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에 남은 강제동원 역사”… 조병창 병원 철거 위기 [이슈+]

조성민 입력 2023. 1. 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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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일본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하는데
인천시, 일제 강제동원 현장 조병창 병원 철거 결정
정혜경 “우리 스스로 강제동원 역사를 외면하는 꼴”
시민단체 “조병창은 세계 하나뿐인 일제 침략 흔적”
4차 소통간담회에도 파행…시에 공익감사 청구까지

일제 강제동원의 역사가 남아있는 인천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 내 조병창 병원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무기 제조 공장이던 일본육군조병창 내 병원은 정신대 동원을 피해 온 지영례 할머니 등 1만명 넘는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흔적이 남은 곳이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군이 위수병원을 설치해 사용했고, 1948년에는 여군간호장교 학교로 쓰였다.

전문가들은 이곳이 근현대사를 품은 역사 공간이라고 평가한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26일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육군조병창을 설치하게 된 것은 1937년에 일으킨 중일전쟁이 1939년에 수렁에 빠지면서 중국 전선에 무기를 보급해야 할 시급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라며 “현재 부평에는 조병창 관련 건물 34개동(2012년 문화재청 조사)이 남아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현재 철거 위기에 놓인 조병창 병원”이라고 설명했다.
1948년 조병창 병원 전경. Norb Faye,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제공
◆우리가 일제 강제동원 역사 지워서야

정 연구위원은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자료 ‘종전 직후 조병창 현황철’에는 서무과, 감독과, 작업과, 기능자양성소 등 여러 부서와 함께 병원이 자리하고 있다”면서 “조병창 병원은 일본 육군 군 조직의 하나인 조병창에 반드시 설치해야 할 필수조직이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조병창 병원은 1945년 9월 미군이 인천육군조병창 자리를 접수해 에스컴 시티로 명명한 후 382위수병원으로 사용됐다. 위수병원에서는 미군 주도로 한국군 육군 간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 교육기관은 현재 국군간호사관학교의 전신이다.

1949년 이후에는 조병창 병원을 한국 제1의무부대가 사용했다. 이후 6·25 전란이 일어나 인천상륙작전을 거쳐 다시 미군은 부평 인천육군조병창 자리에 보급부대를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병원 건물은 중앙부 포치 부분이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건물 기본 틀은 여전히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현재 부평공원에는 지영례를 모델로 한 징용노동자상이 서 있다. 지영례는 조병창 병원에 동원되었던 생존피해자이다. 위안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병원 서무과에서 일해야 했던 피해자가 생존해 있는데, 정작 피해자가 동원된 현장을 철거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모독을 넘어 우리 스스로 강제동원의 역사를 외면하는 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병창 병원은 조병창의 여러 유적의 하나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조병창 역사 그 자체이다. 역사적 현장이란 그 자체만으로 역사의 교훈과 울림을 준다”며 “왜 일본이 군함도를,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겠는가”라고 덧붙였다.

특히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재시도가 큰 관심과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작 우리 땅에 있는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 철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정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그는 “현장이 없어지면 우리가 경험한 강제동원의 역사도 사라진다. 부평공원은 미쓰비시제강 공장이 있던 곳이다. 미쓰비시제강은 조병창에 강판과 박격포탄을 납품하던 곳이다.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본 전범기업의 행태를 명백히 보여줄 수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런데 1998년에 철거한 후 부평 주민들은 그곳에 미쓰비시제강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고 한탄했다.
인천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 내 조병창 병원 건물.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제공
◆결국 조병창 병원 철거 수순 밟는 인천시

인천시는 지난 19일 조병창 병원 건물을 철거해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높다는 평가와 권고 등에도 건물 원형이 훼손됐고, 법정 기한 내 토양 정화를 마치기 위해서는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인천시는 부분적인 보존과 함께 일제 강제동원의 역사적 의미는 디지털 아카이브로 남길 계획이다.

정동석 인천시 도시계획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중단됐던 정화작업의 재개를 국방부에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10일 시민단체들의 존치 요구 등으로 유정복 인천시장이 국방부에 ‘철거중단’을 요구한지 70여일만이다.

