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사랑의 짜장면’… 이웃 어르신에 온기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김동환 2023. 1. 28. 19:5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국을 덮친 '최강 한파'에 행인이 바삐 집으로 향하던 지난 24일 오후 7시쯤 서울 성북구 성북로8길에 위치한 '옛날 중국집'에 들어섰다.

짜장면 정기 나눔이 이뤄지는 날이면 100명 남짓 어르신이 가게에 온다고 김씨는 전했다.

짜장면 나눔 봉사가 있는 날 어르신의 식사를 돕는 인근 부녀회와 주민센터 직원들도 빼놓지 않고 "감사하다"고 진심을 전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북구 ‘옛날 중국집’ 가보니
순대·군고구마 팔며 생계 잇던 시절
아이 함께 키워준 주민들 덕에 버텨
매달 짜장면 나눔… 자녀도 동참 약속
동네 미용실도 무료봉사…기부 이어져
전국을 덮친 ‘최강 한파’에 행인이 바삐 집으로 향하던 지난 24일 오후 7시쯤 서울 성북구 성북로8길에 위치한 ‘옛날 중국집’에 들어섰다. 형광등 아래 10개가 되지 않는 테이블엔 저녁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 찼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짬뽕에 먹음직한 짜장면, 접시에 소복이 담긴 볶음밥과 갓 튀겨 눈으로도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탕수육 등을 앞에 두고 웃음이 넘쳤다.
지난 16일 서울 성북구 성북로8길에 위치한 ‘옛날 중국집’에서 진행된 짜장면 나눔 봉사 모습. 서울 성북구 성북동주민센터 제공
◆‘성북동 맛집’으로만 알았는데…홀로 사는 어르신 위한 따뜻한 곳이었네

1973년 문 열어 블로그 등에서 ‘성북동 맛집’으로 알려진 이곳에선 매달 셋째주 월요일에는 짜장면 나눔 봉사가 열린다. 2012년부터 주변 저소득층·홀몸노인을 위해 시작해 봉사일이 때때로 조금씩 변경되기는 했지만,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다.

이날 만난 사장 김명숙(75)씨는 “우리도 어렵게 살았다”며 “짜장면도 먹지 못했던 때를 생각해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베풀기 시작했다”고 봉사를 시작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짜장면 정기 나눔이 이뤄지는 날이면 100명 남짓 어르신이 가게에 온다고 김씨는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덮쳐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모임 인원 제한이 있었을 때는 인근 성북동주민센터에서 나눠준 쿠폰을 받은 어르신이 원하는 날 찾아왔다고 한다. 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고 많은 이들이 모일 수 있게 되면서 짜장면 나눔 봉사가 다시 원활해졌다며 김씨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려웠던 시절 이웃에게 받았던 도움이 주변에 베푸는 마음으로 이어져

김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남편 오춘근(78)씨는 과거에 안 해본 장사가 없었다고 한다. 순대와 옥수수, 도넛, 군고구마까지 팔았다고 전했다. 50여년 전 이렇게 살기 어려웠던 시절 일하느라 자녀들을 제대로 돌볼 시간조차 없었던 부부에게 당시 이웃들은 큰 힘이 되어줬다.

김씨는 “동네 사람들이 아기에게 우유도 타서 먹이고 사실상 같이 키워주셔서 우리 가족이 잘살 수 있었다”며 “밥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기면서 주변에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흘러간 시간을 되짚었다.

봉사에 함께 힘을 보태는 딸과 사위 그리고 손자 등은 김씨 부부를 든든하게 돕는 훌륭한 지원군이다. 가족의 마음이 하나가 된 덕분에 봉사도 잘 이뤄질 수 있었다며 김씨는 고마움을 전했다. 봉사를 위해 쉬는 날에도 재료를 준비하느라 힘들 텐데 싫다는 내색도 하지 않고 도와준다고 덧붙였다.

짜장면 나눔 봉사가 있는 날 어르신의 식사를 돕는 인근 부녀회와 주민센터 직원들도 빼놓지 않고 “감사하다”고 진심을 전했다.
오춘근·김명숙 주인 부부의 사진과 메시지. ‘성북동이 좋다’는 글에서 이곳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짙게 느껴진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주민센터 제공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봉사의 긍정 효과…“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며 겸손

‘기억에 남는 일이나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성북구의 한 고교 학생들을 떠올렸다. 배고픈 학생들이 가게에 와서 낸 돈보다 더 많이 음식을 먹어도 그 정도만 받았다고 했다. 베푸는 행복이 더 컸기에 가능했던 일로 보이는데, 당시 어렵사리 배를 채우며 학창 시절을 지냈던 학생 중 일부는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녀를 데리고서 지금도 김씨가 운영하는 중국집에 종종 온다고 한다.

인근의 한 미용실은 할머니들의 머리를 무료로 손질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부부의 선한 영향력이 주변으로 번져나가는 것으로도 보인다. 김씨의 자녀들도 나이를 더 먹은 부모가 봉사를 못 하게 되어도 뒤를 잇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대화하는 내내 김씨는 “짜장면 나눔 봉사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며 거듭 겸손해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테이블을 돌며 손님들에게 먼저 몸을 낮춰 인사를 직접 건넸다. 20대로 보이는 단체 손님들은 입 모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화답했는데, 마치 제집 사랑방인 양 편안한 모습이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