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 유일의 국립 암 전문기관, 이대로면 5년 안에 ‘이류’로 전락한다”

김명지 기자 2023. 1.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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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 인터뷰
“내년 본관 리모델링 착수 1000억 추산”
“정부 지원은 200억원...800억원 부채 남아”
“잘 키워놓으면 서울권 대학병원 이직”
“암 걱정한다면 소량의 음주도 안돼”
“양성자 치료기 계약...곧 들여올 예정”
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국립암센터 제공

정부가 지난해 연말 발표한 ‘2020년 암 통계 및 지역별 암 발생 통계’를 보면 기대수명인 83.5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9%로 나타났다. 한국은 암 진단·치료 관리가 잘돼 암 발생률이 인구 10만명당 262.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00.9명)보다 낮다. 그래도 한국인 10명 중 3명은 평생 살면서 한번은 암에 걸린다는 뜻이다.

암은 대표적인 노화 질환이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암 발생률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국립암센터는 한국인 사망원인 1위인 암 정복을 위해 정부가 세운 전문시설이다. 부속병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와 국가암관리사업본부와 대학원대학교가 한 기관 안에 갖춘 세계 유일의 국립 암 전문 기관이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2년 기공식을 하고, 10년 만인 2001년 개원을 했다. 예산부족과 외환위기가 맞물리면서 완공까지 10년이 걸렸다. 개원을 한 2000년대 초반, 국립암센터의 위세는 당당했다. 그 당시 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꿈의 치료기’인 양성자 치료기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초대 원장인 박재갑 서울대 교수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암 줄이려면 담배값 올리라’고 직언한 것도 화제였다.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 폐암 명의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이진수 교수를 부속병원 원장으로 영입했다. 이 교수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항암치료 주치의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10년. 국립암센터는 경기 북부 지역 병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립암센터의 비수도권 환자는 전체 환자 10명 중 2명이 안된다.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지난 2019년 열흘 넘게 노조 파업을 하면서 환자와 당국의 인심도 잃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보다 우리 병원 치료 성적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의사를 잘 키워놓으면 서울 대학병원으로 다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서 원장은 건강보험체계와 경직된 보상 체계를 문제 삼았다. 국내 최고의 공공 기관이 되려면 그에 합당한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민간에서 선뜻 나서지 않는 힘든 과업을 앞장서서 수행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이 없다고도 말했다. 국립암센터는 지난 2020년 예산 1000억원을 투입해 신관을 증축하면서 호스피스 병동과 소아암센터를 늘렸다. 서 원장은 “내년에는 본관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데, 계획대로 했다가는 800억원 가량을 빚지게 된다”라며 “이런 재정상태라면 향후 5년 안에 이류병원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원장을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만났다. 서 원장은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출신으로 국립암센터 설립 초기에 합류했으며 국가암관리사업본부장,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一 최근에 국립암센터가 경기 북부 지역병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중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해 의료수가를 높게 보상해 주고 있다.치료가 어려우니 간호인력도 더 필요하고, 의료장비에도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는 모든 환자가 암환자라서 중증도는 최상급인데도, 응급실 규모가 크지 않고, 신생아 중환자실이 없다고 신청 자격조차 안됐다. 이는 기관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평가 기준이다.”

一 국립암센터가 진료에 비해 합당한 수가를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일본 국립암센터는 특정 기능 병원으로 분류해 상급종합병원과 유사한 수준의 특별 재정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 결과 일본 국립암센터는 암 치료에 있어서 일본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一 국립암센터 신관을 건축했다고 하지만, 본관과 행정동 건물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노후화됐다. 얼마나 오래된 건가.

“국립암센터는 지은 지 25년이 됐다. 본관 리모델링에만 약 10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는데, 정부는 22%만 지원해 주기로 한 상태다. 내년에 공사가 진행되면, 국립암센터는 아마 800억원 가량의 빚을 지게 될거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의 건강보험 체제에서는 이 부채를 해소할 방법은 없다.”

一 건물도 건물이지만, 환자들이 찾지 않는 것은 국립암센터의 실력을 믿지 못해서 아닌가.

“의사들 치료 성적도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과 비교해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건물은 낡았지만, 시설이 낡은 건 아니다. 개원할 때 양성자 치료기를 우리가 국내 최초로 들여왔다. 양성자 치료기 2호를 주문한 상태다. 최근 (다른 대학병원에서 도입한) 중입자 치료기를 들여왔지만, 중입자 치료기가 양성자 치료기보다 효과가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중입자가 양성자보다 좋다는 근거는 없다.”

양성자 치료는 수소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를 빛의 60%에 달하는 속도로 가속시킨 뒤 환자 몸에 쏘아 암 조직만을 파괴하는 원리다. 전세계에 약 90대 정도 있는데, 국내에는 국립암센터, 삼성서울병원에 있다.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에도 들어올 예정이다. 최근 세브란스병원에 도입된 중입자 치료기는 세포 사멸 효과가 좀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양성자 치료기 역시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린다.