이후 인천시는 철거를 반대하는 ‘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추진협의회’와 캠프마켓 주변 주민들로 구성된 ‘캠프마켓 부평숲 주민추진위원회’, 부평구 등 4자가 참여한 소통회의를 수 차례 개최했다. 정 국장은 “그동안 조병창 병원건물의 보존방안, 토양오염 정화방법 등 모든 가치를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합의에 이루지 못했다”며 “병원건물이 철거되더라도 그 흔적이 최대한 남겨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48년 382위수병원에서 훈련중인 한국군 간호장교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앞서 문화재청은 조병창 병원 건물 등 포함 근대건축물로 가치가 있는 시설물 9개소에 대해 보존될 수 있도록 권고했다. 이후 토양정화사업이 진행되면서 보존 권고한 시설물 9개소 중 8개소는 보존하기로 협의됐고, 건물 하부 오염이 심한 조병창 병원 건물은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에 보낸 질의답변서를 통해 “조병창 병원 건물이 원형의 모습을 거의 찾기 어려운 상황으로 등록문화재로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도 “다만 조병창 병원으로 역사적, 장소적 의미가 있는 건물로서 토양정화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남겨질 수 있도록 관계기관(인천시, 국방부)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인천시가 발간한 ‘캠프마켓 1780·1947호 건축물 기록화 보고서’에서도 조병창 병원 건물이 역사적 현장이라는 전문가 평가가 확인된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보고서에 담긴 자문 의견에서 “조병창의 역사가 일제강점기에 머물지 않고, 냉전시대 미군의 한국사회에서의 역할도 함께 조명할 수 있는 근대유산”이라며 “조병창의 가치가 국내 가치를 넘어 제국주의와 냉전의 역사를 증거하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시 행정에 반발…공익감사청구까지

조병창 병원 건물 존치를 주장해온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 측은 “소통간담회 결과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자 이를 뒤집은 인천시의 행정이 부당하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25일부터 부평 캠프마켓 공원 앞에서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 단체는 이날 내놓은 성명에서 “유정복 시장은 조병창 병원건물을 존치한 채 하부오염토양을 정화할 수 있는 방안과 조병창 병원건물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자료를 전달해주면 다시 한번 검토해보겠다고 했다”며 “유시장은 답변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소통간담회에서 조병창 병원건물을 존치한 상태에서 하부오염토양 정화가 가능한 방법을 보여줬다”며 “그럼에도 인천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무조건 조병창 병원건물을 철거하겠다고 작정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단체는 또 “조병창 병원건물과 조병창 시설들은 전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일제침략의 흔적”이라며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의 흔적을 없애려고 일본 본토에 있는 조병창 시설을 모두 없애버렸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평 캠프마켓 조병창 시설들을 하나씩 철거하는 것은 일제 침략의 흔적을 지우는 친일 매국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3차에 걸친 소통간담회에서 숲공원측과, 첫째 시민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둘째 조병창 병원건물 철거여부를 여론조사 등 시민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할 것을 합의한 바 있다”며 “인천시에 민관협의기구를 구성하여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일제강점기 조병창 병원 현관 앞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지영례 할머니 등 서무과 직원들의 기념 사진. 앞줄 군도를 들고 있는 자는 과장 등 일본군 간부. 부평역사박물관 제공
인천시는 중재전문가를 대동해 4차례의 소통간담회와 9회에 걸친 숙의경청회를 거쳤지만, 합의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다 캠프마켓 부평숲 주민추진위원회가 3차 소통간담회 직후 남은 간담회에 불참 선언을 했고,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 측과 인천시만 참여한 4차 소통간담회는 인천시가 서명을 거부해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았다.

세계일보가 입수한 4차 소통간담회 비공개 회의록에 따르면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 측이 “지난 회의서 설문조사 등 구체적 시민의견수렴 절차에 공감했다”고 하자, 인천시는 “3차 회의시 논의 과정에서 나온 의견으로 공감의견은 아니며, 3차 회의에 부평숲 의견은 확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3차 소통간담회 회의록에는 캠프마켓 부평숲 주민추진위원회 측에서 “전체 인천시민 또는 부평구민의 전수조사로 조병창 존치, 철거에 대한 투표하여 여론수렴하고자 제안한다”고 기재돼있다.

김형회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25일 통화에서 “지난 3일 3차 소통간담회 다음날 캠프마켓 부평숲 주민추진위원회가 4차 소통간담회 불참 공문을 인천시에 보냈다. 그런데 우리측에는 이 사실을 8일 후인 지난 12일에야 알려왔다. 그러면서 논의 없이 4차 간담회를 취소한다기에 부시장측에 항의해 겨우 속개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인천시가 4차 간담회 회의록에 서명없이 퇴장하면서 ‘너희가 공익감사를 신청한다지 않았느냐 그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인천시는 19일에 국방부에 철거 공문을 보내고, 우리가 항의하자 유 시장은 20일까지 우리더러 제안서를 내보라고 했다”며 “상식적으로 인천시가 국방부에 낸 철거 요청을 철회하지 않고 우리더러 제안서 내보라고 한 것은 모욕적이라 생각했지만, 병원건물을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조병창 병원 존치 토양정화 제안서를 시장에게 제출했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천시가 국방부로 사업권을 넘겨받아 정화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삼으면 세계적인 관광자원이 될 것임이 분명한데도 소극적 행정으로 일관하는 듯해 안타깝다”고 했다.

이들은 인천시가 조병창 병원 건물 존치 방안이 있는데도 독선적인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공익감사 청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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