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청년 또 경찰에 맞아 숨졌다…집단폭행에 미국 ‘발칵’

난폭 운전 이유로 흑인경찰 5명이 몰매
희귀 질환 앓던 운전자, 사흘 뒤 사망

2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흑인 청년 타이어 니컬스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차에 올라가 앞유리창을 깨뜨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경찰이 흑인 운전자를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한 상황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운전자가 “엄마”라며 고통을 호소했으나 경찰의 폭행이 멈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경찰은 지난 7일 경찰 5명이 흑인 청년 타이어 니컬스(29)에게 몰매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상황이 담긴 약 67분 분량의 ‘보디캠’ 영상을 공개했다고 <에이피>(AP) 등 외신이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영상을 보면, 해가 져 어둑한 오후 8시30분께 경찰들이 난폭 운전으로 정지 지시를 받아 길가에 멈춰선 니컬스의 세단 자동차로 달려갔다. 한 경관이 운전석 문을 열고 니컬스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자, 니컬스는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경찰들은 “바닥에 엎드려”고 소리쳤고, 니컬스는 “알았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니컬스가 일어서려고 하자 “손을 내밀라”고 요구하며 제압하려다 그를 에워싸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시작했다. 옆에 서 있던 다른 경찰이 페퍼 스프레이를 꺼내 얼굴에 뿌리자 니컬스는 “엄마”라고 외치며 고통을 호소했다. 한 경관은 “몽둥이 맛을 보여주겠다”며 진압봉을 꺼내들어 위협했고, 니컬스가 늘어지자 일으켜 세워 폭행했다.

니컬스는 체포된 뒤 고통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고, 사흘 뒤인 10일 신부전과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희귀 질환인 크론병을 앓고 있었다.

현장에서 니컬스에 몰매를 가한 경찰 5명은 모두 흑인이었다. 이들은 모두 해고됐으며, 대배심은 전날 이들을 2급 살인과 가중 폭행 등 혐의로 기소할 것을 결정했다.

세를린 데이비스 멤피스 경찰서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들 경찰의 행동은 악랄하고 난폭했으며 비인도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니컬스의 차량이 처음 정차했을 때부터 경찰관 10명가량이 몰려들었다며 “이들이 공격적이고 욕설을 하는 바람에 니컬스가 처음부터 매우 겁먹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멤피스와 워싱턴 디시, 보스턴 등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에서는 이번 사건이 2020년 5월 미네소타주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졌을 때 전국적으로 일었던 항의 시위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당시 사건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어 “니컬스의 죽음을 불러온 폭행이 담긴 끔찍한 영상을 보고 격분했으며, 깊은 고통을 느꼈다”며 “검은색이나 갈색 피부를 가진 미국인들이 날마다 겪는 공포와 고통, 상처와 피로감을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니컬스의 어머니, 양아버지와 통화하고 애도를 표했다고 백악관이 전했다.

니컬스의 어머니 로번 웰스는 방송 인터뷰에서 “그들은 아들을 가혹하게 때렸다”며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머리는 수박만큼 부어올랐다. 목은 부러졌고, 코는 휘었다. 살아남았더라도 식물인간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