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규모 반대 시위에도 꿋꿋이 연금개혁 추진… 韓도 같은 길 걸을까
전국적으로 100만명 넘게 뛰쳐나와 반대 시위
프랑스 여론은 연금개혁 부정적…한국은 필요성 인정
정치 지형은 프랑스 여당이 유리…한국 정부는 野 협조 필수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지난 27일 제5차 재정계산 시산(試算·시험계산) 결과를 발표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가 유지될 경우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이 5년 전 추계보다 2년 빠른 2055년으로 앞당겨졌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정부의 연금개혁 추진이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보험료를 더 내게 될 청년층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연금개혁을 추진 중인 프랑스처럼 100만명이 반대 집회에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해 개혁이 벽에 부딪힐 수 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 근거로 10월 정부안 제출
정부는 오는 3월 다양한 시나리오별 분석을 포함해 재정추계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회 연금특위가 개혁안을 논의하고, 정부는 10월까지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이거나, ‘더 내고 받는 것은 같은’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납부하는 보험료율은 현재 9%이고, 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인 소득대체율은 40%다. 보험료율을 더 많이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올려 노후에 더 많은 연금을 수령하거나, 보험료율을 상대적으로 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현행을 유지하는 것이다.
앞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 보험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은 상태이고, 급여도 낮아서 ‘용돈 연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국민 의견 수렴이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OECD 국가 평균 보험료율은 18.3%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지금보다 두 배 수준의 보험료를 내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재정추계전문위 시산 결과 70년 후인 2093년에 국민연금기금이 가입자에게 지급할 1년치 보험료를 갖고 있으려면 보험료율을 17.86%로 인상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번 연금개혁 과정에서 소득대체율을 높인다면 보험료율은 이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
◇연금개혁 찬성 여론 높지만 성공 가능성엔 ‘글쎄’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개혁에 대한 여론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연금개혁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8%, 반대한다는 응답은 43%였다. 노동개혁과 교육개혁의 찬반도 비슷했다.
그러나 노동·연금·교육 개혁이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실현 가능하다’가 35%에 그쳤다. ‘실현 불가능하다’는 60%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같은 결과는 개혁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이해당사자가 거세게 반발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국회에서 관련 법안 개정이 필수적인데, 여당인 국민의힘의 의석은 115석에 그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여야는 강하게 충돌하고 있으며, 169석의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연금개혁에 순탄하게 협조해줄 것이란 기대도 하기 어렵다.
◇마크롱 연금개혁안 통과되더라도 한국보다 연금 수령 연령 빨라
프랑스는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지난 10일 현재 62세인 정년을 2027년까지 63세, 2030년까지 64세로 늘려 연금 수급 개시 시점을 늦추는 내용의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연금을 전액 받기 위한 근속 기간은 현재 42년이지만, 2035년까지는 43년으로 연장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집권 1기(2017~2022년) 추진한 개혁 정책 중 연금개혁은 가장 저항이 거세다. 2019년에는 42개 직군별로 나뉘어 운영되는 복잡한 연금제도를 간소화하면서 은퇴 연령을 낮추는 개혁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면서 미뤄졌다.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프랑스의 정부·여당 상황은 한국보다는 낫다. 지난해 하원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 성향 집권여당 ‘르네상스(옛 앙마르슈)’는 245석(42.5%)을 얻는 데 그치며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그러나 여전히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했다. 좌파 선거연합은 131석, 극우정당은 89석, 중도우파 정당이 61석을 차지했다.
프랑스 국회는 오는 2월 연금개혁 법안 논의를 시작한다. 상·하원은 3월 26일까지 표결에 나선다. 국회가 법안을 거부하더라도 방법이 있다.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따르기는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헌법에 근거해 국회의 반대에도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연금개혁안도 한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조정 규모가 적은 편이다. 프랑스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려 하지만, 한국은 이미 2033년부터는 65세부터 연금을 받는 것으로 제도가 확정돼 있다.
◇프랑스 야당, 연금 수령 연령 ‘60세로 낮추자’ 주장
국회 연금특위에 민간자문위는 수급연령을 67세로 상향하자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독일은 67세, 영국은 68세부터 연금을 수령하도록 제도를 개편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구상이 아니다. 게다가 프랑스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것과 정년 연장이 동시에 진행되지만, 한국은 일괄적인 정년 연장 논의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대신 정부는 정년 후에도 일하는 ‘계속고용’ 확대를 추진한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는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거리로 뛰쳐나와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주요 노동단체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프랑스 여론조사업체 IFOP가 연금개혁안에 대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프랑스 국민 68%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도 반대 목소리를 주도하고 있다. 하원 150석을 차지해 제1야당이 된 좌파 연합 ‘뉘프’를 이끄는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는 은퇴 연령을 60세로 낮추고,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2010년 연금을 개혁해 은퇴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올렸는데, 그 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다.
◇한국 야당은 연금개혁 필요성에는 동의… 기초연금이 변수될 듯
한국 국회는 집권여당의 의석수가 적고 거대야당이 존재하지만, 민주당도 연금개혁 필요성에는 동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연금개혁의 성공 가능성은 높은 편인 셈이다. 민주당은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과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김성주 의원 주최로 연금개혁 방향을 논의하는 연속 토론회를 열고 논의를 진척시키고 있다.
다만 국민연금과 함께 논의되는 기초연금이 여야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매월 30만원 정도를 지급하는데, 국민연금과 연계해 감액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기초연금 지급액을 40만원으로 인상하자는 것이었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선 공약은 40만원으로 인상하면서 소득에 관계 없이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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