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선택을 좋은 방향으로 몰고 갈 거야 [ESC]

한겨레 입력 2023. 1. 28. 13:05 수정 2023. 1. 2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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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운동]#오늘하루운동 풋살
지난 12월7일 서울 광진구 아차산 홈구장에서 내가 속한 팀 알레그리아 에프에스(fs) 자체 연습 경기를 치렀다. 장은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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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 가기 전에 새해 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계획 두 줄을 적고 나니 더 쓸 말이 없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새해 계획을 세울 때면 항상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워야지, 그것도 해볼 테야’ 하며 일고여덟 줄은 거뜬히 넘겼던 나인데, 흘러간 수년의 새해 다짐들을 떠올려봐도 올해만큼 단출한 적은 처음이다. 두 줄 아래로 휑한 여백이 민망해 덧붙일 말들을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음, 내가 어느새 좀 더 명료한 사람이 된 걸까?

나는 삶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는 편이다. 남들 하는 것 중에 좋아 보이는 것은 다 해보고 싶고, 내 결정에 따라 언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가능성의 방향이 앞으로 뻗치기보다 옆과 뒤를 향할 때가 잦아 고통받는다는 점이다. 걸어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너무도 커서 지금 걷고 있는 길의 아름다움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달까. (뜨끔해서 밝히자면 네, 엠비티아이(MBTI) 성격 유형 중 이엔에프피(ENFP·재기발랄한 활동가 유형) 맞습니다) 모든 것, 모든 곳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는 것이 버거울 때가 많아서 이 미련을 어찌하면 덜어낼 수 있을지 자주 고민한다.

다양한 선택지가 하나씩 모이면…

다행히 필드 위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장점이 된다. 기본기가 잘 다져져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축구 지능’이라 말하는, 경기를 읽는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다양한 선택지를 손에 쥔 채 플레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요즘 나는 그 선택지를 하나둘씩 장착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는 보디 페인팅 실전. 1대1 경합 상황에서 상대를 속이는 보디 페인팅 기술로 수비수를 제치고 뚫고 나가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페인팅과 드리블은 기본기인 만큼 꾸준히 훈련해왔지만, 실전에서 수비수를 앞에 두고는 돌파할 엄두를 내지 못해 항상 패스만 해왔다. 최근 들어서야 페인팅으로 수비수를 흔들고 빠져나가는 돌파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혼자만의 미션을 정해 수행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 횟수만큼 사과를 칠하던 마음으로 연습 게임에 나설 때 ‘페인팅으로 수비수 3회 제치기’라는 목표를 세우고 경기에 나가는 거다. 생각만큼 경기에서 미션을 수행할 기회가 자주 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미션을 품고 임하니 좀 더 집중력 있게 타이밍을 노리게 되고 한두 번은 멈칫거리더라도 결국 해내는 순간을 맞이한다. 마음속 미션 사과가 모두 붉게 칠해지면 풋살 자존감도 한껏 차오른다.

또 언젠가 팀 동생이 내게 건넨 “언니가 공을 잡으면 공격 방향으로 전진시킬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의식적으로 더 전진 패스를 뿌려주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전에 비하면 시야도 제법 넓어졌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 있고, 오프더볼(경기에서 선수가 공을 소유하지 않을 때의 움직임)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도 더디지만 조금씩 몸에 익히고 있다. 이건 훈련과 함께 팀 유튜브 채널 영상을 편집하기 위해 경기 영상을 꼼꼼히 챙겨본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영상을 볼 때면 나는 내가 잘한 것보다 못한 게 더 잘 보이는데, ‘우리 골문 앞에서 느리고 약한 패스는 정말 위험하네! 사이드에서 패스받을 때 어디로 패스할지 미리 결정하고 그 방향으로 공을 잡아두어야 했어! 공격 상황에서 최종 수비수(픽소)도 함께 올라가야지 너무 처져 있어선 안되는군. 여기서 수비수를 달고 움직인 건 좋았다!’ 하면서 복기하다 보니 어떤 게 좋은 선택인지 더 분명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깨달은 걸 바탕으로 필드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공을 받기 전과 후,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로에 선다. 장은선  제공

공만 보며 우당탕탕 필드 위를 휘젓던 내가 고개를 들어 패스 길을 보고, 내 위치와 우리 팀 동료들의 위치, 수비수 사이에 생기는 공간까지 어렴풋이 읽게 되다니! 필드 위에 점, 선 면의 레이어가 차곡차곡 쌓이고, 그 위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데이터가 입혀진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게도 순식간에 여러 선택지가 보이고 그중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생기겠지? 꽤 멋진 피지컬과 ‘뇌지컬’의 콜라보레이션이다!

그런 기대에 한껏 부풀어 2023년 풋살 실력 향상을 위한 계획도 구상 중이었는데…. 슬프게도 내 마음과 달리 몸은 하락세를 탔다. 작년 9월 물이 차기 시작했던 무릎이 이젠 걷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악화했다. 이미 두 달이나 쉬고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운동 전 스트레칭에 테이핑, 보호대까지 챙겨서 하고 운동이 끝나면 얼음찜질도 꼬박꼬박 챙겨 했다고! 별수 없이 땡땡 부은 무릎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확한 건 관절 내시경이 들어가 봐야 압니다. 짧으면 6주, 길면 6개월의 재활 기간이 필요할 수 있어요.” “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이마를 짚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찔해진 부분은 ‘6개월’이란 기간이었다. ‘6개월이나 풋살을 못 한다고요?’

‘지금, 여기’에 충실하기

2022년 마지막 영화로 뒤늦게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봤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영화가 끝나고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결국 내가 사는 ‘지금, 여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꽤 뻔한 교훈이었다. 멀티버스에 사는 수많은 ‘나’의 가능성은 뒤로하고, 이 세계에서 내가 쌓아온 선택들에 충실해야 한다는 깨달음. 내 삶 속에서 만났던 무수한 선택의 순간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있고, 반대편 선택지를 따라간 멀티버스의 나는 또 그만의 삶을 잘살고 있을 테니 매번 돌아보며 ‘저걸 골랐다면 어땠을까’ 고민하며 고통받는 것보다 내가 한 선택을 믿고 그 선택으로 인해 주어진 현재를 충분히 즐기면 그뿐이라는 결론이었다. (삶 곳곳에 날 웃음 짓게 할 ‘눈알’을 붙여두고 말이다.)

내 새해 계획이 간결해진 건 한 해를 떠나보내며 본 영화의 교훈 덕일까. 어쩐지 내가 지나쳐 온 선택지들을 기웃거리곤 했던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지금, 여기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진다. 가벼워진 새해 계획과 함께 바라는 게 있다면, 피치 위에서 짧은 순간 일어나는 선택도 이전의 무수한 훈련과 경험을 거쳐 나오는 것이듯 살면서 내가 하는 선택 또한 ‘과거의 나’가 쌓인 결과일 테니 그저 내가 한 선택을 좋은 방향으로 가져갈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기를.

그리고 다시 무릎 얘기로 돌아오자면, 아무래도 긴 재활 기간과 수술 자체가 엄두가 안 나 잠시 보류하고 재활 운동을 하고 있다. 무릎 관절의 부하를 줄이기 위해서는 엉덩이 근육과 허벅지 근육을 단련해줘야 한다고 한다. 허벅지를 덜덜 떨며 배운 동작들을 따라 해본다.

글·사진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인스타그램 @futsallog에 풋살 성장기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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