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선택 부르는 직장 내 괴롭힘…"처벌 강화" 한목소리

김동규 기자 2023. 1. 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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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 과태료 500만원…솜방망이 처벌 강화 지적도

(서울=뉴스1) 김동규 기자 = "회사 사람들 보는 앞에서 내 근무시간을 스톱워치를 들고 측정하면서 망신을 줬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어린 아들을 생각하면서 참았습니다" (40대 직장인 A씨)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작된 지 4년차를 맞이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괴롭힘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신혼 3개월 차인 전북의 한 지역 단위농협에서 근무하던 30대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올해 초에는 경남 산청군에서 한 20대 공무원이 투신해 중상을 입었는데 경찰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처벌 수위를 높이면서 수직적인 한국 회사의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직장인 10명 중 3명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있다"

직장갑질(직장 내 괴롭힘)이 여전히 심각한 수준인 것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지난해 4분기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갑질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28%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더 심각한 것은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한 280명 중에 7.1%가 ‘자해’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 중 노동약자로 지목되는 5인미만 사업장, 20대, 비정규직의 극단적 선택 고민 비율이 대기업, 50대, 정규직에 비해 2~5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 환경이 불안정하거나 젊은 사람일수록 직장갑질로 인해 극단적인 생각을 더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40대 직장인 A씨도 몇 년 전 회사에서 당했던 직장갑질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A씨는 "항상 반말과 욕설이 일상이었던 직장 상사가 회사의 공식적인 근무시간보다 2시간씩 더 초과근무를 나에게만 시키고, 근무 시간 중에도 별다른 이유 없이 스톱워치로 내가 일하는 시간을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측정했다"며 "화가 많이 났고 이상한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당시 어린 아들을 생각하면서 버텼다"고 회상했다. A씨의 직장 후배 한 명은 이같은 상사의 갑질을 못 이기고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0.7.16/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전문가들 "처벌 강화 필요, 근본적으로는 회사 문화 수평적으로 바꿔야"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제76조의3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와 괴롭힘 발생 시 조치에 관한 내용이 골자다. 또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109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사업주는 객관적 조사를 실시할 의무가 있고, 조사 및 조치 의무 위반시에는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 중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강해 보이지만 이 처벌은 직장 내 괴롭힘 자체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줬을 경우에만 해당돼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관련법을 보면 사업주에게는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게 최고 형량"이라며 "사업주나 사업장에 대한 처벌이 지금보다 더 강화돼야 강제적으로라도 갑질 문화가 바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도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여러 소송을 보면 대부분 과태료 처분이 최고 형량으로 나와서 사업주들이 크게 겁내고 있지 않은게 사실"이라며 "형법상 강요죄가 있는데 이 부분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경각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현재 법이 있지만 소규모 사업장 등지에서 실제 이행이 잘 되고 있는지 관리감독을 더 강화해야 사업주들이 더 직장갑질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수직적인 회사 문화를 수평적인 문화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는 현재까지도 직장갑질 사례들이 꾸준히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직장갑질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기업 문화에서 하급자를 존중하는 문화 확산이 필요한데 이는 최고 경영진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운택 교수도 "사실 직장 내 서열에 따른 권력관계는 하루아침에 바뀌기 힘들다"면서도 "우리 사회의 수직적인 문화를 수평적인 문화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좀 더 넓게 보면 학교교육에서부터 공동체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5인미만 사업장 근로자 등 노동약자들을 더 보호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두섭 직장갑질 119대표변호사는 "아직 법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5인미만 사업장, 원청갑질,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d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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