一 하지만 실력 있는 젊은 의사들이 빠져나간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가 열심히 잘 키워놓으면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빠져나가는 건 맞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으로 우리 교수들이 이직하는 것은 우리 센터가 그만큼 실력 있는 의사를 양성한다는 뜻도 된다. 암에 대해서 연구하고, 암 환자를 치료해보고 싶은 젊은 의사라면 와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一 국립암센터 재정이 최근 급격히 악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건 지난 2020년 완공한 부속병원 신관 건축비 때문이다. 신관에는 수익이 생기기 어려워서 민간에서 외면하는 소아암과 호스피스완화의료 병동 등 공익적 목적으로 들어갔다. 공사비로만 1000억 가량이 들어갔는데, 국가지원은 24%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국립암센터가 노후 건물 리모델링을 위해 적립한 기금도 바닥이 났다. 국립암센터가 민간기관이었다면 아마 이런 식의 신관 건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一 하지만 이런 식으로 뒀다가는 병원은 계속 후퇴할 수밖에 없지 않나.

“나도 답답하다. 실력 있는 젊은 의사들이 다른 대학병원으로 이직하는 것은 처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국립암센터 인건비는 공무원임금인상률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 십여년 동안 임금 인상이 제자리였다. 내가 원장으로 취임한 첫해인 2021년 임금인상률이 0.9%, 다음해 1.4%, 올해 1.7%인상이 예정돼 있다. 다른 대학병원 의료인 인건비 상승률을 못 맞추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가면 재정 적자에 빠져서 건물은 계속 노후화되고, 최신 의료장비를 구비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력 있는 의료진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 5년 안에, 순식간에 이류병원으로 전락할 것이 자명한 일이다. 국립암센터가 성공적인 공공의료기관에서 재정적자나 내면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의료기관이 되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一 금연전도사로 우리나라 암 환자를 줄이는데 기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담배 외에 암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이나 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음식이다. 타지 않게, 짜지 않게 먹어야 위암을 예방하고, 기름진 음식, 특히 가공육을 줄여야 하고 붉은 고기 즉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줄여야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 둘째는 감염으로 인한 암을 예방하기 위해 접종이 필요하다. B형 간염을 줄여 간암을 줄이기 위해 간염 백신을 맞아야 하고, 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을 통해 자궁암을 예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소량의 음주도 전체 질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국립암센터 제공

一 술을 아예 마시지 말라는 건가. 약간의 음주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게 정설 아닌가.

“술 한 모금도 안하는 사람과 비교해 약간의 음주를 하는 사람의 건강이 더 좋다는 건, 일종의 오해다. 이런 논리는 제이형(J shape) 곡선에 기반한다. 심혈관질환 발생위험도와 알코올 섭취량을 비교분석했더니 소량의 음주의 경우 발생률이 떨어지는 게 확인됐다. 그런데 심혈관 질환이 아닌 다른 모든 질환은 J곡선이 나오지 않고, 그냥 계속 올라간다. 그러니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안전한 음주는 없다’라고 선언했다. WHO에 따르면 음주를 하면 구강⋅인후⋅후두⋅식도⋅간암⋅유방암⋅대장암 등 7가지 암이 늘어난다.”

一 막걸리나 와인은 건강에 좋은 술이란 인식이 있다. 사실이 아닌가.

“포도주가 좋다. 막걸리가 좋다. 이런 인식은 완전 잘못된 것이다. 암 발생률은 알코올 섭취량에 비례한다. 예컨대 산삼이 몸에 좋다고 생각되면 산삼을 먹으면 된다. 왜 산삼을 발암 물질에 섞어 먹나.”

一 코로나 유행 첫해인 2020년 신규 암 환자 수가 직전 해 대비 1만 명가량 줄었다. 병원 방문이 줄면서 검진을 받지 않은 ‘숨은 암환자’가 많다는 진단을 했다. 올해 동향은 어떤가.

“코로나 유행 첫해인 2020년 신규환자가 직전 년 대비 1만명이 감소했다. 2021년 암 등록 통계자료는 올해 12월에 발표될 예정이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중증환자 자료로 가늠해 보면 2020년 31만 7988명에서 2021년 35만 5136명으로 한 해 동안에만 11.7%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진단건수가 증가힌 데 따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一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코로나 초기 6개월 미국 내에서 유방암 진단검사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오는 2030년까지 미국에서만 유방암으로 최대 2500명이 추가로 사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관련해서 국내에서 추산한 자료가 있나.

“현재 추산한 자료는 없다. 한국은 해외와 비교하면 코로나 확진자 관리가 비교적 잘 된 국가로 통한다. 지난 2020년 암 진료환자 수는 전년 대비 3% 줄고, 암환자수는 3.6% 감소했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유방암 진단검사는 코로나 초기 1년간 전년 대비 1.1% 정도 줄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 암 사망자수가 결과와는 다를 것으로 예상한다. ”

一 코로나 유행을 겪으면서 암 치료와 관련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정책들이 있었나.

“대표적인 것이 금연 정책이고, 이 밖에 호스피스를 이용하려는 말기 환자와 가족은 고통을 겪었다. 그동안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환자와 가족의 요구는 커졌지만, 코로나 여파로 오히려 이용이 어려워졌다.”

一 국내 호스피스 병동이 많이 부족한가.

“우리나라에는 총 88개의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입원형 호스피스 병동을 갖추고 있다. 이 중 절반가량이 국공립 의료기관이며, 전체 호스피스 병상 중 상급종합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5% 미만이다. 코로나로 2020년 2월부터 호스피스 병동이 문을 닫기 시작해 올해 초에는 21개소가 휴업하면서 호스피스 병동 4곳 중 1곳이 문을 닫았다. 코로나 병상 확보가 시급해지자 주로 공공의료기관들이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상이 코로나 병상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지방의료원들이 호스피스 병동 운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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