 정부의 시대정신이다
서울신문: 윤석열 당선인, 정의·공정·혁신에 매진하라
세계일보: 윤석열 당선인, 통합과 협치로 새 대한민국 열어야
조선일보: 윤(尹) 당선 유력, 통합하라는 국민의 뜻
중앙일보: 새 대통령 당선인, 갈등 치유하고 통합 나서길
한겨레: 이제 분열과 갈등 끝내고 ‘통합의 시대’ 열어야
한국일보: 초접전 끝 이긴 새 대통령, 협치·통합은 국민의 명령

지켜지지 않는 약속

윤석열 당선자도 3월10일 오전 당선 인사에서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고 해석한 뒤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국민의 이익과 국익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진보와 보수의 대한민국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10개월, 대통령 취임 8개월이 지난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약속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2022년 3월10일 아침의 다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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