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빛 흡수하는 흰색처럼… 다양한 감각 깨우고 싶어” [유한나가 만난 셰프들]

2023. 1. 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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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그레’ 김봉수 셰프
고교 때 조리아카데미 다니며 셰프 꿈 키워
호주 유학하다 ‘안씨막걸리’ 만나 한국행
3년 동안 5개 브랜드 만드는 등 새 도전
‘블그레’선 쌀과 다양한 발효음식에 주목
고춧가루 전혀 안쓴 ‘한입 요리’ 시그니처
양배추구이·홍합된장소스도 궁합 뛰어나
‘블그레’를 이끄는 김봉수 셰프를 만났다. 김 셰프는 요리를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궁금한 사항은 많았지만 질문을 하면 답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진학에 대한 고민을 하다 거주하던 대구에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레스토랑을 찾아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좀 느리고 돌아가더라도 몸으로 부딪치고 익혀 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는데, 중학교 2학년 때다. 이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게 됐다.
김봉수 셰프
당시 호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다녀온 오너 셰프가 외국의 다양한 다이닝의 시스템이나 환경을 접목시킨 덕분에 김 셰프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대구관광고등학교 1기로 입학한 김 셰프는 조리아카데미를 다니며 대구 지방기능 경기대회 준비를 하면서 만났던 교수님을 따라서 대구보건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군대에서 전역 전에 임정식 셰프가 뉴욕에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과 정식당 음식들을 방송으로 접했고 전역 전에 정식당에 가서 직접 음식을 경험했다. 당시 매우 좋았던 기억으로 인해 대학교 실습을 정식당으로 나가게 되었다. 정식당이 생긴 지 1년쯤 되었을 시기였는데 실습으로 3개월 일하고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서 2년 6개월 정도 근무했고 뉴욕의 정식당도 다녀왔다. 당시 목표는 본인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뉴욕에 가는 것이었는데, 이 꿈을 이루게 되었다. 뉴욕에서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호주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월드베스트 6위였던 스페인의 무가리츠의 총괄 셰프인 댄 헌터의 레스토랑 오픈 멤버를 꿈꾸며 호주로 떠났지만,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160만원만 지니고 떠난 호주는 녹록지 않았다. 운 좋게 브리즈번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이후 2년의 호주 생활을 통해 호주 퀴 레스토랑(3햇)의 세컨드인 페이모던에서 일하게 됐다. 이 레스토랑에서 스폰서 비자를 제안, 한국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그만 ‘안씨막걸리’와 일하게 되면서 호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양배추 구이
경리단길의 10평 남짓한 가게, 2.3평의 주방에서 ‘안씨막걸리’와 ‘21세기 서울’이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한국 전통주점을 운영하면서 액젓 등 한국 음식의 식재료를 공부했다. 이후 도마, 마린, 그린뉴밀, 케마도치즈케이크, 싱크 랩(think lab)까지 3년 동안 5개의 브랜드를 만들고 이후 휴식기를 가지면서 다양한 방송과 미디어에 노출되었다.

더스페어스라는 현재의 회사로 옮겨가며 블그레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회사 김민관 대표는 뉴욕대 출신 포토그래퍼다. 김 대표는 우연히 안씨막걸리에 갔다가 막걸리를 뉴욕에 론칭하고 싶은 마음에 메뉴를 만든 사람을 수소문해 김 셰프를 만나게 되었다. 포토그래퍼와 셰프의 만남은 사진과 음식으로 사람을 즐겁게 하자는 모토로 가닥이 잡히게 됐다. 김 대표는 김 셰프에게 안씨막걸리 같은 형태를 조금 더 타파스스럽게 풀어서 외국에 선보일 수 있는 음식을 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빛의 삼원색인 블루, 그린, 레드의 앞글자를 따서 블그레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빛이 다 모였을 때 화이트가 되는데 그 화이트가 여러 빛을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블그레도 다양한 형태를 흡수할 수 있고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셰프는 새로운 형태 때문에 고객이 과연 한식일까라는 의심을 품지만 먹고 나면 익숙한 맛이 느껴지고 오감 이상의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쌀을 기반으로 한 주식에 다양한 반찬과 발효 음식을 올려서 먹었을 때 입속에서 마지막으로 요리가 완성된다는 취지로 접근한다. 제철 음식 재료를 매번 변경하다 보니 각 음식의 디자인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입 요기
첫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한입 요기이다. 한입 요기에는 총 네 가지를 제공한다. 이번 겨울 음식을 구성하면서 외국에서의 오픈까지도 생각하다 보니 한국 음식에 대한 짜다, 달다, 맵다와 같은 맛에 대한 편견들을 다 빼려고 일부러 고춧가루를 모든 음식에서 제외하고 메뉴를 구성했다. 겨울 제철 음식 중 하나인 냉면을 재해석해서 냉면 말이를 표현했다. 냉면을 먹을 때 육수와 가니시를 따로 제공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재미있는 냉면이다. 메밀면을 냉면의 고명인 절인 무로 말고 그 옆에 작은 항아리에 동치미를 담아서 고객이 직접 육수를 마실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첫번째 요리인 메밀면 말이와 두번째 요리인 동치미, 이 둘을 같이 먹으면 냉면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세번째는 오징어 초회로 타르트로 만들었다. 브릭페이스트리를 이용한 타르트에 사과콤포트를 만들어서 그 위에다 오징어 누들을 올렸다. 보통 초회라고 하면 초고추장을 많이 사용하는데 매운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초록 고추장과 검은콩의 일종인 서목태로 만든 소스를 비벼서 올라간다. 네번째 요리는 김치에 들어가는 새우를 활용했다. 새우젓을 만들기 전인 참새우를 이용해서 고로케를 만들고 그 안에는 고춧가루가 안 들어간 발효 김치를 넣어서 먹었을 때 김치를 연상할 수 있는 따뜻한 고로케가 제공된다. 구글에서 한국의 겨울을 검색하면 시골의 눈 쌓인 장독대가 많이 나온다. 외국인들이 인식하는 한국의 겨울 이미지에 맞게 눈 쌓인 장독대의 이미지를 디자인한 접시를 사용하고 있다.
두번째 시그니처 음식은 양배추구이와 홍합된장소스다. 환경을 생각해 양배추의 모든 부위를 버리지 않고 사용한다. 양배추를 통으로 기름 속에서 10시간 정도 천천히 익힌 뒤 숯불에 구워서 고기 맛이 나게 만든다. 거기에 프로슈토햄, 발효시킨 양배추, 구본일 선생님의 된장이 들어간 양배추 된장 홍합소스를 곁들인다. 버려지는 겉잎도 채 썰어 데쳐서 튀긴다. 그냥 먹는 것보다 파래를 뿌려서 제공한다. 버리는 거 하나 없는 형태여서 블그레의 대표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김 셰프는 이처럼 최대한 버리지 말자는 생각으로 주방을 이끌어가고 있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고민을 하고 미래에 나의 자식에게 요리사라는 직업군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요리를 하고 있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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