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사랑의 짜장면’… 이웃 어르신에 온기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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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덮친 '최강 한파'에 행인이 바삐 집으로 향하던 지난 24일 오후 7시쯤 서울 성북구 성북로8길에 위치한 '옛날 중국집'에 들어섰다.
짜장면 정기 나눔이 이뤄지는 날이면 100명 남짓 어르신이 가게에 온다고 김씨는 전했다.
짜장면 나눔 봉사가 있는 날 어르신의 식사를 돕는 인근 부녀회와 주민센터 직원들도 빼놓지 않고 "감사하다"고 진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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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군고구마 팔며 생계 잇던 시절
아이 함께 키워준 주민들 덕에 버텨
매달 짜장면 나눔… 자녀도 동참 약속
동네 미용실도 무료봉사…기부 이어져
1973년 문 열어 블로그 등에서 ‘성북동 맛집’으로 알려진 이곳에선 매달 셋째주 월요일에는 짜장면 나눔 봉사가 열린다. 2012년부터 주변 저소득층·홀몸노인을 위해 시작해 봉사일이 때때로 조금씩 변경되기는 했지만,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다.
이날 만난 사장 김명숙(75)씨는 “우리도 어렵게 살았다”며 “짜장면도 먹지 못했던 때를 생각해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베풀기 시작했다”고 봉사를 시작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김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남편 오춘근(78)씨는 과거에 안 해본 장사가 없었다고 한다. 순대와 옥수수, 도넛, 군고구마까지 팔았다고 전했다. 50여년 전 이렇게 살기 어려웠던 시절 일하느라 자녀들을 제대로 돌볼 시간조차 없었던 부부에게 당시 이웃들은 큰 힘이 되어줬다.
김씨는 “동네 사람들이 아기에게 우유도 타서 먹이고 사실상 같이 키워주셔서 우리 가족이 잘살 수 있었다”며 “밥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기면서 주변에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흘러간 시간을 되짚었다.
봉사에 함께 힘을 보태는 딸과 사위 그리고 손자 등은 김씨 부부를 든든하게 돕는 훌륭한 지원군이다. 가족의 마음이 하나가 된 덕분에 봉사도 잘 이뤄질 수 있었다며 김씨는 고마움을 전했다. 봉사를 위해 쉬는 날에도 재료를 준비하느라 힘들 텐데 싫다는 내색도 하지 않고 도와준다고 덧붙였다.
‘기억에 남는 일이나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성북구의 한 고교 학생들을 떠올렸다. 배고픈 학생들이 가게에 와서 낸 돈보다 더 많이 음식을 먹어도 그 정도만 받았다고 했다. 베푸는 행복이 더 컸기에 가능했던 일로 보이는데, 당시 어렵사리 배를 채우며 학창 시절을 지냈던 학생 중 일부는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녀를 데리고서 지금도 김씨가 운영하는 중국집에 종종 온다고 한다.
인근의 한 미용실은 할머니들의 머리를 무료로 손질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부부의 선한 영향력이 주변으로 번져나가는 것으로도 보인다. 김씨의 자녀들도 나이를 더 먹은 부모가 봉사를 못 하게 되어도 뒤를 잇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대화하는 내내 김씨는 “짜장면 나눔 봉사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며 거듭 겸손해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테이블을 돌며 손님들에게 먼저 몸을 낮춰 인사를 직접 건넸다. 20대로 보이는 단체 손님들은 입 모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화답했는데, 마치 제집 사랑방인 양 편안한 모습이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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