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 난 시골 금은방, 보석보다 더 유명한 게 있다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 입력 2023. 1. 2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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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교복 기부에 청소 봉사까지... 옥천 행운보석 홍경옥 대표의 반짝이는 선행

2023년 새해를 맞아 <월간 옥이네>는 충북 옥천 사람들의 새해 다짐과 희망을 담습니다. 소박하게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부터 나이를 떠나 새로운 도전으로 삶의 활력을 찾는 이야기, 장애인 교육권과 농촌 지역 돌봄, 열악한 교통환경 등 공동체의 문제를 풀고 싶다는 바람까지 오늘 '옥천'이라는 지역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내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행운보석' 홍경옥 대표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옥천읍내 한복판, 다소 허름해보이는 보석방 하나가 2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옥천 사람들의 '경사'를 상징하는 가게, '행운보석'이다. 부부 예물은 물론 돌반지, 회갑 기념 예물 등 다양한 액세서리를 판매해온 이 오래된 가게는 이미 지역 명물이다. 그러나 행운보석이 옥천의 '보석'인 까닭은 따로 있다. 이곳 대표 홍경옥(72)씨가 그동안 펼쳐온 숭고한 봉사와 나눔의 정신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옥천이라는 숲

"원래는 옷가게를 했어요. 잘 운영하다 두 딸이 대학에 진학해 벌이를 키워야 했어요. 또 무릎이 아파서 더 못하고 지금 자리에 행운보석을 연 거예요. 귀금속 액세서리를 좋아하고, 잘 알았던 데다 손님 취향이나 행사 성격에 맞춰서 예물 골라주는 일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게 어찌저찌 25년 세월을 잘 견뎌냈네요."

청산에서 태어나 한평생 옥천 땅에서 삶을 일군 홍경옥씨의 애향심은 남다르다. 코흘리개 꼬마일 때부터 그의 삶터였고, 일흔을 넘긴 지금은 삶의 여정을 끝마칠 보금자리다.

홍경옥씨는 '고향'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학창시절에 만난 친구들도, 옷가게를 운영할 때 만났던 '이모들'도 '친구들'도 이제 남아있는 이가 별로 없다. 그의 손길로 만든 새빔을 입고 배시시 웃던 꼬마들이 이제 중년이 돼 가끔 행운보석에 들러 추억을 알음알음 이야기할 때만이 희미한 옛 시절의 웃음을 되짚는 시간이라고.

"참 열심히 살았죠. 옷감 구하러 서울로 다니고, 재단 기술과 유행을 알아보러 전국을 찾아다녔어요. 그때는 건강에 자신이 있어 열정적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계단참 하나 오르기도 벅차요. 세월이 무상하고 야속하기는 하지만 그때 맺은 인연과 추억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무릎이 안 좋아지면서 홍경옥씨는 옷가게 운영을 단념해야 했다. 한 짐 보따리 드는 게 버거우니 옷가게에 쓸 안감 가져오기도 만만치가 않았단다. 잠시간의 고민이 삶에 끼어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금은방이었다. 눈썰미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기에, 평소 좋아하던 액세서리 판매에 자신감이 있었다.

"처음 행운보석을 열었을 때는 IMF 때문에 다들 살림이 어려운 시기였어요. 어쩌다 보니 혼수며 돌반지며 장만해뒀던 패물들을 내놓으러 오는 주민들을 많이 만났죠. 입구에서 들어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품에서 옥반지 하나 꺼내는 거예요. 이거 팔아서 아이들 밥 값하고 학습지 살 돈 대겠다는 엄마들이 제일 많았어요. 그때 아팠던 가슴이 지금도 저려오는 거 같아요."

역경의 시절을 고스란히 체험한 홍경옥씨는 그때부터 봉사와 나눔에 대한 갈망이 움텄다. 어려운 형편에 놓인 이웃들을 보며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보석들이 무용지물로 느껴진 때도 있었다.

그는 '내가 가진 것'이 본디 내 것이 아니었음을 계속 마음에 되뇌며 산다고 말한다. 금은방에 놓인 여러 보석은 본래 대자연이 주인이었음을, 세상의 부와 물질적 풍요는 삶의 본질이 아니라 방법으로만 쓰여야 한다는 생각에 닿은 것이다.

"원래부터 내 것이란 건 없어요. 이 한 몸은 부모님이 만들어주셨고, 옥천 역시 대대손손 선조의 손을 거쳐 일구어졌잖아요? 이웃이 없으면 옥천도 없는 거 아닐까요? 한평생 풍파를 겪으며 배운 게 이런 거예요. 우리 딸한테도 매일매일 가르치는 거고요. 세상은 숲이라고 보거든요. 여러 나무가 어울려 살아가는 숲이요. 나무 하나만 자라는 숲이 있나요? 홀로 크게 자랄지는 몰라도 얼마나 황량하겠어요?"

묵묵하고 조용하게, 하지만 뜨겁게 도움을

홍경옥씨가 그동안 펼쳐온 선행을 정리하려면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특히 학비 마련이 힘들거나 돈이 없어 밥을 굶는 아이들에 대한 지원은 수십 년째 잇고 있다. 하지만 홍경옥씨는 자신의 선행을 세상에 드러내놓고 싶지 않단다. 그래서 아무리 묻고, 설득해도 청산 시절 나눔을 펼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다만 행운보석을 연 이후 선행은 <옥천신문> 등에 보도된 적이 많아 '모르는 이야기'라고 잡아뗄 수 없어 아쉽다고. 증약초등학교 대정분교에 급식비를 지원하는가 하면 안내중학교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전하거나 교복, 학용품을 마련할 수 있게 도왔다.

학교를 통한 나눔 외에도 '행운보석'이란 이름답게 알음알음 맺은 인연으로 도움을 준 적도 많다. 가게에 들른 손님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온 것. 등록금 낼 돈이 없는 손녀딸 걱정에 한숨 쉬던 어르신, 아기 먹일 분유 고민이 깊던 이주 여성 등 기억에 남는 사례들이 많다. 수십 년간 퇴적된 선행의 지층 속에 희미해진 사연들은 더더욱 많을 터. 그렇게 어언 수십 년이다.

"청소년은 지역의 내일이잖아요. 배움에 고픈 학생이어서 돕기도 하지만, 나중에 어른이 돼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어렵고 힘들 때 세상이 외면하지 않았구나, 어른들이 우리에게 따스한 손을 건넸구나 하는 경험이 있다면 나중에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발견했을 때 외면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에요. 그렇게 나눔과 봉사는 피라미드처럼 다음 세대로 넓어지며 커지지 않을까요?"

홍경옥씨는 대외활동과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목련라이온스클럽과 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역임했고, 지금도 자문위원으로 조언을 보탠다. 홀몸노인이나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으로 소외받기 쉬운 이들을 찾아 살림을 보태고 청소와 빨래 봉사를 펼쳤다.

시각장애인후원회 활동도 이어 나갔다. 개인당 2만 원씩 회비를 걷어 운영하는 이 모임은 7명으로 출발해 한때 회원이 24명까지 늘기도 했다. 이런 단체 활동 외에도 개인 기부로 몰래몰래 이웃을 도운 횟수는 세기도 어렵다. 홍경옥씨 본인은 개별 사연을 알려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

"도움 받는 입장도 생각해야죠. 어려운 형편에 놓여있다고 여기저기 알려지는 걸 부담스러워 하고 숨기는 분이 많아요. 특히 청소년들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조용히 익명으로 기부하고, 받는 게 좋아요. 물론 자원봉사나 나눔 활동을 널리 알리면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 때론 아무도 모르게 건네지는 도움이 절실할 때가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행운이란 보석 같은 이웃들이 모은 따스함이다
 
 충북 옥천 '행운보석' 홍경옥 대표
ⓒ 월간 옥이네
 
"오래 금은방을 하면 지역 현실을 그대로 파악할 수 있어요.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땐 대부분 예물이 팔렸어요. 그땐 신혼부부가 훨씬 많았고 옥천에 남은 청년도 제법 있었으니까요. 요즘은 환갑, 칠순, 팔순 같은 어르신들 기념일 선물이 대부분이에요. 부모님 생일선물 주겠다고 찾는 손님들 나이도 중년을 훌쩍 넘겼어요. 결혼 예물이 나가는 건 손에 꼽아요. 옥천의 내일이 없어지는 걸 하루하루 지켜보는 마음이 오죽할까요."

홍경옥씨는 근래 '귀한 손님'으로 돌잔치 기념 반지를 찾는 부부를 꼽는다. 가장 최근에 찾아온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워낙 드문 일이니 오는 이들 얼굴이며 대화 내용, 찾아온 날의 날씨와 차림새까지 기억난단다. 새 생명의 탄생과 기념이 '연중행사'가 됐다는 뜻이다.

"우리 세대가 옥천에서 사라지고 나면, 다음 세상이 어떻게 될지 참 걱정이에요. 여기 앉아서 밖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반갑고 기뻐요. 저는 다른 소원 별로 없고, 옥천이 없어지지 않길 바라요. 지금 옥천 사람들이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해요."

요즘 홍경옥씨는 건강이 나빠져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때로는 앉아있기도 어려울 때도 있다. "온몸 관절이 삐걱거리고, 심장이 헐떡거리고, 얼마 전엔 잇몸이 흔들렸다"고. 그럼에도 그는 최근 모교인 청산고등학교에 장학금 400만 원을 쾌척했다. 단순히 기부만 펼친 게 아니라, 직접 장학회를 설립해 지속적인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고향 청산에 여전히 청소년이 있다는 사실이 제겐 큰 위로고 힘이에요. 까마득한 선배로서 작게나마 보탬을 줘서 제가 더 행복해요. 나이 들고 몸이 아프니 남은 생을 뜻깊게 쓰고 싶단 마음이 강해졌어요. 행운보석이 오래오래 남아 더 많은 이웃을 돕는 게 소원이에요."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읍내에서 행운보석의 환히 켜진 불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트막한 소파에 앉아 엷은 미소로 바깥을 보는 홍경옥씨 역시 자주 목격된다. 어쩌면 '행운'과 '보석'은 이음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옥천에서 만나는 행운들은 사실 홍경옥씨 같은, 보석 같은 이웃들이 집합해 실현해낸 따스함의 결정체가 아닐까.

앞으로도 행운보석의 가치가 영롱히 빛나길 소원해본다.

월간옥이네 통권 67호(2023년 1월호)
글·사진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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